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속도로 가족' 포스터. 제공| CJ CGV
▲ '고속도로 가족' 포스터. 제공| CJ CGV

[스포티비뉴스=유은비 인턴기자] 차가운 세상이 무겁게 가슴에 남아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남긴 한 줄기 희망은 또 한 번 세상을 믿게 한다. 

2일 개봉한 영화 '고속도로 가족'(감독 이상문)은 인생은 놀이, 삶은 여행처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살아가는 기우(정일우) 가족이 우연히 영선(라미란) 부부를 만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기우 가족은 휴게소를 방황하며 텐트를 집 삼아 살아가고 가장 기우는 휴게소 방문객들에게 '지갑을 잃어버려 기름값이 없다'는 핑계로 2만 원씩 빌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그러던 중 기우는 가슴 속에 남모를 아픔을 가진 영선을 만나게 된다. 

▲ '고속도로 가족'. 제공|CJ CGV
▲ '고속도로 가족'. 제공|CJ CGV

영선은 고속도로 가족과의 첫 번째 만남에서 아이들이 눈에 밟혀 돈을 건넸다. 그러나 다른 장소에서 자신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돈을 빌리고 있는 기우와 가족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이 일로 기우와 가족은 헤어지게 된다. 경찰서를 빠져나가던 영선은 경찰서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과 지숙(김슬기)이 눈에 밟혀 쉽게 떠나지 못하고 이들을 거두기로 한다. 

영화는 기우가 영선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영선을 만나기 전 기우와 가족들은 방랑자의 삶에 익숙해져 있다. 달빛 아래 신나게 춤을 추는 장면으로 유랑 생활에 익숙해진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영선을 만난 후 영화는 지숙과 은이(서이수)가 느끼는 본능과 양가감정을 그대로 그리며 이야기를 이끈다. 위태로운 텐트와 안전한 집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본능, 감정이 관객들에게 날 것 그대로 전달되며 조마조마한 마음을 선사한다.

이야기는 고속도로 휴게소, 중고 가구점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곳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상문 감독은 '어른들은 몰라요', '죽여주는 여자' 등 현실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다양한 작품의 조감독으로 쌓았던 경험을 영화에 그대로 녹여냈다. 지극히 평범한 배경 속 펼쳐지는 악착같은 삶이 보여주는 현실에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는다. 인물들의 이상적 행동과 이상할 만큼 고요한 자연이 대비를 이루며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강조한다.

▲ '고속도로 가족' 라미란. 제공|CJ CGV
▲ '고속도로 가족' 라미란. 제공|CJ CGV

이름만으로 신뢰감을 주는 배우들이 연기 변신을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 깊다. '믿고 보는' 라미란의 연기는 영선이 가진 상처와 그의 감정을 세심하게 표현한다. 특히 영선이 기우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신고했지만 남은 지숙과 아이들을 쉽게 내치지 못하며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라미란만의 현실 연기로 과하지 않게 전달한다. 

김슬기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며 눈물샘을 자극한다. 유랑 생활을 선택한 것도, 영선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도 모두 그가 느끼는 모성애로부터 이어진 선택이다. '코믹 연기의 대가'로 불리던 김슬기는 이전의 이미지가 전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완벽히 지숙에 동화됐다.

▲ '고속도로 가족'. 제공| CJ CGV
▲ '고속도로 가족'. 제공| CJ CGV

후반부로 갈수록 기우의 설정이 과하다고 느껴질 여지도 분명히 있다. 구속된 후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는 모습이나 산속에서 이상 행동을 하는 모습은 기우가 보여줬던 부성애에 의구심을 품게 한다. 그러나 정일우는 '정신 병력이 있는 노숙자'라는 극한의 설정에도 훌륭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이전 작품에서 맡았던 젠틀한 역할에서 벗어나 위험 부담이 있는 파격 변신을 시도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영화는 보육원 화제와 남겨진 유가족, 현대인들의 홈리스 실태, 투자 사기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루며 사회에 비판을 던진다.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수많은 문제에 미간이 찌뿌려지기도 한다. 다만 영화에서 그려지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고속도로 가족'은 일말의 가능성을 남긴다. 기우 가족이 휴게소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차가운 현실에서도 2만원 어치의 온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2만원을 빌리는 기우에게 영선이 선뜻 건넨 5만원은 영선이 가진 따뜻한 온기를 대변하고 또 한 번 믿어봄직한 세상이란 생각을 심어준다. 

몰아치는 문제와 과감한 설정에 영화가 끝날 때쯤엔 다소 버거운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속도로 가족'은 가라앉은 곳에서 마주한 차가운 현실, 그리고 그 안에서 손 내미는 따뜻함이 세상을 녹일 작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오는 11월 2일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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