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의 세계' 김희애(왼쪽) 박해준. 제공|JTBC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모든 건 아내가 자초한 일이다. 그는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부부의 세계' 제 2막이 열렸다. 스포일러가 담긴 셈이라는 홈페이지의 캐릭터 설명 업데이트는 의기양양 컴백한 이태오(박해준)의 마음을 이렇게 요약한다. '적반하장'이 재미있다. 누가 보면 아내가 바람피운 줄 알겠다. '아내가'를 '남편이'로 바꿔보자. 6회로 마무리된 제1막, 배신당한 지선우(김희애)의 마음이 딱 그렇지 않았을까.

매회 쑥쑥 시청률이 올라 지난 8회가 전국 시청률 20.1%(닐슨코리아 유료방송기준)을 기록한 '부부의 세계'는 어느덧 웰메이드 통속극의 명가가 된 JTBC 금토 드라마다. 원작이 BBC 히트작인데, '밀회' 김희애가 주인공이고, '미스티' 모완일 PD가 연출하는 불륜극이라니 프로필부터가 믿음직하다. 다만 때를 놓쳐 'SKY캐슬'의 역대최고 종편 시청률 23.8%를 넘을 게 확실해지고서야 뒷목잡고 몰아봤다. 주연은 물론 조단역까지 하나하나 살아 엎치락뒤치락 하는 관계의 묘사가 특히 흥미진진하다. 사랑과 배신과 헌신과 욕망, 애증과 증오가 한데 엮여 기막힌 전복이 거듭된다. 기막히기로는  역시 '적반하장'만한 게 없고.

▲ '부부의 세계' 김희애(왼쪽) 박해준. 제공|JTBC
이룰만큼 이룬 중년의 의사 지선우는 언제라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라며 우아하게 미소지을 것 같은 여자다. 1회의 끝자락, 그녀의 삶이 산산조각난다. 사랑하는 남편 이태오는 2년째 불륜이었다. 그녀를 둘러싼 온세상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가위를 들어 남편의 심장을 내리찍는 상상을 한다. 진실을 고백하고 관계를 끝낸다면 용서해주마 기회도 준다. 하지만 소용없다. 지선우는 '내게 원인이 있을지 몰라' 식의 자발적 2차 가해 따위 안 하는 잘난 여자다. 대신 그녀는 살짝 돌아버린다. 내 아들, 내 집, 내 인생 뭐가됐건 하나도 손해 볼 수 없다며 "이태오 그 자식만 내 인생에서 깨끗이 도려"내기로 한다. 눈을 부릅뜬 채 앞뒤 안 가리고 '본때'를 보여준다. 어찌됐건 그녀는 해낸다. 문제는 16부작 드라마 중 고작 6부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는 거다.

이젠 이태오의 차례다. 지난 회차를 돌아보자. 직함만 영화감독에 사장님일 뿐, 잘 나가는 아내 지선우의 그늘에서 사랑꾼 남편 코스프레 하며 살던 유태오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 여다경(한소희)에게 빠진다. 당돌하기만 했지, 부모 잘 만나 물정 모르는 여다경 또한 허우대 매끈한 그에게 빠져든다. 아마도 이태오는 우아하고 든든한 아내에게 한 발을, 싱그럽고 짜릿한 애인에게 한 발을 걸친 채 희희낙락 2년을 살았으리라. 그러나 아내가 그 사실을 알아버렸고, 애인은 임신을 했다. 어쩌려던 계획이었을까. 거짓말로 연명하며 시간만 끌던 이태오는 모든 걸 뺏기고 배가 불러오는 여다경과 함께 고향에서 쫓겨났다. 범접불가 포스의 아내에게 완전히 K.O. 당한 패배자 같았다.

▲ '부부의 세계' 김희애(왼쪽) 박해준. 제공|JTBC

그러나 얄궂기도 해라. '부부의 세계'는 2년이 흘러 인생 역전에 성공한 이태오의 귀환과 함께 2막을 알렸다. 수많은 수군거림처럼 기 센 아내 대신 뮤즈를 만난 덕분이었을까. 어쨌거나 7회와 8회를 지나며 이태오는 '메인빌런' 자리를 굳혔다. 본색을 드러낸 설명숙(채국희)이 얄팍한 세상을 대표하는 '서브빌런'쯤 되겠지만, 이태오에게는 비할 바 아니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내세우긴 했으나, 이태오는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성취에 힘입어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상실한 듯하다. 심지어 그간의 수모를 전처 탓으로 돌리고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 다짐한다. 돈과 폭력과 위협과 회유…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이와중에 제 버릇 개 못 주고 질척대는 조짐이 심상치 않다. "너 나 못 잊니" 하는 지선우에게 "나에게 지금 여자는 여다경뿐"이라 응수했지만 글쎄다. 여다경만 모르지 시청자는 알 거다. 이태오가 어떤 놈인지.

▲ '부부의 세계' 김희애(왼쪽) 박해준. 제공|JTBC
8회의 끝부분 지선우는 샷건이라도 쏴 버릴 듯 슬로우로 나타나 반격을 예고했다. 지선우에겐 당연한 응수겠지만, 김희애를 떠올리면 '적반하장'이 또 떠오른다. '내 남자의 여자'(2007) '아내의 자격'(2012), '밀회'(2014)로 김희애 불륜극 성공사를 써 온 그녀는 사실 '부부의 세계'로 '내로남불'을 방증했다. 소시적엔 "임자 있는 남자 나눠 갖는 여자가 원하는 게 뭘 거 같니? 나누지 않고 혼자 갖고 싶은 거 아니겠니?"라며 무시무시한 멘트로 조강지처를 도발했던 그녀가 이젠 불륜 남편과 이혼한 조강지처가 돼 "너도 나처럼 되지 말란 법 없다"며 불륜녀를 도발한다. '적반하장'에선 이태오보다 원조다. 

이태오의 '적반하장'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모든 건 아내가 자초한 일이다. 그는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는 문장, 어째 찝찝하다. "생각이'었'다"라는 과거형에서 이태오의 앞에 도사린 불길한 기운이 감지된다. 아마도, 그의 생각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원작 스포일러를 피해 남은 여섯 회를 본방사수해야 할 이유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 '부부의 세계' 김희애(왼쪽) 박해준. 제공|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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