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10번 신진호 ⓒ한준 기자

[스포티비뉴스=신문로, 한준 기자] "네가 왜 그 번호를 받냐?"

포항 스틸러스 입단 두 번째 시즌, 신진호(31·울산 현대)는 '포항 레전드' 김기동이 은퇴하며 남긴 등번호 6번을 물려받았다. 당시 포항 코치였던 강철이 핀잔을 줬다. 인연이라는 게 묘하다. 2019시즌 울산에 입단해 등번호 10번을 받은 신진호는, 울산 소속으로 치르는 첫 동해안 더비에 김기동 감독을 상대하게 됐다. 시즌 개막 후 최순호 감독이 경질되면서 수석코치였던 김기동이 감독직을 이어 받아 서로의 첫 동해안 더비에 만나게 됐다.

5월 2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동해안 더비 미디어데이'에서 스스로를 "울산의 칼"이라고 소개한 신진호는 지금 포항 스틸러스 팬들이 가장 미워하는 선수다. 신진호는 포항 유스시스템 포항제철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영남대를 거쳐 2011년에 포항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포항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인데, 2013년 여름 카타르SC, 에미리츠클럽을 거쳐 2015년 말 FC서울로 이적했다. 해외 팀을 거쳐 이적했지만 포항맨이라 여긴 신진호의 서울행에 포항 팬들은 서운함을 느꼈다. 

▲ 포항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한 신진호 ⓒ한국프로축구연맹


◆ 포항의 영원한 6번을 꿈꿨던 울산의 10번 신진호 이야기

미디어데이를 마친 뒤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한 신진호는 포항 팬들의 분노가 왜곡된 언론 보도로 인한 오해라고 설명했다.

"제 기억으로 2015년 서울 이적하면서 왜곡된 진실인데, 기사가 살짝 잘못나갔다. 조율하고 재면서 서울을 간 것처럼 그렇게 되서 팬분들이 서운해하셨다. 항상 포항에 애정이 있고 남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그게 여의치 않아서 서울로 갔다. 그때부터 욕 먹기 시작했다. 포항에서 욕먹은 기억 거의 없는데, 서울에서 원정 간 적이 없었는데 상무 가서 가니 욕하시더라. 어차피 욕먹는거, 포항 팬보다 지금 울산 팬이 중요하니까. 화끈하게 욕 먹도록 하겠다."

이 발언은, 미디어데이에서 "친정팀이지만 떠난지 오래됐으니 골을 넣더라도 골 세리머니를 하겠다"는 발언에 대한 부연이다. 신진호 역시 포항에 서운한 감정이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포항의 6번이 되고 싶었던 그에게, 강철 전 포항 코치가 농담을 반 섞어 던진 말도, 그에게는 적지 않은 상처였던 모양이다. 7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신진호는 미디어데이 도중 포항의 중요한 등번호 6번을 시즌 개막 후 입단한 정재용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달아준 것에 대해서도 서운한 감정을 표했다. 

미디어데이 입장 당시 정재용과 유니폼을 바꿔 입고 나가보자고 제안한 것이 신진호였다. 깜짝 이벤트 아이디어지만, 정재용이 포항의 6번을 단 것에 서운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 당시에는 김기동 선수, 지금 김기동 감독님이 포항에서 굉장히 레전드로 칭해지고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 번호를 받고 나서 나도 그런 길을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강철 코치님이 당시에 저를 길들이기 위해 그러셨겠지만, 저희 말마따나 쌍욕을... 농담 반, 진담 반 하셨다. 지금은 잘 지내지만… 저도 좀 부담스럽긴 했는데 포항에서는 그 번호를 노리고 있었다. 물론 (정)재용이도 좋은 선수지만, 그런 번호에 대한 게 있었으면 했다. 스토리도 있고,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이 아쉬워서 농담한 것이다."

▲ 정재용의 포항 6번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신진호(왼쪽) ⓒ한준 기자

그런 마음들이 쌓여서, 신진호는 포항을 상대로 스틸야드에서 득점하면 포효하겠다고 했다.

