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베어스 이병헌 ⓒ 이천, 김민경 기자
▲ 두산 베어스 이병헌 ⓒ 이천, 김민경 기자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수면마취가 지겨워졌어요. 너무 많이 해서."

이보다 두산 베어스 좌완 신인 이병헌(19)의 지난 1년을 더 솔직하게 표현할 말이 있을까. 이병헌은 지난해 8월 2020년 KBO 신인 1차지명을 앞두고 수술대에 올랐다. 서울고 2학년 때 최고 151㎞ 강속구를 던지는 왼손투수로 주목받으며 서울 1차지명 1순위 카드를 쥔 두산행이 일찍이 점쳐졌는데, 3학년이 되자마자 팔꿈치 통증이 발목을 잡았다. 신인 지명을 받기 위해 휴식과 재활을 반복하며 마운드에 힘겹게 서도 자기 기량이 나오지 않았다. 2학년 때보다 직구 구속이 10㎞가량 줄어 선수도 두산도 당황했다. 이병헌은 고심 끝에 수술을 결심했고, 두산은 이병헌의 미래 가치에 무게를 두고 1차지명을 강행했다. 

당시 이병헌 스카우트를 담당한 두산 관계자는 "스카우트팀은 최악의 경우 올해까지는 준비 기간으로 생각하려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병헌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재활 속도로 구단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선수와 구단 모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몸을 만드는 쪽에 무게를 뒀는데도 회복 상태가 좋았다. 19살 어린 나이도 한몫했겠지만, 이병헌의 재활 의지가 더 대단했다. 

위 관계자는 지난 6월초 "계획보다 빠르다. 문제가 있으면 늦추려고 했는데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평지에서 캐치볼만 하다가 처음 마운드에 올라갔을 때는 마음처럼 공이 던져지지 않아서 애를 먹은 것 같은데, 투수 코치진의 지도를 받으면서 향상되고 있다. 올해 2월 본격적으로 박치국(24)과 훈련을 하면서 재활 파트너를 잘 만나 더 빨라진 것 같다. 요즘은 살도 많이 빠져서 예뻐졌다"고 설명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병헌은 처음 두산에 합류했을 때 몸무게가 거의 100㎏에 육박했다. 수술 전까지는 몸무게 88㎏을 유지했는데, 수술 뒤 운동량이 줄자 눈에 띄게 살이 불어났다. 불어난 체중에 걱정이 컸던 이병헌은 이천 베어스파크에 오자마자 고민을 해결했다. 금방 10㎏ 이상 감량해 다시 88㎏을 유지하고 있다. 

이병헌은 "수술하고 생각지도 못한 몸무게가 나와 당황했는데, 이천에서 합숙을 시작하니까 바로 빠지더라. 운동량이 적으니까 조금만 먹어도 살이 쪄서 걱정했는데, 여기(베어스파크)에 온 뒤로는 그런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24시간 숙소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운동하는 데 다 쓰니까 잘 빠지더라"고 답하며 웃었다. 

본격적으로 공을 만지기 시작하면서는 김상진, 권명철 투수코치와 트레이닝 코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병헌은 "두 코치님은 투구 폼보다는 어떤 느낌으로 던져야 하는지 알려주신다. 그게 더 받아들이기 편하더라. 처음에 밸런스가 안 맞을 때 코치님들께서 보시면서 방법을 조금씩 알려주셨다. 수술하고 오랜만에 마운드에 올랐고, 피칭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됐으니까. 급하지 말라고 하셨다. 트레이닝 코치님들은 지금 내가 팔 상태가 어떤지 알려주시고, 내가 팔에 드는 느낌을 설명하면 수술해서 이런 느낌이 있는 것이라고 계속 알려주셔서 도움이 됐다"고 했다. 

▲ 서울고 시절 이병헌. 이제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잠실 마운드에 서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 곽혜미 기자
▲ 서울고 시절 이병헌. 이제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잠실 마운드에 서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 곽혜미 기자

공을 못 만지는 동안은 마음을 다스리는 게 가장 어려웠다. 이병헌은 "재활 과정을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더라. 지난해 8월 수술해서 몇 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도 1년 넘게 지난 느낌이 들더라. 시간이 잘 안 갔다. 몸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벌었는데, 그만큼 마음이 힘들어지는 시간도 길어졌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생각을 비우는 수밖에 없었다. 이병헌은 "천천히 욕심을 버리자고 생각하는데, 피칭하는 날이면 조금씩 급해지는 것 같아 조절하려 했다. 예전에는 생각 없이 단순하게 야구를 잘했는데, 수술하고 다치면서부터는 그런 게 잘 안 됐던 것 같다. 요즘은 유튜브를 보거나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을 비우려 한다. 최근에 갑자기 공룡에 꽂혀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니까 시간이 훅 가더라. 공룡이 멸종된 이유 같은 영상들을 봤다"고 밝혔다. 

그렇게 꼬박 1년 동안 생각을 비우며 차근차근 준비한 끝에 드디어 마운드에 섰다. 이병헌은 지난달 29일 이천베어스파크에서 열린 고양 히어로즈(키움 2군)와 퓨처스리그 경기에 선발 등판해 1이닝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공 10개를 던지면서 직구와 슬라이더를 섞어 던졌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2㎞를 기록했다. 첫 실전인 것을 고려하면 시작이 좋다. 

이병헌은 "첫 등판이라 설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이 했다. 그래도 팀에서 많이 응원을 해주신 덕분에 더 힘을 내서 던질 수 있었다"고 첫 실전 소감을 밝히며 "제구가 조금 아쉬워서 앞으로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보완하려 한다. 앞으로 경기를 더 나가게 된다면 구속에는 중점을 두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종 목표는 잠실 마운드다. 먼저 1군 무대를 경험한 2021년 1라운드 우완 김동주(20)에게 잠실 마운드에서 던진 기분을 물어본 뒤로 더 간절해졌다. 지금부터 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지난 1년을 잘 버틴 만큼 최선을 다해 도전하려 한다. 

이병헌은 "(김)동주 형한테 1군 올라갔다 왔을 때 어떠냐고 물었더니 재미있다고 하더라. 이야기를 들어봐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관중들이 있고 응원가가 흘러나오는 자체가 재미있다더라"며 김동주가 느낀 감정을 본인도 느낄 수 있는 날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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