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더슨 실바(왼쪽)와 조제 알도는 극우 성향 지도자에게 지지 의사를 밝혔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대런 틸(25, 영국)은 지난해 9월 보얀 벨리키코비치를 만장일치 판정승으로 이기고 UFC 3연승을 완성했다. 라운드 내내 벨리키코비치를 압도했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MMA 무패 전적(15승 1무)도 이어 갔다.

엉뚱한 곳에서 잡음이 일었다. 옥타곤 인터뷰에서 작은 야유가 흘렀다. 틸은 승리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정치 얘기를 꺼냈다.

"난 정치에 관해 대화 나누는 걸 즐긴다. 내 코치 마르셀로 브리가데이로 덕분이다. 룰라(좌파 성향 브라질 전 대통령)는 감옥에 있지만 2018년엔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있다."

틸 발언은 다음 날 여러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대개 부정적인 뉘앙스였다.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동성애 혐오, 독재 옹호 발언 등으로 논란이 잦은 문제적 후보를 영국 청년이 지지했다는 내용이었다.

스무 살 무렵 브라질로 격투 유학을 떠났던 틸은 2015년 5월까지 남미에서 활동했다. 12연승을 달리며 승승장구했다. UFC로부터 러브콜도 받았다.

미국 종합격투기 매체 블러디 엘보는 "(브라질·아르헨티나에서 활동했던) 이때 틸은 강성 우파 보우소나로에게 관심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민주주의 위기론을 지피고 있는 극우 후보를 향한 동경이 이 시절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지난 28일(이하 한국 시간) 실시된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보우소나루 사회자유당 후보가 55.1% 득표율로 승리했다. 좌파 노동자당 페르난두 아다드 후보를 10.2%나 앞선 완승이었다. 보우소나루는 이날 밤 생중계된 대선 승리 연설에서 "브라질을 뼛속부터 바꿔 운명을 개척할 것"이라며 나라 방향을 '우클릭'할 것임을 선언했다.

거침없는 언행으로 유명해졌다. 보우소나루는 동료 여성 의원인 마리아 로사리오에게 "성폭행할 가치도 없는 여자"라며 욕설을 퍼부어 입길에 올랐다. 또 "50년 전 '강한 브라질, 힘 있는 남미 대국'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해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브라질 군사독재정권(1964~1985년)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AP통신은 "(보우소나루 당선은) 매우 급진적인 변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흐름과 유사하다. 당선인 스스로도 '브라질의 트럼프'를 자처한다"고 평가했다.

▲ 자이르 보우소나루(왼쪽)를 병문안하러 간 파울러 코스타 ⓐ 파울러 코스타 인스타그램 캡처

◆브라질 MMA 격투가 지지 한몸에 받는 '극우 성향 지도자'

UFC 미들급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신성' 파울로 코스타(27, 브라질)는 보우소나루 열혈 지지자다. 코스타는 지난 9월 대선 유세 중 괴한의 피습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보우소나루를 찾아가 격려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신은 우리나라를 바꿀 이 남자를 보내줬다. 이를 흔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캡틴(보우소나루)은 (피습 사건을 계기로) 더 강해질 것이다. 브라질을 바꾸자!"라고 적었다.

코스타 외에도 정말 많다. 반더레이 실바, 앤더슨 실바, 조제 알도, 하파엘 도스 안요스, 호이스 그레이시, 헨조 그레이시, 월리 알베스, 티아고 타바레즈, 파비오 말도나도, 호나우도 자카레 소우자 등이 보우소나루 지지를 직간접적으로 표했다. 종합격투기에서 굵직한 자취를 남긴 브라질 파이터 대다수가 극우 지도자를 향해 지지를 보낸 셈이다.

알도 영상이 대표적이다. 그는 대선 유세가 한창인 지난 9월 8일 지지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화제를 모았다. 

전 UFC 페더급 챔피언은 "국민 여러분, 브라질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저 알도는 위기에 빠진 현 시국에서 캡틴 보우소나루를 지지합니다.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캡틴, 우리는 당신과 함께 갑니다"라고 코멘트했다.

블러디 엘보는 "브라질에서 위에 열거된 파이터들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축구선수 못지않게 지지를 받는 격투가들 집단 찬사는 보우소나루 당선에 결정적인 노릇을 했다. 당선인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신념을 희석시키는 효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파이터들 지지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었다는 해석도 있다. 브라질은 2003년 룰라 전 대통령 당선 이후 10여 년간 중남미 좌파 대표주자를 자임해 왔다.

그러나 거듭된 좌파 정권의 부패 스캔들과 미흡한 경제 위기 대처, 치안 불안 등으로 지지율이 뚝 떨어졌다. 무능하고 부패한 좌파 기득권에 질려있던 터에 UFC 전현직 레전드가 이 같은 분위기를 '굳혔을 뿐'이라는 시각이 힘을 얻는다.

보우소나루는 그간 경기장을 직접 찾거나 SNS를 통해 UFC 선수들과 꾸준히 교류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스포츠 스타플레이어와 사진을 찍고 응원하는 영상을 올리면서 군림하는 우파 정치인 색을 옅게 했다. 보우소나루가 '친서민'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스포츠를 도구로 활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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