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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올림픽 출전사⑧ 1960년 로마 대회, 한국 올림픽 출전사에 유일한 ‘노메달’

작성일: 2016.07.13 07:00 신명철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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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로마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이 개회식에 참석하기 위해 스타디오 올림피코에 입장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국장] 1960년 로마 대회는 한국 올림픽 출전사에 유일한 ‘노메달’ 대회로 남아 있다. 한국 스포츠의 전반적인 수준이 갑자기 추락하지 않는 이 기록은 유일한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로마 올림픽의 참패는 당시 정치 상황과 일정 부분 연결돼 있다.   


1960년 3월 15일 치러진 정∙부통령선거는 부통령까지 뽑는 마지막 선거였다. 그 뒤는 대통령만 뽑게 됐기 때문이다. 집권당인 자유당에서는 대통령 후보에 이승만, 부통령 후보에 이기붕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 선거는 전례를 찾기 힘든 부정선거였다. 4월 혁명이 일어나고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해 하와이 망명길에 올랐다. 야당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이승만은 부정선거를 치를 이유가 없었으나 부통령 당선에 자신이 없던 이기붕이 부정선거를 강행해 부통령에 당선됐다. 4월 28일 경무대(오늘날의 청와대) 별관에서 이기붕 일가의 집단 자살로 보이는 사체가 발견됐다. 이승만의 양아들로 입적된 이강석(이기붕의 장남)이 권총으로 가족을 모두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2년 9월 27일부터 1960년 4월 28일까지 제 17대 대한체육회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KOC(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기붕의 죽음은 체육계에 큰 충격을 줬다. 이기붕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사령탑을 잃은 대한체육회는 혼란에 빠졌다.  
4월 혁명으로 회장을 잃은 대한체육회가 그해 로마 올림픽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준비가 부족했지만 9개 종목에 56명으로 구성된 한국 선수단은 1960년 8월 25일부터 9월 11일까지 열린 로마 올림픽에 참가했다. 결과적으로 단 1개의 메달도 건지지 못했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첫 출전한 1948년 런던 올림픽 이후 한국이 올림픽에서 단 한 개의 메달도 못 딴 것은 로마 대회가 처음이다.

한국 선수들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은 레슬링 라이트급의 봉창원, 역도 페더급의 김해남이 각각 거둔 4위였다. 이번에도 기대했던 마라톤은 출전한 3명의 한국 선수 가운데 이창훈의 20위가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이창훈이 세운 2시간25분22초는 기상 조건과 도로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4년 전인 1956년 멜버른 올림픽 같으면 2위가 될 수 있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로마 올림픽에서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는 2시간15분16초2의 놀라운 기록으로 우승했으며 동메달리스트인 뉴질랜드의 아서 맥기도 2시간17분18초2로 이창훈보다 8분이나 빨랐다.  마라톤의 스피드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었다. 한국 마라톤은 이때 이후 긴 암흑기에 들어간다. 

복싱에서는 여전히 편파적인 판정이 말썽이었다. 라이트웰터급의 김득봉은 억울한 판정에 희생된 주인공이다. 왼손잡이 기교파 복서인 김득봉은 1회전에서 태국의 몽클리트를 1라운드 30초 만에 KO로 이기고 2회전에서는 캐나다의 사라진에게 실격승을 거뒀다. 김득봉은 3회전에서 베네수엘라의 바르가스를 2라운드 55초 만에 RSC로 꺾고  8강에 올랐다. 8강전에서 김득봉은 가나의 카르테를 재치 있게 공격해 우세한 가운데 경기를 끝냈다. 그러나 판정은 어이없게도 1-3으로 김득봉의 판정패였다. 부심 1명은 무승부로 채점했다. 

복싱 웰터급의 김기수(1958년 도쿄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리스트)에게도 로마 올림픽은 불운했다. 1회전을 부전으로 통과한 김기수는 2회전에서 1959년 유럽선수권대회 동메달리스트인 아일랜드의 해리 페리를 3-2 판정으로 누르고 메달 문턱인 3회전에서 유럽의 강호 니노 벤베누티(이탈리아)와 맞붙었다. 김기수는 1957년과 1959년 유럽선수권자이자 이 대회 우승자인 벤베누티에게 0-5로 판정패했다.  

벤베누티는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뒤 120승1패의 화려한 아마추어 전적을 남기고 1961년 프로로 전향해 46연승을 달린 끝에 1964년 9월 WBA(세계복싱협회)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에 올랐다. 김기수도 1961년 프로로 전향했고 동양 미들급 챔피언을 거쳐 1966년 6월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벤베누티에게 도전해 15회 판정승을 거두며 한국인 첫 프로 복싱 세계 챔피언이 됐다. 4년 전 로마 올림픽 패배의 설욕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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