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 데뷔 후 첫 등판을 가진 내야수 카일 파머는 1.1이닝 무실점 호투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빡빡한 일정에 로스터 여유도 많지 않은 메이저리그(MLB)다. 경기에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투수 소모를 아끼기 위해 야수를 마운드에 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팀 전력과 팬 서비스를 모두 생각한 미니 이벤트다.

9일(한국시간) 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와 시카고 컵스와 경기도 그랬다. 홈팀인 신시내티는 5-12로 크게 뒤지며 패색이 짙어지자 내야수인 카일 파머를 8회 등판시켰다. 경기 후 파머는 “고등학교 이후로 마운드에 오른 것 자체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 파머에게 아웃카운트 네 개를 잡아야 하는 이례적인 미션이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파머는 엉성한 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잘 던졌다. 1⅓이닝 동안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물론 컵스 타자들이 굳이 안타를 치려고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파머의 느린 공에 타이밍을 맞추기 쉽지 않아 보였다. 이날 등장한 컵스의 다섯 타자는 파머를 상대로 1안타, 2뜬공, 2땅볼에 머물렀다.

현지에서 '스텔스 투구'라고 할 정도로 느린 공 또한 인상적이었다. 대개 야수가 마운드에 올라도 스피드건에 구속은 찍히기 마련이다. 투수들 못지않은 강속구를 던지는 야수들도 가끔 있다. 그러나 파머는 느려도 너무 느려 스피드건이 작동하지 않았다. 현지 중계진도 구속란이 빈 전광판을 비추며 웃음을 터뜨렸다.

선수들의 투구 하나를 낱낱이 분석하는 최첨단 '스탯캐스트' 시스템도 무용지물이었다. 단 하나의 공도 구속을 측정하지 못했다. 파머는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도 평균구속 데이터가 없는 선수가 됐다.

컵스 타자들도 파머의 낙차 큰(혹은 힘없는) 커브에 재치 있게 대응했다. 우타자인 하비에르 바에스는 9회 2사 상황에서 평소와 달리 좌타석에 들어섰다. 바에스는 파머의 떨어지는 공에 무릎까지 꿇으며 힘껏 공을 받아 쳤으나 중견수 뜬공에 머물렀다. 그러나 모두가 웃었다. 이미 승패가 갈린 만큼 팬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한 것이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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