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에바스 생각이 딱 났다" 결국 빙의해 버린 고영표…손바닥 부었지만 "이게 훨씬 낫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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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대구, 최원영 기자] 어쩌면 그 기운을 받은 걸지도 모른다.
KT 위즈 우완 언더핸드 투수 고영표(35)는 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7이닝 4피안타 1사구 5탈삼진 무실점을 뽐냈다. 시즌 11승째를 수확했다.
총 투구 수는 97개(스트라이크 68개)였다. 투심 패스트볼(50개)과 체인지업(30개), 커브(17개)를 섞어 던졌다. 투심 최고 구속은 141km/h를 찍었다.
고영표의 활약 덕분에 KT는 삼성을 2-0으로 꺾는 데 성공했다. 이날 삼성 선발투수 원태인도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으나 6회초 터진 김현수의 투런포 한 방이 승패를 결정했다. KT의 팀 순위는 그대로 2위지만 1위 삼성을 0.5게임 차로 바짝 추격 중이다. 의미 있는 승리였다.
고영표는 1회말 2사 후 구자욱에게 중전 안타, 최형우에게 우중간 안타를 맞아 2사 1, 2루에 처했다. 류지혁의 중견수 뜬공으로 위기를 넘겼다.
2회말은 삼자범퇴였다. 선두타자 전병우의 타구는 고영표가 직접 맨손으로 잡아 1루에 송구해 땅볼 아웃 처리했다. 후속 르윈 디아즈의 타구엔 중견수 최원준의 슈퍼 캐치가 나왔다. 이 타구는 라이온즈파크 가장 깊은 곳으로 날아갔는데 최원준이 빠르게 달려와 담장 쪽으로 점프하며 공을 낚아챘다. 최고의 호수비로 고영표에게 아웃카운트를 선물했다.
3회말 김지찬의 중전 안타와 도루 등으로 2사 2루. 고영표는 구자욱을 3루 땅볼로 묶어냈다. 4회말엔 최형우의 우중간 안타 후 류지혁의 2루수 방면 병살타로 2아웃을 빚었다. 전병우는 포수 스트라이크 낫아웃 상태서 포수 태그아웃으로 제압했다. 5회말엔 삼자범퇴로 이닝을 삭제했다.
6회말 선두타자 김지찬의 땅볼 타구가 고영표에게 향했다. 글러브를 낀 왼손을 맞은 고영표는 침착하게 1루로 송구해 1아웃을 기록했다. 왼손 상태를 점검한 뒤 투구를 이어갔다.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7회말에도 마운드에 올라온 고영표는 2사 후 전병우를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켰다. 디아즈의 유격수 땅볼로 3아웃을 완성했다. 권동진이 좋은 수비로 힘을 보탰다.
승리 후 만난 고영표는 "일단 컨디션이 좋았다. 지난 등판 때 경기력이 안 좋았는데 매를 한 대 맞고 정신이 번쩍 든 느낌이었다. 노력한 게 잘 맞아떨어져서 결과로 이어진 듯하다"며 "한화 이글스전에선 이상할 정도로 맞는 게 다 안타가 됐다. 근본적으로 내 메커니즘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많이 고민했다. 포수의 미트 방향으로 전진하는 힘이 약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직전 등판이었던 지난 3일 한화전서 고영표는 3이닝 9피안타(1피홈런) 2볼넷 5탈삼진 7실점으로 물러난 바 있다.
그는 "휴식일인 월요일(7일)에도 야구장에 나와 공을 좀 던졌다. 그러면서 (해답을) 찾은 듯하다. 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최대한 해결해 나가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스타일이다"며 "이번 게임에선 공 끝의 힘이 잘 전달돼 후반으로 가도 구속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 부분을 잘 유지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선두 경쟁 중인 삼성과의 중요한 맞대결이었다. 고영표는 "직전 삼성전(6월 28일) 때 내가 대구에서 6이닝 5실점을 했다. 홈런도 맞고 (구)자욱이에게도 많이 얻어맞았다"며 "오늘(9일)은 다른 날보다 긴장을 많이 했다. 1-2위 싸움이라 경기 초반에 잘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 대신 마운드에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최대한 집중했다"고 전했다.
이어 "경기가 시작되면 긴장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좋은 흐름으로 투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야수들이 수비로 흐름을 딱딱 끊어줘 나도 마운드에서 자신 있게 공을 던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최원준의 호수비에 관해서는 "와 진짜, 그건 맞는 순간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디아즈 선수가 정 타이밍에 너무 잘 쳤다"며 "깊은 코스로 가서 다행이었다. 담장 앞에서 공을 낚아채는 걸 보고 '오늘 잘 풀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호수비가 나온 덕에 긍정적인 마음이 커졌다"고 답했다.
이날 KT와 삼성의 맞대결은 2021년의 1위 결정전(타이브레이크)을 연상케 했다. 당시 KT가 삼성을 1-0으로 꺾고 정규시즌 1위를 확정했고, 창단 첫 통합우승까지 이뤄냈다. 1위 결정전에선 선발투수 윌리엄 쿠에바스가 투혼을 발휘했다. 정규시즌 경기서 7이닝 2실점 108구를 소화한 뒤 단 이틀 휴식 후 1위 결정전에 출격해 7이닝 무실점 99구를 뽐냈다. 그날 삼성 선발투수는 공교롭게도 원태인이었다.
고영표는 "나도 그 생각을 했다. 이번 경기를 준비하면서 '쿠에바스에게 기운을 좀 받아야 하나?' 싶었다. 마침 오늘 상대 팀에서 원태인 선수가 나오기도 했다"며 "국내투수끼리 맞대결을 펼치게 됐는데 SNS를 보다가 쿠에바스 생각이 딱 났다. 남다른 각오로 준비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타구에 맞은 왼손은 괜찮을까. 고영표는 "손바닥이 조금 부었는데 타구가 빠지는 것보단 내 몸에 맞고 떨어지는 게 훨씬 낫다. 김지찬 선수가 발이 빠르고 직전 게임 때도 기습 번트로 살아 나가 내가 무너졌던 기억이 있어 번트까지 대비하고 있었다"며 "오늘은 타구가 내게 정면으로 왔다. 유독 그런 타구가 많았다. 공이 내 몸에 맞고 떨어진 게 훨씬 다행이라고 본다"고 덤덤히 말했다.
이어 "교체가 필요한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물론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미소 지었다.
보통 언더핸드 투수는 좌타자에게 약하다. 삼성 타선에선 대부분이 좌타자였다. 고영표는 "나와 만나는 팀들은 다 좌타자를 많이 배치한다. 삼성의 어린 선수들은 경험을 많이 쌓은 상태고, 베테랑 선수들도 많았다. 타자별로 약점을 찾아 거기에 투구하려 했다"고 밝혔다.
결국 고영표가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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