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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발자취' 코비의 전성기를 추억하다

작성일: 2016.04.14 09:28 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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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비 브라이언트 ⓒ Gettyimages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마지막 48분'을 앞두고 있다. 코비 브라이언트(38, LA 레이커스)가 지난 20년 동안 누빈 코트를 떠나기에 앞서 그의 전성기를 간략하게 되돌아봤다. 숱한 기록들을 미국 프로 농구(NBA) 역사에 남긴 코비지만 이 가운데 파이널 우승 5회의 순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데뷔 첫 2시즌 동안 벤치 멤버로 코트를 밟았던 코비는 직장 폐쇄로 단 50경기만 치러졌던 1998~1999시즌부터 주전 슈팅가드로 나섰다. 그해 50경기 모두 선발 출전해 평균 19.9득점 5.3리바운드 3.8어시스트 1.4가로채기를 기록했다. 이듬해 데뷔 후 처음으로 평균 득점 20점대를 찍으며 팀의 주포로 올라섰다. 66경기에 출전해 평균 22.5점 6.3리바운드 4.9어시스트를 챙기며 펄펄 날았다.

이때 이미 미국 언론으로부터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가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는 게 안타까운 팬이라면 코비의 움직임을 눈여겨보길 바란다. 3점슛 빼고 모든 걸 다할 수 있는 선수다. 외곽 공격을 많이 시도하지 않는 점까지 조던을 빼닮았다'고 말했다.

센터 포지션에서 NBA 역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 가는 샤킬 오닐과 레이커스의 원투펀치를 이루며 프로 데뷔 4년 만에 첫 우승 반지를 손가락에 끼었다. 2000년 시즌 파이널에서 레지 밀러, 제일린 로즈, 릭 스미츠 등이 활약했던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시리즈 스코어 4-2로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코비는 당시 플레이오프 22경기에 모두 나서 평균 21.1득점 4.5리바운드 4.4어시스트 1.5가로채기 1.5슛블록을 기록했다.

인디애나 감독이었던 래리 버드는 파이널이 끝난 뒤 인터뷰에서 "이제 겨우 스물두살의 선수가 팀의 주축으로 빼어난 성적을 거두면서 봄 농구 여정을 끝까지 마쳤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칭찬했다.

장밋빛으로만 가득할 것 같았던 농구 인생에 첫 번째 암초를 만났다. 2000~2001시즌 코비는 더 많은 공격 기회와 볼 소유를 원했다. 그러나 여전히 팀의 중심은 당대 최고 센터 오닐이었고 자존심 강한 두 선수는 정규 시즌 내내 대립각을 세웠다. 라커룸에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악동' 데니스 로드맨을 다루는 데 성공하고 스코티 피펜과 토니 쿠코치의 기 싸움도 경험했던 필 잭슨 감독이 두 선수의 상생을 도모했지만 허사였다.

많은 전문가가 레이커스의 2연속 우승은 어렵다고 전망했다. 팀 전력이나 부상 등 경기장 안의 문제가 아닌 두 슈퍼스타의 '힘겨루기'가 경기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아직은 오닐이 레이커스의 중심을 맡아야 하며 코비의 언행은 성급하고 위험한 '도발'이라고 비판했다. 코비는 그해 평균 28.5득점 5.9리바운드 5.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MVP급 성적을 챙겼다. 그러나 개인 성적은 크게 끌어올렸을지 몰라도 팀 내 화합을 해치는 선수로 낙인이 찍혔다. 서부 콘퍼런스 결승 진출도 장담할 수 없다는 평가를 들었다.

▲ 코비 브라이언트를 기리는 팬들의 플래카드 ⓒ Gettyimages
모든 이의 예상이 빗나갔다. 레이커스는 역대 가장 빼어난 페이스로 2001년 플레이오프를 보냈다. 서부 콘퍼런스 결승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시리즈 스코어 4-0으로 물리치는 등 파이널까지 단 한번도 패하지 않고 승승장구했다. 코비도 플레이오프 동안 평균 29.4점 7.3리바운드 6.1어시스트 1.6가로채기를 올리며 펄펄 날았다. 파이널에서 앨런 아이버슨이 이끄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1차전에서는 졌지만 이후 내리 4연승을 거두며 두 번째 우승 반지에 입맞춤했다.

2003~2004시즌이 끝난 뒤 오닐이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했다. 레이커스의 새로운 리더로 낙점된 코비는 폭발적인 득점쇼로 NBA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2005~2006시즌이 절정이었다. 2005년 12월 21일 댈러스 매버릭스와 경기서 62점을 올리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더니 이듬해 1월 23일 토론토전에서는 81점을 퍼부었다. 토론토와 경기에선 원정이었는데도 팬들이 코비의 득점이 올라갈 때마다 뜨거운 환호성을 보냈다. 코비가 이날 올린 81득점은 월트 체임벌린의 100득점에 이은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다. 이 경기가 끝난 뒤 코비는 '미스터 81(Mr.81)'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우승권과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코비 없는 레이커스는 우승할 수 있어도 오닐 없는 레이커스는 결코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는 세간의 비평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닐 정도의 빅맨 없이 4번째 우승 반지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는 뼈아픈 비판도 들었다. 코비도 여러 차례 좋은 빅맨 동료를 원한다는 인터뷰를 하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레이커스는 2007~2008시즌 도중 멤피스 그리즐리스를 떠나고 싶어 했던 리그 수준급 센터 파우 가솔을 품에 안는 데 성공했다. 가솔의 합류는 코비에게 다시 한번 진지하게 대권 도전을 꿈꾸게 하는 '신의 한 수'였다. 가솔은 긴 슛 거리와 빼어난 리바운드 능력을 갖춘 빅맨이었다. 또 내,외곽을 오가며 A패스를 제공할 수 있는 뛰어난 콘트롤 타워이기도 했다.

코비는 가솔, 데렉 피셔, 라마 오덤, 앤드루 바이넘 등과 함께 2009~2010년 2연속 파이널 우승을 거머쥐었다. 파이널 MVP도 두 번 모두 그의 차지였다. 2000년대 초반 3연속 우승을 챙길 때는 오닐이 모두 파이널 MVP에 선정됐다. 코비는 연속 우승을 차지한 2시즌 동안 플레이오프 46경기에 나서 평균 29.7점 5.7리바운드 5.5어시스트를 쓸어 담았다. 2000년대 들어 봄 농구에서 가장 눈부신 경기력을 보인 선수 가운데 한 명이 코비다. 또 클러치 상황에서 마지막 슛을 책임지는 데 가장 믿음직한 선수도 단연 코비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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