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혁신위가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뿌리인 학교체육을 전면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포티비뉴스=정부종합청사, 정형근 기자] 급진파와 온건파의 힘겨루기 양상이다. 스포츠혁신위는 엘리트 체육의 뿌리인 학교 체육의 '전면 개혁'을 요구하는 반면 체육계는 점진적 개혁을 외치고 있다.  

체육계 구조개혁을 위해 민관 합동으로 출범한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가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학교 스포츠 정상화 방안’을 제시했다. 

혁신위는 6가지 사안을 권고했다.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 ▲체육 특기자 제도 개편 ▲학교운동부 개선 ▲학생의 스포츠 참여 확대 ▲소년체전 개편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학생선수의 주중 대회 참가 금지와 합숙소 폐지, 최저학력 미달 선수의 체육특기자 선발 제외, 소년체전의 축전 형식 전환 등이 개혁안에 포함됐다.   

체육계는 즉각 반발했다. 대한체육회는 “학교운동부 및 지도자의 처우 개선과 학생의 스포츠 참여 확대 등은 매우 공감한다. 하지만 어린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이 좌절되거나 동기부여가 축소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소년체전은 한국 스포츠를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위와 체육계는 스포츠계 (성)폭력을 뿌리 뽑고 학생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데 뜻을 함께했다. 하지만 혁신위가 ‘엘리트 스포츠’의 뿌리인 학교 스포츠를 완전히 뒤엎어야 한다고 나선 반면 체육계는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정책’이라 주장한다. 

끝없는 평행선이 펼쳐진 가운데 해결책이 도출될 수 있을까. 혁신위와 체육계가 각을 세우는 주요 쟁점을 살펴봤다.   
▲ 스포츠혁신위 문경란 위원장. 스포츠혁신위는 4일 '학교 스포츠 정상화 방안'을 제시했다. ⓒ연합뉴스

◆"핵심은 학습-운동 병행" vs "학생선수는 도대체 언제 쉬나"

“스포츠 혁신위의 권고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학생선수들의 학습과 운동 병행, 그중에서도 정규수업은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규수업 참석을 중심에 놓고 이게 가능하기 위한 학교운동부 운영과 학생선수의 훈련 및 각종 대회 참가 등 정책을 고려했다.” 

스포츠혁신위 문경란 위원장은 개혁안 설명 과정에서 ‘헌법’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학습과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학습권, 교육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학생선수가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데 꼭 필요하다.”

체육계는 ‘학습권 보장’에는 동의하지만 주중 대회를 없애고 주말에 대회를 개최하라는 권고에는 부정적 입장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유승민 위원은 지난달 30일 SNS에 혁신위의 개혁안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남겼다.   

“엘리트들은 무슨 죄지은 죄인마냥 억압되고 제한된 상황 속에 왜 자꾸 가두시는지요. 주중에 공부하고, 운동하고. 주말에 시합하고. 학습권을 이유로 학생선수들, 부모들, 심판, 지도자, 경기관계자는 주말도 못 쉬게 하나요. 쉴 권리는 소중한 인권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우리에게 성적주의에서 이제 좀 벗어나서 누구나 즐기는 운동을 하자, 더 이상 성적은 필요 없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학생들은 왜 학점에 따라 평가를 받아야 하나요. 좋은 대학 가기 위해,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밤샘 공부하신 거 아닌가요. 우리들도 스스로 꿈을 꾸고 키워갈 권리가 있고 우리들의 무대를 우리가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학생선수의 ‘인권’을 두고 상반된 해석을 내놓은 혁신위와 체육계의 간극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엘리트 죽이기' 체육계 반발 vs "무슨 소리? 엘리트 살리기" 

혁신위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구축한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의 한계와 학교 스포츠의 비정상성이 드러나 ‘전면적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법으로 소년체전을 일반 학생들도 참가하는 축전 형식으로 개편하고 합숙소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체육계는 ‘소년체전 개편안’이 엘리트 선수 양성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제48회 소년체전 기간에 만난 대한양궁협회 장영술 전무이사는 “한국 양궁이 세계 최정상에 오르기까진 소년체전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다. 소년체전이 현재 방식이 아닌 학생체육축전으로 전환된다면 한국 양궁은 경기력 향상에 치명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양궁은 상당한 경쟁을 하면서 순기능적으로 좋은 효과를 많이 봤다. 소년체전을 지금 형식에서 보완하는 게 맞지 순수하게 축전형식으로 가는 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혁신위의 권고안이 ‘엘리트 죽이기’라는 체육계의 반발에 대해 문경란 위원장은 “우리는 엘리트 죽이기가 아닌 살리기라고 생각한다. 이미 학교 운동부나 가입 학생선수가 줄고 있다. 운동부에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들 때문에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운동을 권하지 않는 사례도 많다. 현재의 시스템으로 학교 운동부를 잘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시스템을 잘 만들면 잘 성장하는 선수가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엘리트 살리기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어 혁신위는 “2018년 기준으로 전국의 초중고 학생선수는 전체 학생의 1.2% 수준”이라며 “상반기 중으로 엘리트 스포츠 육성시스템 선진화에 관한 권고안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체육계 개혁의 불씨를 당긴 '조재범 사태' ⓒ곽혜미 기자

◆"미투가 개혁의 출발점, 권고안 이행해야" vs "체육 현장의 목소리 반영해야"

“혁신위가 과연 스포츠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우리의 출발점을 돌아봤다. 혁신위는 미투 사건, 심석희 성폭력 사건 이후 출범했다. 너무 비정상적인 측면이 많은 상황에서 최소한 학습권에 관한 방향을 정한다면 아이들의 미래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권고안을 마련하면서 제한하고 금지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참담한 상황에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방향을 잘 잡는다면 보다 좋은 방향으로 학생들을 지원하는 방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용수 세종대 교수)

혁신위는 개혁안 도출 과정에서 생긴 고민을 털어놨다. 

‘학교 스포츠 정상화’는 혁신위의 권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 혁신위는 "교육부와 문체부, 체육계의 협의가 이뤄져야 진정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대한체육회는 혁신위의 권고안에 대해 “학생선수 및 학교 밖 청소년 선수, 지도자, 학부모 등 의견을 존중하고, 회원종목단체 및 시도체육회 등 현장의 의견을 수렴한 후 관련기관과 논의하겠다. 그동안 소년체전이 대한민국 스포츠에 기여한 순기능을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개선 운영할 예정이다.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혁신위는 상반기 중으로 권고를 마친 후 하반기에는 모니터링 단계에 돌입할 예정이다. 혁신위는 “내년 2월까지 권고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최대한 권고가 이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스포티비뉴스=정부서울청사, 정형근 기자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