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은 직후 SSG 선수들 ⓒ곽혜미 기자
▲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은 직후 SSG 선수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최정의 추격 투런, 그리고 9회 터진 김강민의 결정적인 역전 굿바이 3점 홈런으로 승리를 거둔 SSG 선수들은 6차전을 앞두고 전날의 여운이 가라앉지 않는 듯했다. 취재진의 질문에 선수들은 각자 역전의 순간을 떠올렸다. 즐겁게 말한다는 느낌보다는, 안도의 느낌이 묻어있었다.

경기장 분위기는 꽤 번잡했다. 시리즈가 6차전에서 끝날 가능성이 있었기에 한국시리즈를 주관하는 KBO도 바빴다. 경기 전 진행을 도와줄 수많은 진행요원들이 모인 미팅 자리에서는 “SSG가 오늘 이겨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경우”라는 ‘경우의 수’ 교육이 한창이었다. 이날 시리즈가 끝날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2022년 KBO리그가 막바지에 왔음을 실감하기에는 충분했다. 

3승2패로 시리즈 우위를 다시 잡은 SSG는 무조건 6차전에서 끝낸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7차전까지 가면 변수가 너무 많아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2차전에서 키움 타선을 효율적으로 잘 막아낸 윌머 폰트가 선발로 나선다는 점도 그 절박함을 더했다. 양쪽 모두 긴장의 상태에서 경기에 돌입한 가운데, SSG는 경기 초반 열세를 딛고 결국은 4-3으로 역전승하고 감격의 통합우승을 확정지었다.

경기 양상이 긍정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는 게 당시를 회상하는 몇몇 주축 선수들의 이야기다. 주장 한유섬의 부상 또한 선수들의 마음을 뭔가 뜨겁게 했다. 

SSG는 3회 임지열에게 투런포를 맞았지만 3회 반격에서 상대 실책을 틈타 2점을 만회했다. 시리즈에서 기복 있는 모습이 있었던 한유섬은 3회 2사 2,3루에서 1루 땅볼을 친 뒤 머리부터 먼저 들어가는 슬라이딩으로 상대 실책을 유도하며 동점의 기틀을 놨다. 그러나 이후 상황에서 2루를 돌아 3루로 뛰다 오른쪽 햄스트링에 큰 부상을 당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3루에 가야 한다는 강한 집념으로 뭉친 한유섬은 절뚝이며 3루에 들어간 뒤 쓰러졌다. 사실 시즌 후반부터 햄스트링 상태가 좋지 않았던 한유섬이었지만, 자신의 몸을 돌볼 여유는 없었다.

한 선수는 “특별히 말은 없었지만 주장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오늘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게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 꼭 활약을 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공교롭게도 SSG의 경기력은 3회 이후 정말 탄탄해졌다. 무엇보다 수비가 인상적이었다. 파울 지역으로 뜬 타구를 최지훈 박성한 등이 기막한 수비로 건져내며 마운드의 폰트를 지원사격했다.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의 수비는, SSG가 왜 올해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는지를 증명이라도 한듯 탄탄했다.

▲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부상 교체되는 한유섬 ⓒ곽혜미 기자
▲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부상 교체되는 한유섬 ⓒ곽혜미 기자

6회 이정후에게 솔로포를 맞아 2-3으로 뒤졌지만, 곧바로 6회 김성현이 결정적인 2타점 적시타를 때리며 경기를 뒤집었다. 이제 7~9회, 3이닝을 막으면 대망의 우승까지 다가설 수 있었다. 불펜에서는 여러 선수들이 몸을 푼 가운데, 5차전 선발로 나가 84개의 공을 던진 김광현 또한 9회 등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 전 김원형 SSG 감독은 이기는 상황에서 김광현의 등판이 가능하느냐는 질문에 “가능성은 있다”고 대답했다. 아무리 김광현이 믿을 만한 카드라고 해도 바로 전날 84개의 공을 던진 만큼 컨디션은 미지수였다. 그러나 이기는 상황에서 김광현의 등판은 예정이 되어 있었다. 이미 그렇게 합의를 마친 상태였다. 

폰트는 7⅔이닝을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3실점하기는 했지만 팀 승리의 발판을 놓는 투구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평소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폰트지만, 마운드를 내려갈 때는 자신과 호흡을 맞춘 포수 이재원의 가슴을 팍 치는 등 고마움과 파이팅을 드러냈다. 다른 선수들은 “폰트는 무뚝뚝한 편에 가깝다. 그렇게 흥분하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고 했다. 