"서울로 이적하며서 포항 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기 시작했다. 그런 감정들이 저도 모르게, 인간이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안에서 올라오고 있다. 그런 감정을 마음껏 경기장에서 표출하겠다. 골을 넣는다면 친정팀 상대로 세리머니 하지 않는게 예의인데, 전 떠난지 오래됐으니, 포효하는 세리머니를 하겠다."

신진호는 울산의 10번이다. 포항의 6번처럼 그가 노리던 번호는 아니지만, 축구계에서는 에이스를 상징하는 좋은 번호다. 그러나 신진호가 10번을 달게 된 배경은 '밀리고 밀려서'다. 2018시즌 울산의 8번은 이근호였다. 2019시즌에 입단한 신진호는 이근호에게 몇 번을 달 것인지 물었다. 울산은 선배가 먼저 등번호를 택하는 방식으로 배번이 결정된다. 이근호는 11번을 택했다. 

신진호는 서울에서 달던 8번을 선호했다. 그런데 11번을 달고 있던 황일수가 8번을 먼저 택했다. "일수 형이 굳이 8번을 할 필요가 없는데…"라며 신진호는 남는 번호를 달게 됐다. "다른 번호는 하고 싶은 건 없다"는 신진호의 번호를 10번이라고 기입한 것은 주장 이근호였다. 원하는 번호를 택하지 못한 신진호의 마음을 헤아렸고, 스스로 택하기 부담스러운 '에이스 번호'를 대신 써주었다. "부담스럽지만 해봐야겠다고" 신진호는 흔쾌히 달았다.

▲ 동해안 더비에서 득점을 꿈꾸는 울산 10번 신진호 ⓒ한준 기자

◆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신진호는 울산의 승리만 생각한다

신진호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나간 것은 지난대로 두고 앞을 본다. 울산에서 포항으로 이적하기 전 정재용이 신진호의 룸메이트였다. 아쉬움을 짧았다고 신진호답게 '쿨하게' 답했다.

"가기 직전에 룸메이트였다. 같이 방 쓰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친해졌다. 떠난다니까 아쉬웠다. 떠난건 떠난것이다. 아쉬움은 잠시였다. 선수들이 경기를 하면서 호흡 점점 잘 맞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신진호는 초반 11연속 무패를 멈추고 당한 2연패로 인해 울산이 더 단단해졌다고 했다. 감독 교체 이후 수원 삼성을 꺾은 포항은 아직 흔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심스럽게, 힘든 경기가 되겠지만, 2-0으로 이겨야 되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자신감의 근거다.

"FA컵 대전 코레일전, 그리고 리그 성남전에 패배를 하고 나서, 일본에 가서 가와사키랑 경기했다.그것도 힘든 경기다., 분위기적으로도 그렇고 원정이고 가와사키도 좋은 팀이었다. 잘 넘어선 것 같고, 그 이후 홈에 돌아와서 경남에 기분 좋은 승리를 했다. 선수들이 연패를 끊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다.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그런면서 선수들이 자신감이 많이 올라온 상태다. 선수들이 원정 경기를 많이 치르고, 짧은 시간에 많은 경기 치러서 많이 피곤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 피로했던 것 같다. 그런 두 경기를 치르면서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리그와 ACL 병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지난 수원과 경기를 봤을 때 포항 선수들의 의지가 많이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우리에겐 부담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다. 반대로 우리에게도 포항을 대비하는 데 정신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직까지 포항이 감독이 바뀌고 한 경기만 치렀기에 확신보다는 의심이 있다. 팀에 대한 의심이나, 그런 부분에서 흔들릴 거라고는 생각한다. 감독님도 새로 들어오셨고, 포항도 꾸준하게 승리를 거둔다기 보다 이기고 비기고, 지고 이런 경기를 하고 있다. 그런 부분을 심리적으로 우리가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진호는 포항을 상대로 득점하면 김도훈 울산 감독에게 달려가는 세리머니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리버풀을 상대로 득점한 뒤 신나게 세리머니한 바르셀로나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를 보았냐고 묻자, 신진호는 "봤다"고 했다. 화끈하게 욕먹겠다는 신진호는 "그래도 수아레스보다는 덜 먹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신진호는 욕 먹는 것보다 지는 것이 더 싫은 울산의 10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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