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덕의 격투기 명승부] 필 바로니, 왜 상대가 아닌 심판을 때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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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배드 애스(The New York Bad Ass)' 필 바로니(40, 미국)는 2003년 11월 21일(이하 한국 시간) 미국 코네티컷 언카스빌 모히건 선 아레나에서 열린 UFC 45 미들급 경기에서 역사에 남을 한 장면을 연출했다. 상대 에반 태너(2008년 작고, 미국)가 아닌 심판 래리 린들레스에게 주먹을 던진 것.
당시 만 25세의 바로니는 2002년 옥타곤에서 아마르 술로예프와 데이브 메네를 펀치로 쓰러뜨린, 흥분을 잘하는 과격한 젊은 타격가였다. 화끈한 경기력 때문에 인기가 꽤 높았다. 물론 아킬레스건은 있었다. 당시 전적이 5승 2패였는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6kg급 은메달리스트 맷 린들랜드에게만 두 번 졌다.
레슬러에게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바로니는 이를 갈고 있었다. 당시 만 32세 태너 역시 레슬러 출신. 더군다나 태너가 린들랜드, 랜디 커투어, 댄 헨더슨이 함께 이끄는 팀 퀘스트 소속이었으니 바로니는 어떻게든 그를 쓰러뜨려야 했다. 1라운드 초반부터 이를 악물고 매서운 펀치를 마구 휘두른 건 그 때문이었다.
바로니의 뜻대로 경기가 풀렸다. 오른손 쇼트 훅 두 방에 태너가 주춤했다. 바로니는 들러붙는 태너의 안면에 무거운 펀치를 또 맞혔다. 캐스터 마이크 골드버그는 비틀거리는 태너를 보고 "큰 위기에 빠졌다"고 소리쳤다.
그런데 여기서 심판 린들레스가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을 내렸다. 경기를 갑자기 멈춘 뒤, 의사를 옥타곤 안으로 불렀다. 피가 흐르는 태너의 안면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서였다. 승기를 잡은 바로니에게 안타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반대로 태너에겐 호흡을 가다듬고 충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관중은 야유했다. 아마 여기서부터 바로니는 화가 났는지 모른다.
정확히 58초 후 재개된 경기. 바로니는 왼손으로 태너의 목덜미를 잡고 오른손 어퍼컷으로 충격을 안겼다. 태너는 넥 클린치에서 복부를 향한 니킥 연타로 대응했다. 그런데 바로니의 숨이 서서히 거칠어졌다. 그리고 분위기가 극적으로 바뀌었다. 1라운드를 1분 30초를 남기고 태너가 바로니를 테이크다운하는 데 성공하고 마운트까지 차지한 뒤 파운딩 연타를 내리쳤다.

여기서 문제의 장면이 나왔다. 누워 있던 바로니가 짜증이 난 듯 린들레스에게 펀치를 던졌다. 힘이 실린 건 아니었지만, 심판에게 주먹을 휘두르다니 깜짝 놀랄 일이었다. 린들레스는 바로니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뉴욕 배드 애스'는 일어나서도 린들레스를 공격하려고 했다. 옥타곤 옆에서 대기하던 심판 존 맥카시, 태너의 세컨드였던 댄 헨더슨까지 올라와 바로니를 말렸다.
의사소통의 문제였다. 심판들은 선수의 상태를 확인할 때 "괜찮아?"라고 묻는 게 보통인데, 린들레스가 "그만할래?"라고 물은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바로니는 "괜찮아?"라고 묻는 줄 알고 "그렇다(yes)"라고 답했다. 당연히 린들레스는 바로니가 경기를 포기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얼른 태너를 떼어 놓은 것이었다.
세계적인 커트맨 제이콥 듀란이 바로니를 붙잡았지만 소용없었다. 젊은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도 옥타곤으로 올라와 "필, 제발 흥분 좀 가라앉혀"라고 욕설을 섞어 외쳤으나 바로니는 억울하다는 듯 울상이 돼 계속 짜증 냈다. 결국 판정에 승복하고 태너, 린들레스와 악수를 나눴다. 그러나 떨떠름한 표정은 지울 수 없었다.
린들레스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4일 뒤 여러 매체에 진심을 담은 사과문을 전달했다. "잘못된 소통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공개적으로 바로니에게 사과하고 싶다. 경기를 멈춰 바로니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그가 계속 경기하길 원했다는 걸 알고 있다"며 "바로니가 이 끔찍한 상황에서 빠져나와 더 강해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내가 한 사람으로서, 한 심판으로서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심판과 선수의 '미스 커뮤니케이션(miscommunication)'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 준 대표적인 사고였다. 이 일은 이후 UFC 심판들이 선수의 상태를 확인하는 질문을 한 가지로 통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싸우고 있는 선수가 이해하기 쉬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건 종합격투기 심판의 기본이 됐다. 심판들의 역량이 올라간 뒤에는 선수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바로 경기를 끝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경기는 역사에 남을 오심을 꼽을 때 항상 거론되고 있다.

태너는 2005년 2월 6일 UFC 51에서 데이빗 테럴을 꺾고 공석이었던 UFC 미들급 챔피언 자리에 올랐으나, 같은 해 6월 5일 UFC 53 1차 방어전에서 리치 프랭클린에게 TKO로 져 왕좌에서 내려왔다.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2008년 9월 4일 오토바이를 타고 홀로 사막 여행을 떠났는데 이것이 끔찍한 사고로 이어졌다. 섭씨 48도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연료가 떨어져 고립됐고, 구조를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08년 9월 9일 발견됐다.
린들레스는 속죄하듯 2003년 12월부터 2004년 8월까지 프로 종합격투기 3경기를 뛰었다. 최근엔 심판을 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페이스북엔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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