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 뿌리를 찾아서②-누구나 갖고 있을 운동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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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19년 역사적인 제100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서울)를 앞두고 익산시를 비롯한 전라북도 일원에서 열린 제99회 전국체전이 지난 18일 막을 내렸다. 1920년 7월 창립한 조선체육회(오늘날 대한체육회)는 그해 가을 전국체전의 기산점이 되는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개최해 100여 년 뒤 후손들이 프로 야구와 축구 월드컵에 열광하고 조기 축구와 직장 야구, 3-3 농구, 주말 골프를 즐기는 스포츠 환경의 든든한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 스포츠 ‘선사 시대’에 선각자들은 이 땅에 스포츠를 도입하기 위해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활동을 했을까. <편집자 주>
1896년 1월 관립으로 설립이 공포된 무관학교는 군대 간부들을 양성할 뿐만 아니라 싹이 트고 있던 학교 병식체조(兵式體操)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게 된다. 고종의 뜻을 받들어 당시 정부는 각급 학교에 체조를 보급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1902년 4월 학부(교육부)는 군에 의뢰해 사관 5명으로 하여금 외국어학교 학생들에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에 30분씩 체조를 지도 감독하도록 했다.
그러나 일부 교사들이 이에 협조하지 않고 무단으로 일찍 퇴근하자 학부가 해당 교사들에게 1개월 감봉 처분이라는 엄벌을 내린 사실로 미뤄 볼 때 당시 정부가 얼마나 체조 보급에 힘쓰고 있었는지 알 만하다.
1899년 4월 4일 중학교의 관제 공포가 있었으며 체조 교사가 없는 학교를 위해 군부에 무관학교 졸업생들 가운데 한두 명씩을 선발해 보내 줄 것을 요청했다. 따라서 당시 체조 교사들은 군관 출신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07년 10월과 11월 학부가 교동보통학교에서 가진 체조 강습회 강사는 군부가 파견한 육군 절령(대령) 노백린이었다. 노백린은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자 낙향해 신민회 운동에 관여하고 뒷날 상해 임시정부 주석 김구와 함께 독립운동에 가담한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장의 중책을 맡았고 뒤에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노백린은 개화기 체육인 출신의 독립지사다.
서울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던 체조는 지방까지 보급의 물결이 미치기 시작해 1909년 7월 25일부터 8월 7일까지 평양공립보통학교에서 체조 강습회가 열렸다. 이 무렵 병식체조가 성장 과정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지나친 신체적 부담을 준다는 비판이 일기 시작했으며 휘문의숙(오늘날 휘문중·고등학교) 체조 교사인 조원희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한성고등학교 체조 교사인 일본인 요코지 스테지로는 1910년 6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곤봉체조 시범을 보였고 체조 시간에 풍금 연주로 음악이 신체 동작을 매끄럽게 하도록 시도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 올림픽 첫 대회가 개최된 1896년, 이 땅에서는 첫 운동회가 열렸다. 그해 5월 2일 서울 동소문 밖 삼선평(오늘날 삼선교 근처)에서 외국어학교 분교인 영어학교 영국인 교사 허치슨 지도 아래 열린 운동회가 우리나라 학교 운동회의 효시다.
이 운동회를 취재해 보도한 당시의 독립신문 기사를 풀어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영어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5월 2일 동소문 밖으로 야유회를 갔다. 오랫동안 학교 교실에 갇혀서 공부만 하다가 좋은 날씨에 경치 좋은 곳에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동을 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마음과 지식을 키우는 것도 매우 소중하지만 몸을 튼튼히 키우자면 맑은 공기 속에서 운동하고 목욕을 자주 해서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해인 1896년 5월 30일에는 정부 고관과 각 학교 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훈련원(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 운동장 터)에서 각 관립 소학교 연합 운동회가 열렸다. 장동, 계동, 정동, 묘동 등의 학생 181명이 참가한 가운데 치러진 이 운동회는 오심 때문에 분쟁이 일어날 정도로 분위기가 뜨거웠다고 한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하루를 신나게 놀던 운동회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글쓴이도 물론 운동회와 관련한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열린 운동회에서는 운동장에 놓은 종이에 적힌 사람을 찾아 그 사람과 함께 뛰는 종목이 있었는데 집어 든 종이에는 ‘아버지’가 적혀 있었다. 마침 그해 운동회에는 아버지가 와 있었다. 손을 잡고 뛰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손에 끌려 절룩거리며 뛰고 있었다. 그때 글쓴이는 알았다.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상이군인이라는 사실을. 아버지는 생전에 일상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었지만 제대로 뛰지 못했다.
색색의 습자지를 붙인 곤봉을 들고 매스게임을 한 일, 기마전을 하다 떨어져 팔뚝에 상처가 난 일 등 운동회를 생각하면 여러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런데 요즘 운동회 풍경이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꽤 많은 학교, 특히 서울 등 대도시 학교 가운데 적지 않은 학교가 운동회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사라지는 운동회 뒤에는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행사를 교직원들이 준비하지 않고 이벤트 업체 등에 맡기는 학교도 상당수라고 한다.
사라지는 운동회뿐만 아니라 ‘공부하지 않는 운동선수’에 못지않게 ‘운동하지 않는 학생’도 큰 문제인 요즘의 교육 풍토에 대해 100여 년 전 스포츠[체육, 體育] 선각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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