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호.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언제부턴가 천덕꾸러기가 된 느낌이다. 다른 선수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뻇고 있다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전문 '지명타자' 이야기다.

지명타자는 문자 그대로 수비를 하지 않는 선수다. 모든 타석에서 초구를 쳤다면 공 4개 보고 하루를 끝낼 수도 있다. 어쩐지 편해 보이고 부담도 덜해 보인다.

특히 베테랑들이 전문 지명타자에 포진해 있으면 팬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후배들이 돌아가며 쉴 수 있는 시간을 뺏는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지명타자는 결코 쉬운 보직이 아니다. 수비수로 경기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경기에 집중한다는 건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간판 포수였던 제이슨 켄달은 자신의 저서 '이것이 바로 메이저리그다'에서 "그럴 능력만 있다면 지명타자는 야구에서 가장 멋진 포지션이다. 송진을 묻힌 헝겊 조각과 방망이 몇개만 들고 스프링캠프에 참가하면 되는데? 얼마나 멋진가? 하지만 지명타자로 나선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한 경기에 대타로만 네다섯 번 타석에 들어선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대타는 야구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대타는 벤치에 앉아 있다가 경기에 나서야 한다. 흐름이 자꾸 끊길 수 밖에 없다. 감각을 유지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1점 차 승부라 해도 여기에서 지키기만 해도 이길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고 1점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도 있다.

이런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선수들은 투수를 포함한 수비에 나가는 선수들이다.

이런 선수들은 경기 상황에 맞는 배팅이 가능하다. 꼭 안타가 아니어도 생산적으로 아웃이 되며 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지명타자는 이런 내용들이 어렵다. 벤치에 앉아서는 흐름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힘든 일이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만이 느끼는 흐름과 긴장감이라는 것은 따로 있다. 결국 자신의 스윙만 하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동료들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지명타자로 나서며 선수들에게 존중 받는 선수는 집중력과 팀워크가 뛰어난 선수에 분명하다.

선수들의 신뢰외 존경을 받지 못하는 선수가 롱런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잠시 반짝할 수는 있어도 끊임없이 좋은 결과를 만들기 어렵다. 지명타자로 오랜 시간을 뛰는 선수들은 그만큼의 존중을 받아야 한다. 팀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경기 내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준비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컨디션 조절도 힘들다. 자신의 타순 차례가 있기는 하지만 자꾸만 식어 버리는 몸을 어떻게든 달구며 살려 놓아야 한다. 경기 흐름이 빨라지만 갑자기 타석에 들어서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때문에 비는 시간 동안 웨이트트레이닝장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계속 스윙 훈련을 하는 선수들이 많다. 이때도 경기 흐름에서 눈을 떼선 안된다.

켄달은 "좋은 지명타자는 정말로 특별하다. 당신에게 그럴 능력만 있다면, 지명타자는 야구에서 가장 좋은 포지션이다. (불행하게도) 대부분 선수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시 한번 말하게 되지만 지명타자는 컨디션 유지나 심리적인 면에서 약점을 갖고 있다. 이대호 같은 선수들이 수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비와 함께 뛸 때 야구가 더 잘 보이고 잘 풀리는 것은 야구인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다. 전문 지명타자에 대한 편견은 좀 더 야구를 멀리 보며 판단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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