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정형근, 배정호, 박대현 기자] 대한체육회가 논란을 빚고 있는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징계 규정 전반에 대한 재정비에 나섭니다. 징계 기준 세분화와 피해자 보호 조치 강화 등을 골자로 한 대대적인 '공정위 개혁'에 돌입합니다.
스포츠공정위는 체육회 정관에 따라 국내 체육인의 징계와 포상을 심의하는 기구입니다. 전국 17개 시도체육회와 228개 시군구 체육회를 비롯해 대한체육회 회원종목단체와 시군구 종목단체까지 고려하면 셀 수 없이 많은 스포츠공정위가 존재합니다.
그동안 스포츠공정위의 ‘징계’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올 초 도마 위에 오른 보성고 아이스하키부 감독의 '폭행' 사건과 수원 모 중학교 하키부에서 일어난 미성년자 폭행·폭언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각 종목단체 스포츠공정위 심의에 회부된 두 지도자는 각각 영구제명과 자격정지 3년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는 '징계 관할에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이를 무효 처리했습니다. 시‧도체육회에서 이 사건을 다시 다룬 결과 영구제명은 자격정지 3년으로, 자격정지 3년은 1년으로 크게 감경돼 논란이 일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사례가 결코 드물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스포츠공정위가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징계 관할을 재지정할 때 최초 징계가 감경되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탓에 징계 관할 기준과 양형 기준을 더 명확히, 더 세분화해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나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 / 10월 국정감사]
“올해 대한체육회에 재심 신청이 들어온 건 중 ‘징계절차 하자’로 파악된 것이 19건이다. 19건 중 7건의 재징계가 끝났는데 놀랍게도 7건 모두 최초 회원종목단체에서 징계한 양형보다 감형됐다. 아이스하키의 경우는 최초 영구제명을 받았던 지도자가 자격정지 3년으로 징계가 줄었다. 시‧도연맹 체육회에서 또 '제 식구 감싸기'식 썩어빠진 관행대로 한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도 스포츠공정위 징계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공감하고 이를 적극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 / 10월 국정감사]
“아무래도 연고주의가 생긴 것 같다. 관계자들에 대한 교육과 엄격한 관리를 통해 바로잡아 나가겠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을 철저히 하도록 하고, 양형이나 관할권 문제를 명확하게 세분화해서 정리할 계획이다.”
대한체육회는 국정감사를 마치고 빠르게 개선안을 내놓았습니다. 스포티비뉴스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체육회는 스포츠공정위 징계 제도 전반에 대한 손질은 물론 시도 종목단체 임원과 운동부 징계 관할 명시 조항 등을 별도로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모든 체육단체에서 '정확한 기준'을 근거로 공정한 징계를 내릴 수 있는 제도적 바탕을 마련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혐의 발견 시점에 스포츠공정위가 구성돼 있지 않은 단체는 재심의 기관인 시도위원회에서 심의를 진행하도록 규정을 다듬었습니다.
학교 운동부 징계 관할도 더 명확히 했습니다. 시도위원회가 1차적으로 징계를 처리하되, 전국대회 및 국가대표 지위 관련 비위는 종목위원회에서 직접 처리하는 방향으로 수정했습니다.
징계 유형과 양형 기준을 세분화한 점도 눈에 띕니다. 폭력을 저지른 지도자를 엄벌에 처할 수 있는 세부 기준도 마련했습니다.
우선 폭력과 금품 수수, 승부조작 등 기존의 징계 행위 유형을 10가지로 세분화했습니다. 폭력의 경우 폭행 정도에 따라 극히 경미-경미-중대로만 나누던 것을 최대 12개의 구체적인 사례로 '자세히 나눠' 적시했습니다.
예컨대 '중대한 수준의 폭행'으로만 다소 모호하게 기재돼 있던 기준을 운동기구를 사용해 상해를 입힌 경우, 2명 이상 집단으로 폭행한 경우, 경미한 경우라도 2회 이상 폭행한 경우 등 7가지로 세분화했습니다.
2회 이상 폭행을 저지르면 중대한 경우의 폭력에 해당돼 즉시 영구제명됩니다.
대한체육회는 "시도체육회 등 체육회 산하 징계 심의 기관이 재량권을 남용해 지나치게 처벌을 가중하거나 감경할 수 없도록" 이 같은 개정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징계 유형과 기준이 상세히 분할되면서 심의 기관의 재량적 판단 여지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를 통해 '고무줄 징계' '널뛰기식 징계'가 확연히 감소할 것으로 체육계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용기 의원은 징계 관할을 세분화한 것에는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했습니다.
전 의원은 이전에도 징계 관할 규정은 존재했지만 수많은 단체가 정확한 징계를 내리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며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
"양정 기준이 세분화되고 명확한 기준으로서 가해자들을 징계할 수 있게끔 되었던 것이 가장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실 이렇게 세분화하더라도 담당자들이 인지하지 못하면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거든요. (...) 그러니까 대한체육회에서 이번에 잘 받고 왔지만 추가적으로 담당자 교육 등을 통해서 명확하게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게끔 해야 되고 이런 실수가 다시 발생하지 않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의원은 체육계 특유의 폐쇄적인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스포츠폭력 문제는 반복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철저하게 실태를 조사하고 정보공개 범위도 지금보다 훨씬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
"사실 구조 개선이 제일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체육계는 굉장히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작년 국감이나 올해 국감에서도 지적을 했다시피 제식구 감싸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못을 해도 그냥 이렇게 우리 사람이니까 좀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정부나 국회 차원에서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좀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다."
한 종목단체의 스포츠공정위원은 공정위원회 구성 자체부터 문제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제식구 감싸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대한체육회 산하 회원종목단체 스포츠공정위원]
“시·도 체육회나 각 회원종목단체의 스포츠공정위가 부적절한 징계를 내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스포츠공정위원을 구성할 때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넣어두고 제 입맛에 맞게 징계를 내리는 단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 신고한 피해자들만 다시 2차 피해를 보게 된다. 스포츠윤리센터에서 중징계를 요청해도 징계를 내리는 기관은 결국 스포츠공정위다. 심한 폭행이 있어도 스포츠공정위에서 제대로 된 징계를 내리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스포츠 바닥은 좁다. 인맥이나 지연이 통하지 않는 상위 단체에서 징계를 내릴 필요가 있다.”
대한체육회는 스포츠공정위원회 심의와 이사회 의결을 거쳐 개정안을 시행할 계획입니다. 대한체육회는 억울한 피해 선수가 없도록 앞으로도 규정을 다듬고 징계를 강화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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