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은 한국 축구와 아름답게 이별했다. ⓒ연합뉴스
▲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은 한국 축구와 아름답게 이별했다. ⓒ연합뉴스
▲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은 한국 축구와 아름답게 이별했다. ⓒ연합뉴스
▲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은 한국 축구와 아름답게 이별했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도하(카타르), 월드컵 특별취재팀 이성필 기자] 완고한 파울루 벤투(53) 축구대표팀 감독이 자신 있게 축구대표팀을 이끌었던 것은 분명한 철학이 있어 가능했다. 애초 1순위도 아니고 후순위에서 선택받아야 하는 감독 중 한 명이었다는 점에서 더 큰 성과물을 남긴 벤투 감독이다. 

벤투 감독은 김판곤(53) 전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위원장(현 말레이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이 고심하며 영입한 인물이다. 애초에는 가장 1순위는 에르베 르나르 사우디아라비아 감독이었다. 프랑스 출신의 르나르 감독은 주로 아프리카 국가 대표팀을 맡아 왔다. 

잠비아, 앙골라 코트디부아르, 모로코 등 북서 아프리카 국가를 주로 맡았다. 2019년 7월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고 일본, 호주를 따돌리고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1위로 통과하며 본선행을 이끌었다. 

르나르 감독은 소위 선수대기실 대화가 상당히 정력적인 편이다. 아르헨티나와의 첫 경기를 앞두고 "경기 끝나고 리오넬 메시에게 사인이나 받으려고 그러느냐"라는 대기실 대화가 공개된 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0-1로 지고 있던 경기를 2-1로 뒤집은 것은 사우디 선수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월드컵 기잔 중 스포티비뉴스와 연락이 닿았던 김 전 위원장은 "현 대표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례다"라면서도 계속 질문을 거듭하자 "르나르 감독과 접촉 당시 그에게 프랑스 자택이든 아프리카 어디에 있든 만나주기만 하면 바로 간다고 했다. 유럽에 머무르다가 연락이 왔고 프랑스로 오라고 해서 바로 미팅했다"라고 회상했다. 

감독 선임을 위한 세부 기준표 등을 세세하게 만들어 르나르에게 꼼꼼히 질문했다고 한다. 김 전 위원장은 "르나르에게 대표팀이 향후 경기를 주도하는 팀으로 가야 한다고 했고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보여주며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더니 자신의 노트북을 열어 각종 훈련 프로그램부터 코칭, 경기 운영 등 세세한 것을 보여주더라. 그러면서 '이렇게 해주기를 원하는 것 아니냐'라고 되묻더라. 그래서 수락을 기다렸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르나르는 고민을 거듭하다 고사했다고 한다. 이유는 불명확했지만, 위약금 문제가 컸던 이유도 있고 이미 사우디 축구협회로부터 제안이 들어왔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거액의 연봉은 한국이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복잡한 과정에서 선임된 인물이 바로 벤투 감독이다. 김 위원장은 "벤투 감독은 정말 꼼꼼한 사람이다. 공적인 부분에서는 정말 명확하다.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공사 구분이 철저했다"라고 설명했다. 일에 몰두하는 과정에서는 믿고 또 믿었던 셈이다. 

▲ 에르베 르나르 사우디아라비아 감독 ⓒ연합뉴스
▲ 에르베 르나르 사우디아라비아 감독 ⓒ연합뉴스

르나르처럼 말로 선수들을 조련하는 달변가, 용장형은 아닌 벤투 감독이다. 김 전 위원장은 "사우디는 한국과 비교하면 선수들의 정신력에서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었고 이를 르나르가 잘 파고 들어 아르헨티나전 승리를 만든 것 같다. 반대로 벤투 감독은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말을 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상황에 따른 축적된 기록과 자신이 가진 경험으로 선수들을 이끌었다. 선수들이 벤투 감독의 훈련 프로그램을 믿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것이다"라고 말했다.

워낙 쏟아지는 포르투갈 출신 지도자 중에서도 벤투 감독은 자신의 철학을 분명하게 쌓은 사람이었기에 김 전 위원장도 경기를 치른 뒤에는 소위 '리뷰'를 자신과 임원들에게 직접 해서 긴장감을 심어줬다.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가 있었는지 직접 토론하며 서로 문제점이 무엇인지 찾았다. 이 과정에서 홍명보 전 전무(현 울산 현대 감독)도 지도자의 입장을 잘 알기에 자유 토론에서 나온 내용은 다 정리하고 밖으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정이 험난해도 나온 결과를 토대로 수정 보완을 거쳐 월드컵 본선에서 보여주면 되는 일이었다. 

대신 외부에서 뭐라고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았다. 김 전 위원장도 벤투 감독에게 어떤 말이라도 건네야 하나 싶다가도 그랬다가는 간섭이나 월권으로 비칠 수 있어 그냥 뒀다고 한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던 것이 축구협회는 슬그머니 감독선임위원장의 역할을 '자문'으로 바꿔 놓았다. 벤투 감독에게 직접적인 조언 자체가 되지 않았고 그사이 김 전 위원장이 말레이시아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그를 응원하는 역할로 변신했다.

과거 김 전 위원장에게 사령탑의 경력과 더불어 나이 기준을 질문한 적이 있다. 나이가 감독 선임의 기준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6, 70대가 되더라도 자기 능력만 있다면 큰 문제가 없다.

그는 "세계 축구의 흐름은 정말 빨리 변한다. 현재 전술, 전략을 주도하는 지도자들은 보통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 사이다. 특히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면 더 좋다. 흡수와 대응력이 빨라 그렇다"라고 설명했다. 벤투 감독이 나이대에 적합하고 꼭 그가 아니더라도 국내, 외국인 할 것 없이 지도자를 영입한다면 해당 연령대가 적격이라는 것이다.  

2018년 9월 포르투갈 축구협회에서 만났던 움베르투 코엘류 전 대표팀 감독(포르투갈 축구협회 부회장)도 비슷한 생각을 기자에게 전한 바 있다. 그는 "벤투 감독은 젊은 지도자라는 장점이 있다. 그가 한국 대표팀을 맡았고 바로 직전에 월드컵을 치르지 않았나. 무엇이 부족했는지 제3자 입장에서 잘 알 것이다. 자기 철학이 확실해 믿고 가는 시간이 길 것이다. 이를 이해해줘야 한다"라고 전했다. 코엘류 전 감독의 의견대로 벤투 감독은 주도형 축구를 심었고 월드컵 16강 진출의 성과물을 내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새로운 감독을 선임해야 하는 대한축구협회 입장에서는 벤투 감독을 선임했던 일종의 기준표를 다시 꼼꼼하게 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국내, 해외 감독을 망라하더라도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하고 믿음으로 임기 내내 방어막과 조언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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