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티비뉴스=LA(미 캘리포니아주), 양지웅 통신원]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미국 사상가 및 시인 랠프 에머슨의 말처럼 메이저리그를 어려서부터 바로 옆에서 보고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빅리그에서 성공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켄 그리피 주니어 또는 배리 본즈 부자가 가장 유명하고, 한국프로야구에는 이종범-이정후 부자가 대표적인 부자 야구선수다. 현역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에도 아버지의 뒤를 이은 2세들이 상당수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2명의 선수와 아버지를 짚어본다. 어린이 시절 아버지의 영향으로 야구를 시작해 빅리거가 된 이들이다.
◆클레이 벨린저와 코디 벨린저 부자
현재 아니 메이저리그 역사상 코디 벨린저(LA 다저스)보다 뜨겁게 시즌을 시작한 선수가 있을까. 벨린저가 올 시즌 개막 후 보여준 활약은 역대급이다. 벨린저는 다저스가 33경기를 마친 4일(한국시간) 현재 타율 0.415(118타수 49안타), 14홈런, 38타점을 기록하며 타격 모든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벨린저는 지난 두 시즌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고도 우승을 하지 못했으나 아버지 클레이 벨린저는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가 있다.
클레이는 1989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지명됐으나 빅리그에 콜업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마이너리그에서 1000경기 이상 뛰었고 30살이 넘은 후 겨우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었다. 클레이는 1999~2001년 뉴욕 양키스 소속이었고 1999년과 2000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받았다. 팬들이 쉽게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은 클레이가 양키스에서 투수와 포수만 빼고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던 유틸리티 백업 요원이기 때문이다. 클레이는 2001년 시즌이 끝나고 양키스에서 방출당한 뒤 2002년 LA 에인절스와 계약했으나 겨우 두 경기만 뛰고 더 이상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볼 수 없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은 0.193(311타수 60안타)으로 2할을 넘지 않는다. 통산 홈런 12개에 35타점을 기록한 뒤 유니폼을 벗었다.
클레이는 은퇴 후 애리조나 피닉스 인근에서 리틀야구 코치 생활을 하며 아들 벨린저와 같이 2007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본선에 진출했고, 애리조나주 길버트시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자녀들을 키웠다.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양키스 구장에서 놀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양키스 우승 기념 퍼레이드에 참석했던 것도 추억으로 꼽았다. 그래도 벨린저 부자에게 가장 큰 추억은 아들이 빅리그에 데뷔한 2017년,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 참가해 아버지가 던져주던 공을 아들이 타석에서 치던 순간이다. 리틀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자리를 옮겨 부자가 같이 올스타 경기를 즐기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블라디미르 게레로와 게레로 주니어
1999년생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지금 가장 많이 주목을 받고 있는 신인이다.
지난달 26일(한국시간)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MLB.com에서 무료중계로 편성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이 경기에서 게레로 주니어는 먼저 4회말 좌측 펜스 바로 앞에서 잡힌 큼직한 홈런성 타구를 때려내 아버지를 자리에게 들썩이게 하였고, 결국 결승 득점으로 연결된 9회말 우익선상 2루타를 쳐내며 아버지와 팬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게레로 주니어는 지난해 마이너리그에서 타율 0.381, 홈런 20개, 타점78을 올리며 올시즌 초특급 유망주로 손꼽힌다.
아버지 블라디미르 게레로는 지난해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큼 빅리그에서도 큰 족적을 남긴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선수다. 1996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메이저리그 생활을 시작했고 2004년에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로 이적했다. 2010년 텍사스 레인저스 그리고 2011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1년씩 선수생활을 한 뒤 은퇴했다. 2004년 아메리칸리그 MVP에 선정됐으며 실버슬러거 8번, 올스타에 9번 뽑혔다. 통산 타율이 0.318(8155타수 2590안타)이며, 449홈런과 1496타점을 기록했다.
자신과 같은 등번호 27번을 달고, 비록 지금은 사라진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아니지만 또 다른 캐나다팀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메이저리그 생활을 시작하는 20살짜리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토론토에서 오클랜드와 홈 3연전을 모두 이긴 후 다음 상대는 공교롭게도 LA 에인절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에인절스 경기장을 자주 찾았던 아버지는 이곳에서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400홈런을 쳤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 게레로는 토론토에서 아들의 빅리그 데뷔 시리즈를 지켜봤지만 애너하임에는 오지 않았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에인절스타디움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곳이지만, 이제 아들은 토론토 구단과 동료, 팬들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메이저리그 선수다. 이제는 내 순간이 아니라 아들의 것이고 나는 그것을 존중한다”며 함께 하지 않은 이유를 전했다. 그리고 “아들과 애너하임에서 좋은 기억을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감사한다. 나는 항상 아들과 정신적으로 함께할 것이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혹시나 자신이 에인절스 경기장에 나타나면 아들에게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면서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배려였다. 천사 같은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한편 게레로 주니어는 에인절스와 3차전 시리즈 중 첫 두 경기에만 출전해 6타수 무안타 2볼넷 3삼진을 기록했고, 현재 메이저리그 입성 후 홈런과 타점 없이 타율 0.174(23타수 4안타)를 기록 중이다. 4일부터는 역시 아버지가 뛰었던 텍사스 레인저스 원정 3연전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