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시즌 투수 WAR 1위를 달리고 있는 윌머 폰트 ⓒ곽혜미 기자
▲ 올 시즌 투수 WAR 1위를 달리고 있는 윌머 폰트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90개 던졌는데요. 한 이닝 더 가겠습니다”

김원형 SSG 감독은 17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경기 중 7회가 끝난 뒤 이날 팀 선발투수였던 윌머 폰트(32)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멈춰도, 한 이닝을 더 가도 되는 애매한 상황. 김 감독의 의중은 전자에 있었다. 올해 쉴 새 없이 달려오기도 했고, 체력도 걱정이 됐다. 그러나 폰트의 대답은 단호했다. 폰트는 “90개면 한 이닝 더 갈 수 있는 체력과 투구 수가 남아있다”고 자신했다.

결국 폰트는 8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이날 성적을 8이닝 2실점으로 마무리했다. 폰트는 이날 경기 전까지 7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플러스(선발 7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 중이었다. 8회에 올라가 2실점을 더 하면 오히려 기록이 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폰트는 기록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팀에 더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고, 그 방법은 1이닝을 더 소화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불펜의 누군가 한 명은 하루를 더 쉴 여유가 생겼다.

김원형 감독은 “기록을 의식하면 보통 7이닝만 던지고 내려오지 않았을까”라면서 “그만큼 자기가 해야 할 것들을 정확하게 알고 경기를 하는 선수로 보인다”고 흐뭇하게 웃었다. 보통 우리는 그런 선수를 ‘에이스’로 부른다.

지난해 SSG와 계약한 폰트는 한 단계 더 진화한 투수로 올해 KBO리그 마운드를 호령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위력적인 패스트볼을 앞세워 가능성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변화구가 부족하고 이닝소화에 기복이 있었다.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그러나 올해는 완전체다. 패스트볼은 더 강력해졌고, 변화구 커맨드는 더 좋아졌으며, 이닝까지 든든하게 잡아주고 있다.

폰트는 패스트볼에 대한 애착과 자신감이 강한 선수다. 리그에서 손에 꼽힐 만한 높이에서 나오는 시속 150㎞ 전후의 패스트볼이 미사일처럼 꽂힌다. 여기에 120㎞대의 뚝 떨어지는 커브로 타자들을 얼어붙게 한다. 이 두 가지 구종을 동시에 대처한다는 건 구속 차이와 낙폭 차이를 고려했을 때 불가능하다. 여기에 최근에는 슬라이더까지 섞고 있다.

폰트와 호흡을 맞추는 포수 이재원은 “패스트볼은 여전히 좋다. 사실 지난해에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아야 할 패스트볼이 많았다”면서 “다만 패스트볼만 계속 던지면 체력이 떨어질 수 있다. 패스트볼을 선호하는 선수라 맞춰주기는 하지만 완급조절을 위해 슬라이더 등 변화구를 섞는다. 변화구 제구도 많이 좋아졌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김 감독 또한 “이재원이 슬라이더와 커브를 적절하게 사용해서 실점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렇게 더 발전하고 있는 폰트는 시즌 14경기에서 95이닝을 던지며 8승4패 평균자책점 1.99를 기록 중이다. 14경기 중 12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고, 이닝당출루허용수(WHIP)는 0.77에 불과하다. 김광현(SSG), 드류 루친스키(NC) 등 리그 대표 에이스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투구내용이다.

선수의 가치를 직관적으로 보여줘 인기가 많은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에서도 투수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시점에서 리그 최우수선수(MVP)를 뽑는다면 반드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선수다.

인천 야구 역사에서 정규시즌 MVP를 차지한 선수는 2008년 김광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2000년 박경완(당시 현대)이 있기는 하지만, 현대는 2000년부터는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겨 인천이 홈은 아니었다. 이후 몇몇 선수들이 MVP에 도전하기는 했지만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최근 3년 모두 외국인 선수가 MVP였고, 이중 투수도 두 명(린드블럼‧미란다)이었다. 폰트가 감히 이 대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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