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두산 베어스 조수행, 김인태, 안권수 ⓒ 두산 베어스
▲ 왼쪽부터 두산 베어스 조수행, 김인태, 안권수 ⓒ 두산 베어스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너는 포지션 어디냐고 물으면 백업이라고 이야기할래?"

1년 전 일이다.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은 지난해 4월 15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0-1로 패한 뒤 선수단 미팅을 잡았다. 백업으로 오랜 기간을 보낸 젊은 선수들이 선발 출전 기회를 잡고도 딱 백업 정도의 플레이만 보여주자 단단히 화가 났다. 대상은 내야수 박계범 안재석, 외야수 조수행 김인태, 포수 장승현 등이었다. 

김 감독은 " '너희 백업 선수 아니다. 나가면 주전이다. 흔한 말로 '너는 포지션 어디냐'고 하면 백업이라고 이야기할 거냐고 물었다. 나가면 주전이다. 어떻게든 뛸 생각을 하라고 했다. 기회가 오면 잡아내고 이겨내서 주전을 차지해야 한다. 선배들한테 그 자리를 그냥 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산은 지난해부터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유격수 김재호-2루수 오재원 키스톤콤비를 대체할 다음 세대를 본격적으로 찾아 나서고 있었고, 올 시즌을 앞두고 NC 다이노스로 FA 이적한 우익수 박건우의 빈자리를 채울 선수가 필요했다. 그런데 김 감독의 눈에는 젊은 야수들이 선배들을 뛰어넘을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지 않고 그저 구멍이 나지 않을 정도만 플레이하는 것처럼 보이니 이례적으로 젊은 선수들에게 직접 나서 한마디를 한 것이다.  

사령탑이 일침을 가하고 딱 1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너도나도 '나를 주전으로 써달라'고 외치고 있다. 외야수 김인태(28)가 시작이었다. 김인태는 지난해 처음 1군에서 100경기 이상(133경기) 뛰면서 차곡차곡 자신감을 쌓아 나가더니 올해 주전 우익수 경쟁에서 가장 먼저 웃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하기 전까지 25경기에서 타율 0.315(92타수 29안타), OPS 0.792, 12타점으로 활약했다. 시즌 초반 팀 타선이 전반적으로 터지지 않아 애를 먹을 때 김인태는 허경민과 함께 꽉 막힌 혈을 뚫으며 큰 힘이 됐다. 

김인태가 부상으로 빠지기 시작한 시점에는 안권수(29)와 조수행(29)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20년 두산에 입단한 재일교포 3세 안권수는 한국행 3년 만에 빛을 보기 시작했다. 17경기에서 타율 0.379(29타수 11안타), 출루율 0.455를 기록하며 리드오프로 중용되기 시작했다. 조수행은 24경기에서 타율 0.348(23타수 8안타), 출루율 0.444, 11득점, 6도루를 기록하며 안권수와 함께 테이블세터를 맡아 활발히 공격 물꼬를 트고 있다. 조수행은 빠른 발을 바탕으로 넓은 수비 범위까지 자랑해 쓰임새가 더더욱 커지고 있다. 

▲ 두산 베어스 안재석(왼쪽)과 강승호 ⓒ 두산 베어스
▲ 두산 베어스 안재석(왼쪽)과 강승호 ⓒ 두산 베어스

내야에서는 프로 2년째인 안재석(20)이 주전 유격수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2021년 1차지명으로 입단하며 김재호의 뒤를 이을 차기 유격수로 눈길을 끌었다. 신인 때는 경험이 부족하고 실책이 잦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겨우내 부단히 수비를 보완해서 돌아왔다. 타율은 0.243(74타수 18안타)로 최근 조금 떨어져 있지만, 하위 타선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김 감독은 "수비가 많이 좋아졌다. 유격수로는 정말 잘해주고 있다. 공격력이 초반에 좋다가 주춤한데, 타이밍이 안 맞으니까 콘택트 위주로 가고 있다. 원래 본인 스윙대로 치게 하려 한다. 타석에서 결과를 떠나 자신 있어 보인다. 그러면 야구가 조금 더 늘 수 있다. 그런 점들을 칭찬하고 싶다"고 했다. 

2루수 강승호(28)는 지난해 SSG 랜더스로 FA 이적한 최주환(34)의 보상선수로 데려올 때부터 기대했던 장타력이 살아나면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4월 말까지도 1할대였던 타율을 6일 현재 0.277(65타수 18안타)까지 끌어올렸다. 시즌 장타 5개 가운데 4개를 이달에 쳤을 정도로 최근 타격감이 많이 좋아졌다. 5월 4경기에서 6안타를 치면서 2루타 3개, 홈런 1개를 기록했다. 

두산은 1년 전만 해도 '백업'이란 수식어를 떼지 못했던 선수들이 하나둘 주전급 활약을 펼친 덕분에 시즌 초반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 시즌 성적 16승12패로 3위다. 1위 SSG와는 5경기차로 조금 벌어져 있지만, 2위 롯데 자이언츠와는 0.5경기차에 불과하다. 

이들 외에도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는 선수들이 1군 벤치에서 또 2군 훈련지인 이천에서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이끈 황금기의 주역들은 이제 거의 팀을 떠나거나 선수 생활 후반기를 맞이했지만, 황금기를 뒤에서 지켜보던 후배들이 하나둘 앞으로 나오며 미래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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