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구 이론에 비춰 봤을 때 매우 낯선 유형이다. 일단 릴리스 포인트가 높다. 195cm의 큰 키를 충분히 이용하는 높은 릴리스 포인트를 갖고 있다.
한국 타자들은 장신의 투수가 높은 타점에서 뿌리는 강력한 패스트볼에 약점을 보이곤 한다. 니퍼트가 203cm의 큰 키를 앞세워 한국 타자들을 압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헤일리는 니퍼트보다 키는 작지만 그에 못지않은 릴리스 포인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구보다 높은 타점에서 공을 찍어 누를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여기에 익스텐션(투구 때 발판에서 공을 끌고 나와 던지는 손끝까지 거리)이 길다. 릴리스 포인트와 익스텐션이 모두 2m가 넘는다. 모두 리그 톱클래스 수준이다.
상식적으로 공을 놓는 릴리스 포인트가 높으면 익스텐션은 뒤에 형성된다. 높은 곳에서 놓으려면 아무래도 빨리 공을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니퍼트도 익스텐션은 180cm에 그쳤다. 하지만 헤일리는 2m 이상의 릴리스 포인트를 갖고 있으면서도 익스텐션 또한 2m가 넘는다. 그동안 KBO 리그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유형의 투수다.
또한 1루 쪽 투구판을 밟고 왼발이 크로스가 되며 들어온다. 타자들 처지에선 끝까지 헤일리가 던지는 공의 궤적을 쫓기가 힘들다. 공을 감추는 동작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헤일리는 한국 타자들이 적응하기 어려운 많은 조건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특이한 것만으로는 한국 타자들을 압도할 수 없다. 안정된 제구와 구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낯선 투구 폼도 한국 타자들이 적응력을 보일 수 있다.
5일 고척 키움전이 좋은 예였다. 헤일리는 이날 키움 타자들을 두 번째 상대하는 것이었다. 지난달 18일 한 차례 상대한 바 있다. 당시 경기에서는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승부는 달랐다. 키움 타자들을 압도하지 못했다. 제구가 크게 흔들리며 어려움을 자초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마자 키움 타선이 집중력을 보였다.
1회말 선두 타자 이정후가 우전 안타를 치고 출루하며 기회가 시작됐다. 이어 김하성과 샌즈가 연속 볼넷을 얻어 내며 만루로 찬스가 불어났다.
다음 타자 박병호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마지막 5구째 공을 삼성 포수 김응민이 빠트리며 선취점이 들어왔다.
기세가 오른 키움은 더 거세게 삼성 선발 헤일리를 몰아붙였다.
장영석의 잘 맞은 타구를 헤일리가 막아 봤지만 굴절되며 내야안타가 되는 사이 김하성이 홈을 밟았다.
이어 서건창의 좌전 안타 때 샌즈가 홈으로 들어오며 3점째가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임병욱의 몸에 맞는 볼에 이어 이지영이 중전 적시타를 치며 장영석과 서건창을 모두 불러들이며 5점째를 완성했다.
더 이상의 추가점은 없었지만 다음 이닝에도 다시 폭격이 이뤄졌다.
1사 후 김하성이 중전 안타로 출루한 뒤 샌즈가 볼넷을 얻어 다시 1, 2루로 찬스가 이어졌다.
타석에 들어선 박병호는 첫 타석의 삼진을 만회하듯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쳤고 김하성과 샌즈가 모두 홈을 밟으며 7-0으로 점수 차가 벌어졌다. 사실상 승부가 갈린 순간이었다. 헤일리도 완전히 무너졌다.
앞으로 헤일리를 두 번째 만나는 팀들이 어떤 결과를 낼 것인지도 함께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이날 경기를 통해 특이한 투구폼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이 증명됐다. 헤일리가 두 번 이상 상대하게 될 한국 타자들과 어떤 승부를 보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