[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유재석도, 전현무도 그랬다. 'SKY캐슬'을 모르면 사람들 얘기에 낄 수가 없다고. 과장만은 아니다. 인기가 최고다.
JTBC 금토드라마 'SKY캐슬'(극본 유현미, 연출 조현탁, 제작 HB엔터테인먼트, 드라마하우스, 총 20부작)이 지난해 11월 23일 첫 방송했을 당시 시청률은 1.7%였다. (닐슨코리아, 전국기준) 그러나 종영을 한 회 앞둔 지난 1월 26일 'SKY캐슬' 19회는 비지상파 역사상 최고 시청률인 23.2%를 기록했다. 이전 기록은 tvN ‘도깨비’ 마지막 회가 보유한 20.5%. 1일 방송한는 최종회는 23.8%를 기록하며 또다시 신기록을 썼다.
신드롬에 가까운 체감 인기는 수치 그 이상이다. 사방에서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들린다. 배우들의 열연에 대해서,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해서, 곳곳에 숨겨놓은 복선과 의미에 대해서, 한국의 처참한 교육현실에 대해서 저마다 열변을 토하며 'SKY캐슬'을 말한다. 밤 11시라는,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시간대에도 기꺼이 본방사수를 감행하고, 뒤늦게 정주행-역주행에 동참한 그들은, 우리는 왜 'SKY캐슬'에 빠졌을까.
▲ 'SKY캐슬'을 연출한 조현탁 PD. 제공|JTBC
▲모두의 관심사, 교육문제
연출자 조현탁 PD의 생각은 어떨까. 그가 'SKY캐슬'의 성공 이유를 콕 집어 말할 수가 없다면서도 첫 손에 꼽은 것이 '교육문제'라는 소재였다. 그는 "한국사회 사람들에게 핫한, 하지만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사회적 이슈가 드라마와 맞았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부모에게든 큰 문제지만 입 밖으로 꺼내고 나누기 힘들다. 저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털어놨다.
한국 최고 명문대 대명사인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영문 이니셜에 공고한 성(城)을 덧붙여 지은 'SKY캐슬'이란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드라마는 명문사립인 주남대학교에서 의사·교수 가족들을 위해 지은 타운하우스 'SKY캐슬'에서 살아가며 대한민국 상위 0.1%를 자처하는 이들의 처절한 욕망을 샅샅이 비춘다. 대학을 부와 지위를 대물림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문으로 여기는 그들은 폐쇄적 커뮤니티에서 자녀들의 입시에 목을 맨다. 여주인공 한서진(염정아)에게 "3대째 의사가문"은 삶의 목표처럼 보일 정도다. 딸을 서울의대에 보내기 위해 그녀는 엄청난 비용과 수많은 희생을 치러가며 전문 입시코디의 도움을 받는다.
▲ JTBC 'SKY캐슬'. 제공|방송 화면 캡처
이가운데 비뚤어진 한국 교육의 민낯이 처절하게 드러났다. 'SKY캐슬'엔 유현미 작가가 3년간 발품을 팔아 취재했다는 입시 교육의 단면이 곳곳에 가득하다. 인터넷 강의(인강)으로 수업을 대신하는 교사, 학생간 갈등을 부추기는 정독반-심화반, 입시정보를 줄줄 꿰는 대치동 '돼지엄마', 소규모 그룹과외는 물론이요, VVIP를 위해 마련된 소규모 입시컨설팅, 소수를 위한 입시 컨설턴트(입시 코디) 등은 '이런 게 실제 있느냐'는 문의가 빗발쳤을 만큼 큰 화제가 됐다. 숙명여고 쌍둥이 시험지 유출 의혹 사건, 가짜 하버드생 사건 등 널리 회자된 실제 사건을 드라마로 옮긴 듯한 기시감도 상당하다. 흡인력은 그 이상이다. 자식있는 부모라면 어찌 그 곳에서 눈을 뗼 수 있을까.
'SKY캐슬'이 한국의 교육현실을 보는 시선은 날카롭고도 서늘하다. 드라마 첫 회, 아들을 서울의대에 합격시키고 의기양양해 하던 영재엄마 명주(김정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엄마의 꿈을 이뤄준 아들이 '당신 아들로 사는 건 지옥이었다'며 그녀를 떠났기 때문이다. 발을 들일수록 사람을 옭아매는 입시라는 지옥에선 아이도 부모도 자유로울 수 없다. 작가와 감독은 사교육의 미친 바람이 아이를, 부모를, 그리고 가족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를 지독하게 묘사하는 한편, 학종으로 불리는 학생부종합전형의 문제점을 비롯한 현행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꼬집는다. "할 말은 드라마로 다 했다"며 인터뷰를 고사한 유현미 작가가 'SKY캐슬'을 시작하며 한 말은 이랬다. "이 드라마로 대한민국의 한 가정이라도 살렸으면 한다."
