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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북 탁구 단일팀 전격 합의, 이런 역사 있기에 가능했다

작성일: 2018.05.03 18:26 신명철 편집 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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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한 여자 탁구 대표 팀은 세계탁구단체전선수권대회에서 이벤트 형식으로 시범 경기를 가진 뒤 극적으로 단일팀을 구성했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남과 북이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열리고 있는 2018년 단체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부에서 단일팀을 꾸리기로 3일 전격적으로 합의한 것은 양측이 이미 한 차례 탁구 단일팀을 꾸려 본 경험이 있는데다 한때 남과 북이 모두 세계 정상급 경기력을 지닌 가운데 활발하게 교류한 역사적 배경이 있기에 가능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남과 북은 여자부에서 중국과 겨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세력이었다.

1973년 옛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한국은 이에리사와 정현숙, 박미라를 앞세워 예선 리그에서 중국을 3-1, 결승 리그에서 일본을 3-1로 물리치는 등 8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1956년 제23회 도쿄 대회에 처음 출전한 이후 17년 만에 거둔 값진 성과였다.

북한은 박영순이 1975년 제33회 캘커타 대회와 1977년 제34회 버밍엄 대회 여자 단식에서 연속 우승하며 기세를 올렸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북한 여자 탁구는 다소 위축됐다. 그러나 한국은 1987년 제39회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복식에서 양영자-현정화 조가 중국의 다이리리-리후이펀 조를 물리치고 우승한데 이어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자오즈민-천징 조를 꺾고 여자 복식 올림픽 초대 챔피언이 됐다.

1993년 제42회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현정화가 여자 단식 정상에 올랐다. 북한은 이 무렵 리분희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단식에서 동메달, 리분희-류순복 조가 여자 복식 동메달을 차지하며 1970년대 기량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이렇듯 남북 탁구는 오랜 기간 수준급 경기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국제 대회에서 중국을 위협하며 꾸준히 교류했다.

1970년대 북한 여자 탁구의 영웅 박영순이 길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소식은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 임원이 한국 선수단 임원에게 알려 줬다. 이렇듯 남과 북 탁구인들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었기에 1991년 제41회 지바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부 단체전에서 남북 단일팀 ‘코리아’가 중국을 꺾고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때 일화를 소개한다.

당시 남북 단일팀 '코리아'는 단체전은 남북 동수로 팀을 구성했고 남녀 단식과 복식, 혼합복식 등 개인전은 오기무라 이치로 ITTF 회장이 힘을 써 남북에 각각 배정된 숫자만큼 선수를 내보냈다. 이번 대회 여자 4강전부터 남북 선수 9명의 엔트리를 ITTF가 모두 받아들인 것과 같은 일이 29년 전에 있었다.

남북은 대회를 앞두고 판문점에서 단일팀 구성을 위한 실무 회담을 가졌다. 그런데 회담이 열린 지 채 30분이 안 돼 서울 삼청동에 있는 남북대화사무국으로 여자 단체전=현정화 홍차옥(이상 남 측) 리분희 류순복(이상 북 측) 혼합복식=리근상(북)-홍순화(남) 조 유남규(남)-현정화(남) 조 김성희(북)-리분희(북) 조 등 '코리아' 선수단 명단이 팩시밀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개인전은 남북 혼성이 기본이었지만 혼합복식 유-현 조(1989년 도르트문트 세계선수권대회 1위)와 김-리 조(북한의 간판 혼합복식 조로 뒤에 부부가 된다)는 메달 가능성을 따져 예외로 했다. 북 측의 세계적인 수비 전문 선수인 리근상과 남 측의 수비 전문 선수 홍순화를 혼합복식 조로 묶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앞서 얘기했듯이 남북 탁구인이 세계선수권대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 대회에서 꾸준히 교류하며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선수단을 구성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이렇게 꾸려진 남북 단일팀이 합동 훈련을 거쳐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부 단체전 정상에 오르기까지 과정은 영화 ’코리아‘로 제작돼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그러나 남북 탁구 관계가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북한은 1979년 4월 25일부터 5월 6일까지 평양에서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를 눈앞에 둔 2월 북 측 김유순 체육지도위원장과 김득준 탁구협회 회장은 남북한이 단일팀을 만들어 참가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양측 탁구협회 대표들이 판문점에서 만날 것을 제의해 왔다.

이에 따라 남북 양측은 2월과 3월에 걸쳐 4차례 회의를 가졌으나 북 측이 단일팀 구성보다는 한국 대표 팀의 출전을 저지하려는 저의를 드러내 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다. 북 측은 제2차 회담에서 단일팀 구성에 대한 알맹이 없는 제안을 내놓은 뒤 단일팀 구성에 실패할 경우 한국선수단의 대회 출전을 보장하라는 남 측의 요구를 묵살한 채 제4차 회담에서 “제2차 회담에서 제시한 합의서에 서명을 하지 않는 한 대한탁구협회의 대회 참가 기득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 회담을 결렬시키고 그 책임을 남 측에 전가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결국 한국 선수단의 대회 출전에 대한 북 측의 확답은 이뤄지지 않았고 이후 대한탁구협회는 ITTF를 거쳐 평양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1990년대 들어 본격화된 남북 스포츠 교류는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부침을 겪었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가 하면 어느 날 갑자기 꽁꽁 얼어붙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간에도 남북 경기인들은 종목별로 꾸준히 교류했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호형호제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다시 이어지고 있는 남북 스포츠 교류는 경기인들 손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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