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 in 지바, 르포] 한 장소·다른 결과…남과 북, 여자 축구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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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지바(일본), 조형애 기자] 하루가 길었다. 길고도 정신이 없었다. 도쿄에서 지바로, 지바에서 도쿄로 이동만 왕복 2시간 30분여. 북한 경기에서 한국 경기로 매치 타임만 4시간여. 그리고 노트북 두드리는 시간 + ∝. 늘 그렇듯 날은 추웠고 축구는 뜨거웠고 개인의 삶은 팍팍했다. 일본 출장 3일째, '오니기리'[주먹밥] 하나로 점심을 때우고 밤 11시 50분에 저녁을 먹었다. 초보 축구 기자의 실상은 이런 거다.
"일본은 한국보다 10도 이상 따뜻하거든요." 출장전 들은 대한축구협회 관계자 말처럼 일본은 한국 초겨울과 같았다. 여행하기 딱 좋은 날씨. 하지만 8일엔 달랐다. 하늘은 구름이 무거워 보일 정도로 푹 꺼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우산을 챙겼다. (물론 바빠서 가방 한 켠에 고이 모셔만 두고 펼 새도 없이 맞고 다녔지만)
2017 동아시안컵(EAFF E-1 풋볼 챔피언십) 남자부 경기는 모두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숙소에서 지하철 환승을 서너 번을 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여자부 경기장도 만만치 않다. 지바 현에 있는 소가 스포츠 파크는 차로도 1시간 이상을 달려야 한다. 다행히 축구협회가 버스를 대절해 줘 버스에 몸을 싣은 게 오후 2시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하나둘씩 빗방울이 떨어졌다. 삼삼오오 버스에서 내리는 재일 동포 학생들을을 뒤로하고 경기장에 들어서니 이미 킥오프 시간이 코앞이다. 기자석 앉자마자 휘슬이 울렸다. 킥오프!
시선은 온통 관중석 내 붉은 점에 쏠렸다. 너무나 붉어서, 일사분란해서 눈이 간 북한 응원단이다. 대형 인공기가 펄럭였고 그 위엔 '속도전', '이겨라', '조선'이라는 팻말이 줄지어 있었다. 생경한 광경. 그리고 그들은 외쳤다. "필.승.조.선"

전반이 채 끝나기 전에 몸을 일으켜 북한 응원석에 다다랐다. 경기장을 완전히 반 바퀴 돌아 돌아 겨우 간 곳에는 너무나 해맑은 소녀들이 가득했다. "한국에서 왔어요. 인터뷰할 수 있어요?" 물으니 자기는 안되고 친구는 된다고 떠미는 게 딱 한국 여고생들 같았다.
결국 카메라 앞에선 두 친구는 재일 동포 학생들이었다. 북한을 "고향"이라고 하면서 "고향 선수들 응원하러 왔다"고 했다. 길지 않은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분위기가 묘해지는 걸 느꼈다. 하나둘씩 경계하는 눈치. 마침 또 다른 학생에게 인터뷰도 거부당하고 후반 경기 시작이 가까워져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정말 잘하는구나.' 북한 여자 축구에 어느 정도 놀라고 보니 또 이동해야 할 일이 생겼다. 생애 첫 플래시 인터뷰 기회가 급작스레 온 때문이었다. 방송 기자는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살아온 **년. 상황은 신념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혼잡한 상황에 갑자기 불쑥 마이크를 쥐어 주니 준비한 질문도 더듬더듬, 한마디 한마디가 어려웠고 마음은 확고해졌다. '펜 기자로 살아야지'.
코앞에서 마주한 북한 김광민 여자 축구 감독은 신사다웠지만 또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강한 북한(아니 '북 측'. 북한이라고 물었다가 급히 정정했다. 그네들에게는 '북한'은 한국이 만든 말. 그래서 없는 말, 쓰지 않는 말이다.) 여자 축구 비결에 대해 김 감독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공을 돌릴 때 지금 인터뷰이가 누구인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기자회견에서는 더욱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정치적 이유로 대회 상금을 받지 못하게 된 데 대해 "돈 때문에 온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리곤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더 이상 물으면 혼날 것 같은 상황. 상금 관련 '보이콧' 이야기까지 일본 기자가 용감하게(?) 묻자 김 감독은 역정 내듯 즉각 답을 했다. "돈 문제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말했지만 돈 때문에 온 게 아니란 말입니다. 경기에 대해서만 질문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김 감독을 뒤로하고, 북한 선수들도 만나 보고 싶어 부랴부랴 믹스트 존으로 향했다. 결론적으론 코빼기도 못 봤다. 먼저 기자회견을 한 중국 선수들이 하나둘씩 빠져나오는 데도 북한 선수들은 나올 줄 몰랐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알아보니… 그랬다. 그들은 이미 떠난 뒤였다. 급히 떠나는 북한 선수단을 목격한 후지TV 관계자는 한국 취재진을 보고서는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괜히 미안해 했다. 아쉬운 마음에 "직접 보신거예요?"라고 하니 "곧바로 온 우리도 카메라 세우고 있는데 순식간에 다 가 버렸어요"라면서 또다시 미안한 표정. 그렇게 서로 고충을 아는 이들끼리 다독이고 보니 또 경기가 시작됐다. 한일전이다.

데이터 상으로 최근 여자 축구 한일전은 3골 안에서 승부가 났다. 그런데 왠걸. 1-0, 1-1, 2-1, 2-2 그리고 결국 3-2까지 치열한 한바탕 골 잔치가 벌어졌다. 뜨거운 승부를 즐길 시간은 '초짜'에게 없다. 언 손을 녹이며 자판을 두들기다 또다시 플래시 인터뷰를 하러 그라운드로 향했다. 스마트폰 일일 걸음 인식에선 10,000보가 넘어 알람이 울렸다.
두 번째 플래시 인터뷰에선 보다 덜 떨어 안심을 한 것도 잠시. 곧바로 기자회견이 이어졌고 정신없이 말들을 받아 적었다. 그리고 또 믹스트 존에서 선수들을 만나는 데 실패했다. 마침 호텔이 가까워 샤워를 숙소 가서 하기로 한 한국 선수들은 예상보다 일찍 경기장을 떴다. 또 일본 여자 축구 감독 인터뷰가 체감하는 것보다 꽤 시간적으로 길었던 모양이다. 대부분 한국 취재진은 그렇게 선수들을 또 보내고 허탈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도쿄로 돌아왔다.이미 시계는 밤 11시를 넘긴 상태. 그제서야 밥을 먹고 다시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종종 현장의 고생은 타인에게 공유되지 못하는 법. 선수들을 못 봐 쓰라린 마음을 안고 하루를 되짚었다. 이제 시계가 숫자 3을 가리키고 있다. 긴 하루는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을 물고 늘어진다. 아직 9일 남자부 대회 경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있다. 물론 써야 할 기사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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