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윔블던 남자 단식 16강전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는 닉 키리오스
▲ 2022년 윔블던 남자 단식 16강전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는 닉 키리오스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오늘 밤은 와인 한 잔이 꼭 필요합니다. 최고 수준의 경기에 근접하지는 못했지만 (16강을) 통과해서 매우 기쁘고 정말 열심히 싸웠어요. 8강에 진출했는데 제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매우 축복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영화의 대사로 2014년경부터 인터넷에서 퍼진 은어가 있다. 바로 '오늘만 산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미래에 닥칠 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이를 '오늘만 사는 사람'으로 칭한다.

테니스를 대표하는 '악동' 닉 키리오스(27, 호주, 세계 랭킹 40위)도 이 은어에 꽤 적합한 인물이다. 그는 19살이었던 2014년 윔블던 16강에서 당시 세계 1위였던 라파엘 나달(36, 스페인, 세계 랭킹 4위)를 꺾고 8강에 진출했다.

처음 출전한 윔블던에서 돌풍을 일으킨 그는 이듬해 호주 오픈에서도 8강 무대를 밟았다. 

▲ 2022년 윔블던 남자 단식 8강 진출을 확정한 뒤 관중들의 갈채를 받으며 퇴장하는 닉 키리오스
▲ 2022년 윔블던 남자 단식 8강 진출을 확정한 뒤 관중들의 갈채를 받으며 퇴장하는 닉 키리오스

주니어 시절 키리오스는 남자 테니스의 미래를 책임질 기대주로 평가받았다. 그는 타고난 좋은 체격 조건은 물론 강한 서브와 순발력을 갖췄다. 여기에 어린 선수답지 않은 두둑한 배짱까지 지녀 '악마의 재능'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키리오스의 테니스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줄곧 "난 테니스를 좋아하지만 톱 랭커만큼 열정도 동기부여도 없다. 그랜드슬램 우승이 내 최종 목표는 아니다. 난 그저 오늘 경기를 즐겁게 펼치고 난 뒤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고 말해왔다. 

키리오스는 현 남자 테니스를 오랫동안 이끌며 GOAT(Greatest of All Time : 역대 최고 선수)를 펼치고 있는 '빅3(조코비치, 나달, 페더러)'와 자신은 명백하게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빅3'는 거의 20년간 테니스를 점령했다. 그러나 그들과 똑같을 이유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크게 반박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키리오스가 숱한 기행을 저지르며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지불해왔다는 점이다.

키리오스는 지난달 29일 열린 단식 1회전 경기를 마친 뒤 왼쪽 관중석 쪽으로 침을 뱉었다.

경기 중 키리오스는 관중과 언쟁을 펼쳤고 경기가 끝나자 이 관중이 앉아있는 관중석 쪽으로 침을 뱉어 물의를 빚었다.

▲ 2022년 윔블던 경기 도중 심판에게 항의하는 닉 키리오스
▲ 2022년 윔블던 경기 도중 심판에게 항의하는 닉 키리오스

결국 윔블던 측은 키리오스에게 1만 달러(한화 약 1천293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그는 3일 스테파노스 치치파스(23, 그리스, 세계 랭킹 5위)와 맞붙은 3회전에서도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벌금 징계를 받았다. 키리오스가 항의한 이유는 2세트가 끝난 뒤 관중석 쪽으로 공을 친 치치파스에게 페널티를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국 매체 익스프레스는 "키리오스의 통산 벌금 액수가 70만 파운드(한화 약 11억 원)에 가까워졌다"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5일(한국시간) 영국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 센터코트에서 열린 2022년 윔블던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브랜든 나카시마(20, 미국, 세계 랭킹 56위)를 3-2(6-4 4-6 7-6<7-2> 3-6 6-2)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2014년 나달을 꺾고 파란을 일으킨 뒤 8년 만의 준준결승 진출이었다.

경기를 마친 키리오스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나 있을 것"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나카시마를 풀세트 접전 끝에 이긴 그는 "내가 절대적인 전투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과거에는 이런 것을 느낄 수 없었는데 오늘은 경쟁을 만끽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 2022년 윔블던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득점을 올린 뒤 환호하는 닉 키리오스
▲ 2022년 윔블던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득점을 올린 뒤 환호하는 닉 키리오스

그는 이 경기서 무려 35개의 서브에이스를 기록했다. 또한 이번 대회에서만 103개의 서브에이스에 성공하며 상대를 위협했다.

키리오스는 2019년 윔블던 단식 2회전에서 나달에게 1-3(3-6 6-3 6-7<5-7> 6-7<3-7>)으로 석패했다. 

그는 "나달과의 경기를 위해 새벽 4시에 술집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윔블던 센터코트에서 경기를 치르기 전에 에이전트가 나를 그곳(술집)에서 꺼내줘야 했다. 정말 먼 길을 걸어왔고 그것은 확실하다"며 회고했다.

키리오스는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은 물론 불성실한 훈련 태도도 늘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키리오스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유쾌하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 닉 키리오스(오른쪽)와 여자친구 코스틴 해치
▲ 닉 키리오스(오른쪽)와 여자친구 코스틴 해치

이번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16강까지 진출한 제이슨 쿠블러(29, 호주, 세계 랭킹 99위)는 영국 매체 익스프레스와 인터뷰에서 "그는 순전히 오해받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 뒤 "키리오스의 주변에 있으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나에게 그는 라커룸에서 겪은 가장 멋진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누구든지 그와 어울리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면 닉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며 키리오스를 변호했다.

쿠블러는 키리오스가 실력적으로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는 "만약 키리오스의 서브가 강하게 들어가는 날은 누구도 쉽게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있는 테니스의 전설'인 나달과 노박 조코비치(35, 세르비아, 세계 랭킹 3위)는 이번 윔블던에서도 8강에 합류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뭉치' 키리오스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키리오스는 크리스티안 가린(26, 칠레, 세계 랭킹 43위)과 8강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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