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12] 역대 '김인식호' 어려울 때 더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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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도쿄, 박현철 기자] “가장 믿고 있던 유격수였는데 부상 때문에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고.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다른 선수들에게도 유격수 수비 훈련을 시키고 있지. 그리고 부상자들을 끌고 간다는 것이 자칫 선수단 분위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아.”(2009년 2월 하와이에서 김인식 감독)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약하다고 평가했다. 준비 과정도 삐걱거렸고 결원, 부상자도 많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들은 기적 같이 일어났다.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에 이어 2009년 WBC 준우승, 그리고 이번에는 프리미어12 초대 챔피언에 도전한다. 김인식 감독이 이끈 역대 한국 야구 대표팀은 언제나 어려울 때 더욱 빛을 발했다.
한국은 19일 도쿄돔에서 열린 2015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12 일본과 4강전에서 0-3으로 밀려 패색이 짙던 9회초, 타자 일순 4득점으로 역전에 성공하며 4-3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객관적 전력은 물론 경기 준비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열세라는 평가를 받았던 한국은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를 꺾고 21일 결승전을 준비한다.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2015년11월19일 '도쿄 대첩'은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경기였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부터 국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그해 아시안게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어렵게 대표팀을 꾸렸다. 2006년 WBC만 해도 아시아 지역 1차 예선 대만전에서 1루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하다 어깨를 다친 김동주(당시 두산, 은퇴)의 공백은 치명적이었다. 김동주는 1990년대 후반부터 그때까지 일본이 이승엽(당시 요미우리, 삼성)보다 더욱 두려워했던 대표팀 붙박이 4번 타자였다.
부상으로 WBC에 참가할 수 없게 된 김동주의 공백을 대체 선수 정성훈(당시 현대, LG)으로 메웠으나 3루 결원을 채운 정도일 뿐. 정성훈은 당시 김동주의 위력을 메울 정도의 타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코리안 특급' 박찬호(당시 샌디에이고, 은퇴)를 마무리로 기용하는 등 뛰어난 투수 운용 능력을 펼치며 한국을 WBC 4강에 올려놓았다. 가장 큰 공은 선수들의 노력이지만 김 감독의 리더십과 지도력도 분명 대단했다.
2009년 WBC 준비 과정은 더 험난했다. 김 감독은 소속팀에서 비중 축소로 운신의 폭이 좁았던 이승엽, 박찬호 없이 선수단을 소집했다. 투수진의 정신적 지주이자 선발진 한 축으로 기대했던 손민한(당시 롯데, 은퇴)은 어깨 통증을 안은 채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하와이 전지훈련에서도 손민한은 트레이너진의 치료를 받으며 재활해야 했다. 2006년 WBC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으나 무적(無籍) 신세였던 김병현(KIA)에게 러브콜을 보냈으나 김병현은 여권 분실이라는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상은 발목 부상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여권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내가 (김)병현이를 제외한 것은 발목이 아프다는 보고를 받아서야.” 이미 손민한의 어깨 상태가 완전하지 않아 당장 실전에 투입할 투수 한 명이 더 필요했던 김 감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최종 엔트리에서 '국민 유격수' 박진만(당시 삼성, SK 수비 코치)도 제외했다. 박진만의 실력은 인정했으나 어깨 부상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진만 제외와 함께 김 감독은 박기혁(당시 롯데, kt)에게 주전 유격수를 맡겼고 동시에 최정(SK), 고영민(두산), 이범호(당시 한화, KIA)에게도 유격수 수비 훈련을 지시했다.

1차 예선은 통과하더라도 즐비한 야구 강호 속에서 4강 진출이 불투명했던 2009년 WBC. 그러나 한국은 일본과 다섯 번이나 맞붙는 기형적인 일정에서 준우승했다. 박기혁은 공격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으나 국가 대표 주전 유격수다운 수비로 공헌했고 최종 엔트리 탈락 후보였던 이범호는 장타력을 갖춘 3루수로 위력을 뽐냈다. 하와이 캠프 막판에 합류하며 김 감독의 위안이 된 '추추 트레인' 추신수(당시 클리블랜드, 텍사스)는 호타준족의 면모로 대표팀 준우승에 이바지했다. 류현진(당시 한화, LA 다저스), 봉중근(LG), 윤석민(KIA)은 물론 정현욱(당시 삼성, LG)은 '국민 노예'로 불리며 WBC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번 프리미어12 대표팀 소집 과정도 2009년 못지않게 험난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30개 구단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들의 출장을 불허해 김 감독은 메이저리거 없이 팀을 구성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돌부처' 오승환(한신)이 부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고 원정 도박 혐의로 선발 한 축 윤성환, 리그 최고의 셋업맨 안지만, 마무리 임창용(이상 삼성)이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특히 투수진 약세가 치명적이었으나 김 감독은 “태극 마크를 달고 뛰는 만큼 어떤 상황이라도 좋은 경기력으로 국민들께 보답하는 것이 최우선이다”라는 생각을 잊지 않았다.
다른 국제 대회와 달리 김 감독은 훨씬 더 심각하고 진지하게 경기를 준비했다. 젊은 투수 유망주들의 두각세가 일본과 비교해 뒤떨어지는 데 대해 한탄하기도 했고 8강 토너먼트부터는 어떤 선수를 기용하고 어떤 투수에게 어느 정도 임무를 맡길 것인지 먼저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졸속 행정과 어이없는 일정, 장소 변경에 헛웃음을 지었던 김 감독은 그러나 정작 실전에 들어가면 한 박자 빠른, 단기전에 적절한 투수 교체는 물론 일본과 4강전에서는 대타 기용에서도 신의 한 수를 보여 줬다.
“손아섭(롯데)은 대타로 준비해 뒀다. 기회가 오면 쓸 예정이었는데 9회초를 시작하면서 '손아섭-오재원(두산)' 순으로 대타를 기용할지, 아니면 반대로 기용할지 직전까지 고민했다. 그러다 오재원이 먼저 나가고 손아섭이 그 뒤에 나가는 전략을 선택했는데 다행히 맞아떨어진 것 같다.”
대표팀 거의 모든 선수들이 한 시즌을 치른 피로와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뛰지만 김 감독은 선수들을 믿고 독려하며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 주고자 했다. 그 가운데 김 감독은 특유의 자학과 풍자 개그도 삼가며 가장 진지한 자세로 프리미어12에서 더 많은 승리에 힘을 기울였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지레 겁 먹고 포기하면 더 큰 기회를 얻지 못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없다. '김인식호'는 2006년부터 10년 가까이 전력 100%에 가깝게 출항한 적이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임기응변과 뚝심으로 세간의 예상 그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어려울 때마다 더 찬란하게 빛난 김 감독의 한국 대표팀. 야구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일에도 본보기가 될 만하다.
[사진] 김인식 감독 ⓒ 도쿄, 한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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