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덕의 격투기 명승부] 후배에게 KO된 선배의 한마디 "넌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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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무라 기요시(46, 일본)는 2002년 11월 24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프라이드 23에서 다카다 노부히코(54, 일본)와 경기를 앞두고 머리카락을 밀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젊은 시절 따르던 선배 다카다를 쓰러뜨려야 하는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7년 전만 해도 다무라는 다카다와 붙어 보려고 했다. 1988년 일본 실전 지향 프로 레슬링 단체 UWF에 입단한 다무라는 거기서 선배 다카다와 만났다. 1990년 UWF가 문을 닫은 뒤 다카다가 세운 'UWF 인터(UWF Inter)'라는 프로 레슬링 단체에 들어갔다.
다카다에 이은 단체 에이스로 명성을 쌓아 갈 때쯤, 다카다가 1995년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면서 둘 사이에 금이 갔다. 선배의 무책임한 행동에 다무라는 화가 났다. 같은 해 8월 18일 게리 오브라이트와 프로 레슬링 경기에서 기무라 록으로 이긴 뒤 마이크를 잡고 경기장에 있던 다카다에게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다카다 상, 나와 진검승부합시다(高田さん、僕と真剣勝負してください)." '진검승부(真剣勝負)'는 진짜 칼을 들고 하는 싸움을 뜻하는 일본말로 여기선 프로 레슬링이 아니라 실전으로 붙어 보자는 의미가 강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JazZ9YCzWvw)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고 UWF 인터로 돌아온 다카다는 후배의 하극상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단체 내 힘싸움에서 밀린 다무라는 결국 경쟁 단체 '링스(RINGS)'로 자리를 옮겼고 다카다와 거리를 두고 지냈다. 링스는 다카다와 사이가 좋지 않은 마에다 아키라가 이끌던 종합격투기 단체였다. 프로 레슬링이 아닌 종합격투기에 더 큰 포부가 있던 다무라는 여기서 파이터로서 계속 성장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다카다의 은퇴전 상대로 다무라에게 출전 요청이 왔다. 세월이 지나면서 날카롭게 서 있던 날이 무뎌진 다무라는 청운의 꿈을 함께 품었던 다카다의 마지막 상대가 돼 주기로 결정했다. 정윤하 일본 격투기 전문 칼럼니스트는 "스승이나 선배의 은퇴전에 제자 또는 후배가 상대로 서는 일이 일본에는 자주 있다. 수제자나 아끼는 후배에게 마지막 모든 걸 전수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다카다는 연예인 같은 외모에 조각 같은 근육질 몸매를 지닌 일본의 최정상급 프로 레슬러였다. 언변도 뛰어났고 연기력도 좋았다. 프로 레슬러로선 하나도 빠질 게 없는 타고난 선수였다.
그러나 실전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졌다. 다카다의 종합격투기 능력은 그다지 높지 않았던 반면, 다무라는 '고고한 천재'라는 별명으로 불린 천재형 파이터였다. 2008년 후배 사쿠라바 가즈시와 마지막 경기를 치를 때까지 48전 33승 2무 13패의 전적을 쌓았다. 애초에 상대가 안 되는 미스 매치였다.(https://www.youtube.com/watch?v=HUmon8RO-QU)
처음에 다무라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다카다가 어떻게 나올지 기다렸다. 1라운드 10분이 지나고 2라운드가 되자, 회피 능력은 세계 최고라는 놀림 받던 다카다가 갑자기 다무라에게 달려들면서 경기는 순식간에 끝났다. 다무라는 자신에게 뛰어드는 다카다의 턱에 그림 같은 오른손 카운터펀치를 꽂아 넣었다. 다카다는 고목나무처럼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정신을 완전히 잃지 않았지만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2라운드 1분 KO패.
다무라는 기뻐하지 않았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지 침통한 표정으로 다카다가 깨어나길 기다리다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반면 의식이 돌아온 다카다는 속시원하다는 얼굴이었다. 프로 레슬러 후배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다무라에게 다가가 포옹하고 "정말 고맙다"고 귓속말했다.
다카다는 '뼛속'까지 프로 레슬러였다. KO패한 은퇴전에서도 극적인 연출을 할 줄 알았다. 그는 있는 힘껏 싸워 준 후배에게 마이크를 들고 "다무라, 넌 진짜 남자다.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 다카다가 한 "넌 남자다"는 말은 이후 프라이드의 대표적인 캐치프레이즈가 된다.(https://www.youtube.com/watch?v=UZeksJmCopQ)
다카다는 2007년 프라이드가 UFC에 인수될 때까지 총괄 본부장으로 활약했다. 그의 종합격투기 전적은 3승 2무 6패. 3승 가운데 2승은 승패가 미리 정해진 일명 '워크 경기(worked match)'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어쩌면 종합격투기 파이터로는 더 나아질 수 없었던 그의 가장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현재는 지난해 출범한 라이진이라는 단체의 총괄 본부장을 맡고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유도 남자 78kg급 금메달리스트 요시다 히데히코(46, 일본)의 은퇴전 상대는 수제자였다. 2010년 4월 25일 일본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아스트라라는 대회에서 나카무라 가즈히로(37, 일본)와 싸워 0-3 판정패했다.
스승 또는 선배와 싸워야 하는 제자 또는 후배는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그러나 제자 또는 후배와 싸워야 하는 스승 또는 선배의 마음보다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제자와 후배들이 청출어람(靑出於藍) 해 주길 바라면서도 경쟁에선 지고 싶지 않은 승부사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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