“왜 이정후가 내 공을 치지 못하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말한 김택형이 이정후를 삼진으로 처리하고 8회의 문을 닫았다. 이정후의 위력을 실감한 SSG로서는 이 아웃카운트 하나가 굉장히 귀했다. 8회가 끝난 뒤 귀빈실에서 더그아웃으로 내려가는 민경삼 대표이사는 긴장한 듯 “이제 (아웃카운트) 세 개 남았다”고 두 손을 꼭 맞잡았다. 

이번 시리즈 들어 푸이그를 상대로 좋은 활약을 한 박종훈이 다시 푸이그를 저격했고, 남은 아웃카운트 두 개는 예정대로 김광현이 처리하면서 SSG의 6차전 승리는 완성됐다. 이지영의 날카로운 타구가 오태곤의 글러브 속으로 쏙 들어가는 순간, 2022년 KBO리그의 챔피언은 SSG로 결정됐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단은 김광현을 중심으로 마운드 근처에서 얼싸 안았고, 코칭스태프와 프런트는 김원형 감독의 자리 근처에서 얼싸 안았다. 환호처럼 들리다가도, 누군가는 눈물이 찬 목소리를 냈고, 누군가는 그간의 응어리를 모두 털어내는 듯한 알다가도 모를 목소리를 냈다. 4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 12년 만의 통합 우승이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SSG 팬들도 기쁨과 눈물을 훔쳤고, 목발을 짚은 채 돌아온 한유섬의 등장에는 선수 인생 최대의 박수가 쏟아졌다. 

데일리 MVP로는 결승타를 친 김성현, 한국시리즈 MVP는 김강민이 선정됐다. 한국시리즈 MVP를 놓고 투표인단의 생각이 조금 갈렸는데 임팩트 있는 활약을 펼친 김강민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MVP 인터뷰를 기다리는 김강민은 “사실 누가 봐도 최정이 (MVP를) 받아야 했는데, 기자분들이 이렇게 상을 주셨다”고 멋쩍어했다. 

그러나 누가 MVP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수많은 우승을 경험한 SSG의 전설들은 모두가 잘해서 얻은 우승 트로피고, 또 그렇기에 구단의 미래가 밝다고 했다. 매번 주축으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던 이 선수들은, 이제 자신들이 늙어 뒤로 빠지더라도 후배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시리즈에서 확인했다고 자신했다. 그렇기에 이전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감회가 조금 남달랐다. 

▲ 공식 우승 세리머니에 임하는 SSG 선수단 ⓒ곽혜미 기자
▲ 공식 우승 세리머니에 임하는 SSG 선수단 ⓒ곽혜미 기자

1차전 패배 후 “우리 애들이 그렇게 처질 애들이 아니다”고 말했던 김강민은 “모든 선수들이 잘했다. 어린 선수들이 큰 무대에서 긴장하지 않고 시리즈를 잘 끌어왔다”고 후배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책임진 김광현은 “한 명 한 명 다 언급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진짜 선수들이 신구조화를 잘 이뤄서 대기록과 함께 우승할 수 있었다. 떨지 않고 너무 잘해줬다. 앞으로도 충분히 강팀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나이를 먹고 은퇴할 건데, 랜더스라는 명문을 계속 이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우승을 후배들에게도 돌렸다.

멋진 승부를 펼친 상대 팀에 대한 존중도 잊지 않았다. 추신수는 “정말 멋진 승부를 펼친 키움 선수들에게 정말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힘든 상황에도 정말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에 그라운드에 선 선수로서 감탄했다”고 경의를 표했다. 다른 선수들도 “키움의 어린 선수들이 정말 야구를 알고 그라운드에 들어온다. 대단하다”, “꾸준히 가을야구에 나가는 건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박수를 보냈다. 김원형 감독은 “불펜의 체력 문제였는데 한현희가 빠진 건 우리로서는 다행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세리머니는 비교적 조용하게 진행됐다. 호텔이나 다른 장소로 가지 않고 경기장 내 구내 식당에서 간단한 샴페인 세리머니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11월 8일, 2022년 KBO리그 최종일의 일정은 랜더스의 성공적인 랜딩을 끝으로 조용히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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