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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외국인 선수 열전] 우승-연승, SK의 영광을 함께했던 카도쿠라

작성일: 2016.04.25 06:00 홍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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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 와이번스에서 활약했던 외국인 선수 카도쿠라 켄 ⓒ SK 와이번스
[스포티비뉴스=홍지수 기자] SK 와이번스는 2009년 4월 14일 '외국인 투수 가도쿠라 겐(등록 이름 카도쿠라)을 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0만 달러에 영입했다'고 알렸다. 전날 방출한 외국인 투수 마이크 존슨을 대체할 외국인 선수로 카도쿠라를 뽑아 입단 계약을 맺었다.

일본 출신으로 오른손 투수인 카도쿠라는 1996년 일본 프로 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긴데쓰, 요코하마, 요미우리 등을 거치며 통산 76승을 기록한 베테랑이었다.  2009년 1월에는 미국 프로 야구 시카고 컵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한국 야구 무대를 밟은 일본 출신 선수 가운데 가장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선수로 꼽히는 이가  카도쿠라다. 2003년 두산 베어스에서 뛴 첫 일본 출신 이리키 사토시가 있다. 그러나 이리키는 한 시즌밖에 뛰지 않았다. 그는 39경기에서 7승11패5세이브, 평균자책점 3.74를 기록한 뒤 KBO 리그를 떠났다.

카도쿠라는 2009년 SK에 입단 뒤 2년간 22승 11패 평균자책점 4.20를 기록했다. 2009년 시즌에는 28경기에서 8승4패1홀드, 평균자책점 5.00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나, 한국 무대 포스트시즌 첫 등판이었던 2009년 10월 8일 두산과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6⅓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고, 10월 16일 KIA 타이거즈와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5이닝 1실점, 5차전에서는 5⅓이닝 2실점으로 잘 던졌다.. 승리는 한번도 챙기지 못했지만, 포스트 시즌에서 좋은 투구 내용을 보이며 SK의 준우승에 힘을 보탰고, 일본 출신 '가을 남자'로 불리기도 했다.

카도쿠라의 주 무기는 포크볼이었다. 최고 시속 150km에 이르는 빠른 공도 위력적이었지만, 일본과 미국 야구를 모두 경험한 베테랑다운 노련미에 날카로운 포크볼이 상대 타자의 방망이를 헛돌게 했다. 커브, 슬라이더도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SK 선발진의 기둥 노릇을 했다. 그는 2010년 시즌에는 14승7패 평균자책점 3.22을 기록해 1996년 프로 야구 선수로 뛰기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두면서 SK가 페넌트레이스와 한국 시리즈에서 정상에 오르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카도쿠라는 SK가 2009년 8월 25일 두산전부터 2010년 3월 30일 LG전까지 22연승 행진을 벌이는 동안 4승을 거뒀고, 2010년 4월 14일 한화전부터 5월 4일 넥센전까지 16연승 기간에 4승을 거뒀다. 그는 팀이 최다 연승 기록을 세우는 동안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한국 야구 성공 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카도쿠라는 2010년 SK를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끈 뒤 11월 대만에서 열린 한국-대만 클럽 챔피언십에 출전했지만, 이후 왼쪽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SK에서 더는 뛰지 못했다. 기회는 있었다. 왼쪽 무릎을 다쳐 SK와 재계약에 실패했지만 한국 무대에서 실력이 검증된 그는 KBO 리그에서 재기를 꾀했고 삼성 라이온즈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잡았다. 

삼성은 2011년 1월 25일 '지난해 SK 와이번스에서 뛴 일본인 투수 카도쿠라를 영입했다'고 밝혔다. 2011년 1월 16일부터 삼성의 전지훈련지인 괌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은 카도쿠라와 30만 달러에 연봉 계약을 맺었다. 수술 대신 재활을 택했던 카도쿠라는 삼성에서 다시 기회를 잡은 뒤 시즌 초, 중반까지는 한일 통산 100승을 거두는 등 2010년 시즌의 위력을 보여 주는 듯 싶었지만, 7월 무릎 부상 이후 페이스가 점차 떨어지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가 끝내 방출됐다.

삼성은 2011년 7월 21일 보도 자료를 내고 '외국인 선수 카도쿠라를 성적 부진의 이유로 웨이버 공시한다'고 밝혔다. 카도쿠라를 2군으로 내려보낸뒤 방출 여부를 고민하다 결국 내보냈다. 카도쿠라는 시즌 초반에는 수준급 투구 내용을 보였지만 6월부터 흔들렸다. 6월 한달간 평균자책점이 8.69였다.

다시 한번 무릎 부상에 발목을 잡히면서 마무리가 개운치는 않았지만, 카도쿠라는 한국 무대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낸 일본인 선수가 됐다. 여기까지는 선수로서 한국 야구와 인연이었다.

그는 KBO 리그를 떠난 뒤 일본 야구에 다시 도전했다. 2012년 클럽 팀인 다테 히지리가오카 병원 경식 야구부에서 뛰다가 프로 복귀를 노렸으나 결국 은퇴의 길을 택했다.

카도쿠라는 2013년 들어 인스트럭터로서 한국 야구와 인연을 이어 갔다. 그는 지도자 경험이 없어 삼성에서 코치가 아닌 인스트럭터로 기용됐다. 카도쿠라는 당시 2군에 있던 릭 밴덴헐크를 후반기에 삼성의 주축 투수가 되는 데 도움을 주며 2014년 2군 투수 코치로 정식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에는 1군 불펜 코치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시즌 후 계약이 만료됐고, 삼성과 재계약하지 않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선수 시절을 포함해 모두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한국 야구와 인연을 쌓은 카도쿠라는 한때 KBO 리그에서 '야구 천재'로 불렸던 이종범(전 KIA)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도 알려지기도 했다. 카도쿠라는 프로 데뷔 팀인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이종범과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카도쿠라는 광주 KIA 원정 경기가 있으면 이종범의 집에 초대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이후 야구 팬들의 기억 속에 추억으로 남아 있는 선수가 여럿  있다. 은퇴 후에도 한국과 연을 맺고 지도자로 새 야구 인생을 사는 이도 있고,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이가 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카도쿠라다. 실력도 빼어났고, 동료들과 관계도 원만했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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