▲ JTBC 'SKY캐슬' 포스터. 제공|JTBC
▲실감나는 캐릭터,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
'SKY캐슬'은 그러나 세상을 바꾸려는 전사도, 고고한 학자도 아니다. 처절한 교육현실을 비추는 방식은 대단히 통속적이고도 자극적이다. '대한민국 상위 0.1%'라는 설명에 걸맞게 휘황찬란한 상류층의 패션과 라이프를 비추는 가운데 출생의 비밀, 가정폭력, 신분세탁, 고부갈등, 살인청부는 물론이고 우연과 우연을 거듭한다. 10대가 청부살인의 피해자가 된다는 설정은 사실 강렬하지만 위험한 설정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모두가 '한국사회의 미친 현실'과 '방향을 잘못잡은 일그러진 모성애'를 향해 수렴하며 시청자들을 자석처럼 강력하게 끌어당기고 있다는 점이다. 속도감도 빠르다. 출생의 비밀이 제기되면 바로 그 회 마무리에서 '친자확률 99.9999%'가 똑 떨어질 정도다. "설득력과 개연성이 있느냐가 문제"일 뿐 "막장은 죄가 없다"는 조현탁 PD의 자신만만한 변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 JTBC 'SKY캐슬'. 제공|'SKY캐슬' 방송 화면 캡처
남발되는 우연은 물론이고 마지막으로 갈수록 극성인 PPL에 대한 불만까지 잠재워버린 '미친' 흡인력의 일등공신은 정교하고 실감나는 캐릭터들과 이를 제 몸처럼 연기해 낸 배우들의 구멍없는 열연이다. 'SKY캐슬'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가족 별로, 세대 별로, 개인 별로 저마다의 이유와 동력으로 움직이는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이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신 여인천하를 그려보이고 있는 여성 캐릭터들, 그리고 살아 숨쉬는 10대 고교생 캐릭터들이다. 이들을 착한사람/나쁜사람이란 구도로 단순히 나누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도리어 욕망에 충실한 악독한 캐릭터들이 시청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착하다고 잘되지도 않는다. 이상적 부모상으로 그려졌던 수임(이태란)과 치영(최원영)은 정작 아이가 살인용의자로 몰리는 억울한 상황에 몰려 무력하게 무너져버린다. 누가봐도 착하하고 정의로운 캐릭터로 설정된 우주엄마 이수임(이태란)이 한때 '혐오수임'으로까지 불리며 외면받았을 정도. 타고난 귀부인 행세를 하면서 가끔 돌변해 "아갈머리를 확 찢어버릴라" 같은 무시무시한 욕을 내뱉는가 하면, 악마같은 입시코디를 들여 화를 자초하는 욕망의 화신 한서진이 차라리 공감을 끌어냈다.
배우들의 열연은 두 말하면 입이 아프다. 이수임-황치영(최원영) 부부를 제외하면 'SKY캐슬'의 어른들은 모두가 겉 다르고 속 다른 거짓말쟁이들. 매회 극적인 클로즈업은 물론이고 요동치는 어머니의 마음까지 강렬하게 소화해 내는 명품 연기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주인공 한서진 역 염정아에겐 "핏줄이 연기한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올백머리까지 연기중이라는 평가를 받은 미스터리한 입시코디 김주영 역의 김서형도 물론이다. 아이들을 위해 가정을 바꾸고 일어선 우아한 사모님 노승혜 역 윤세아, 줏대 없이 흔들리지만 담백한 매력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는 오나라 또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자신이 아닌 어머니의 뜻에 따라 서울의대를 나와 의사가 된 남자의 허망한 50대를 그린 강준상 역의 정준호,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강요하는 꽉 막힌 자수성가형 엘리트 김병철, 딸랑이에 여념없는 의사 조재윤도 풍자와 코미디, 드라마에 쫀쫀히 녹아들었다.
▲ JTBC 'SKY캐슬'. 제공|'SKY캐슬' 방송 화면 캡처
젊은 배우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SKY캐슬'은 어른들의 세계 못잖게 탄탄한 아이들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부모세대는 물론 10대들의 공감까지 이끌어냈다. 비중 또한 주인공과 다름 없었다. 조현탁 감독과 제작진은 스케줄 맞는 스태프를 모두 동원할 만큼 아역들의 오디션과 발탁에 공을 여마다 가능성과 매력을 발산했다. 여기에 강렬한 오프닝을 책임진 김정난, 그 남편 역의 유성주를 비롯해 중견들의 묵직한 활약이 힘을 더했다.
이 모두를 살려낸 연출의 공은 ' SKY캐슬'을 진정 볼만한 드라마로 만들었다. '미친엔딩'으로 불린 강렬한 엔딩과, 이를 박음질하듯 되박아 의미와 사연을 되짚는 오프닝은 조현탁 PD의 연출력을 매회 실감하게 한 순간. 얼굴과 손, 뒷모습을 포착하며 탄탄한 이야기의 틈새마다 긴장감과 색다른 감흥을 더한 절묘한 연출은 시청자들이 기꺼이 'SKY캐슬'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들이 주체가 돼 포착한 순간들과 이에 대한 풍부한 해석은 'SKY캐슬'이 얻은 덤이자 시청자들을 더욱 빠져들게 하는 이유가 됐다. 시청자들은 죽은 잠자리와 우주의 방에서 난 소음과 혜나의 손가락이 가리킨 지점을 두고 나름의 분석을 쏟아내며 'SKY캐슬'에 더 깊이 빠졌다. 어떻게 헤어날 수 있을까. 'SKY캐슬'이 떠나도 그 여운은 당분간 이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