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퍼저축은행이 조 트린지 감독을 해임했다. ⓒKOVO
▲ 페퍼저축은행이 조 트린지 감독을 해임했다. ⓒKOVO

 

[스포티비뉴스=윤욱재 기자] 정말 처참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든 도약을 노려야 했기에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지만 그 누구도 예상 못한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V리그 여자부의 '막내구단' 페퍼저축은행의 2023-2024시즌은 처참한 실패로 기억될 것이다.

페퍼저축은행은 2021-2022시즌부터 V리그 여자부 제 7구단으로 참여했다. 시작부터 험난했다. 과거 국가대표팀 사령탑도 맡았던 김형실 감독 체제로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기존 구단들과의 전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17연패의 수렁에 빠지는 등 최하위로 주저 앉았다. 페퍼저축은행의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22-2023시즌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막 17연패에 빠지며 최악의 출발을 한 페퍼저축은행은 결국 김형실 감독이 물러나고 이경수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쳐야 했다.

더이상 페퍼저축은행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페퍼저축은행은 2023-2024시즌 개막을 앞두고 대대적인 전력보강에 나섰다.

페퍼저축은행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바로 FA 영입이었다. 마침 지난 해 챔피언결정전에서 도로공사의 리버스 스윕을 이끌며 '우승 청부사'로 떠오른 국가대표 공격수 박정아가 FA 시장에 나타났다. 'FA 최대어'인 박정아에게 '배구여제' 김연경과 동급 대우를 안긴 페퍼저축은행은 KGC인삼공사(현 정관장)에서 활약했던 채선아도 영입하면서 '외부 FA'만 2명을 데려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그렇다고 내부 FA에 소홀했던 것도 아니었다. 창단 첫 시즌부터 팀의 간판급 선수로 활약했던 이한비를 붙잡은 것은 물론 트레이드로 영입한 베테랑 리베로 오지영까지 눌러 앉힌 페퍼저축은행은 FA로만 46억 8500만원을 쏟아부으면서 도약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다. 박정아에 3년 총액 23억 2500만원, 채선아에 3년 총액 3억원, 이한비와 3년 총액 10억원, 오지영에 3년 총액 10억원을 각각 투자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야스민을 지명하며 공격에 날개를 단 것이다. 야스민은 현대건설 시절 허리 부상으로 중도하차하기도 했지만 이미 그의 공격력은 V리그에서 검증을 마친 상태였다.

여기에 페퍼저축은행은 미국 대학배구리그에서 명장으로 불렸던 아헨 킴 브라운대 감독을 새로 선임하면서 '새판짜기'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아헨 킴 감독은 개인 사정을 이유로 정규시즌이 개막하기도 전에 팀을 떠났고 도로공사가 박정아의 FA 보상선수로 주전 세터 이고은을 지명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결국 페퍼저축은행은 급히 조 트린지 감독을 영입하는 한편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까지 내주면서 이고은을 트레이드로 다시 데려오는 '촌극'을 빚었다.

▲ 페퍼저축은행의 23연패 탈출을 이끌었던 박정아 ⓒKOVO
▲ 페퍼저축은행의 23연패 탈출을 이끌었던 박정아 ⓒKOVO
▲ 페퍼저축은행은 오지영이 KOVO로부터 1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자 계약해지를 결정했다. ⓒKOVO
▲ 페퍼저축은행은 오지영이 KOVO로부터 1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자 계약해지를 결정했다. ⓒKOVO

 

의욕적으로 전력보강에 나섰지만 출발부터 삐걱거렸던 페퍼저축은행.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해 11월 15일 IBK기업은행전에서 1-3으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20일 흥국생명전에서 1-3으로 패하면서 23연패를 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이는 역대 V리그 여자부 최다 연패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었다.

끝내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23일 도로공사와의 경기에서 0-2로 뒤지다 3-2로 대역전승을 거두면서 23연패를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번엔 "팀내 베테랑 선수가 후배 선수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또 한번 도마 위에 오르고 말았다.

베테랑 선수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오지영이었다. 오지영은 2020 도쿄올림픽에서 4강 신화를 함께 이끌었던 국가대표 리베로 출신으로 페퍼저축은행이 지난 2022년 12월 수비 보강을 위해 야심차게 트레이드로 영입한 선수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지영이 후배 선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폭언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결국 한국배구연맹(KOVO)은 27일 상벌위원회를 개최하고 오지영에게 1년 자격정지라는 처분을 내렸다. 

이날 상벌위원회는 "오지영의 팀 동료에 대한 괴롭힘, 폭언 등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했다"라면서 "이와 같은 행위들은 중대한 반사회적 행위이며 앞으로 프로스포츠에서 척결돼야 할 악습이므로, 다시는 유사한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재하기로 해 선수인권보호위원회규정 제10조 제1항 제4호, 상벌규정 제10조 제1항 제1호 및 제5호, 상벌규정 별표1 징계 및 제재금 부과기준(일반) 제11조 제4항 및 제5항에 의거, 오지영에게 '1년 자격정지'의 징계를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올해로 프로 19년차를 맞은 베테랑 리베로인 오지영은 배구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후배 선수를 지속적으로 괴롭힌 선수가 오지영이었다니. 배구계의 충격과 상처는 컸다. 

그러자 페퍼저축은행 구단은 오지영과 '결별'을 선택했다. 페페저축은행은 입장문을 통해 "먼저 구단 내 불미스러운 일로 페퍼저축은행 AI 페퍼스를 아껴 주시는 팬 여러분과 한국배구연맹, 그리고 배구 관계자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구단은 내부조사를 통해 오지영 선수에 의한 인권침해 행위 사실을 파악 후, 곧바로 선수단에서 배제하고 배구연맹에 이를 신고했다. 구단은 상벌위원회 징계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금일(27일) 부로 오지영 선수와의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향후 구단은 선수들의 권익 보호와 재발 방지에 만전을 기하겠다. 심려를 끼쳐드려 다시 한번 사과 드란다"라고 밝혔다.

페퍼저축은행은 팀내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한편 팀의 연패도 길어지면서 수난의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했다. 결국 페퍼저축은행은 트린지 감독과 계약 해지를 결정했다. 트린지 감독 체제가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린 것이다. 씁쓸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페퍼저축은행 구단은 28일 트린지 감독 해임과 관련해 "침체된 구단의 분위기 쇄신 및 다음 시즌에 대한 빠른 준비를 위해 고심 끝에 트린지 감독과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차기 감독 선임 전까지는 이경수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 예정이다"라면서 "구단은 조속히 차기 감독 선임 절차에 착수해 팀을 정상화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구단은 트린지 감독과 함께 한 날들을 잊지 않을 것이며, 그와 그의 가족들의 앞날에 행운을 빈다"라고 전했다.

물론 신생팀은 많은 고초를 겪기 마련이고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페퍼저축은행도 벌써 V리그 3년차를 맞았고 더이상 '막내'라는 이유로 그들의 처참한 결과를 감싸기는 어렵다.

우선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유종의 미'를 거두면서 내년 시즌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제 페퍼저축은행에게 남은 것은 겨우 5경기 뿐이다. 이번 시즌 3승 28패(승점 10)에 그치고 있는 페퍼저축은행은 오는 29일 광주 페퍼스타디움에서 IBK기업은행을 상대하며 3월 3일 장충체육관에서 GS칼텍스를, 3월 8일 페퍼스타디움에서 흥국생명을, 3월 13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정관장을, 3월 16일 페퍼스타디움에서 현대건설을 차례로 만난다. 

이미 최하위는 확정된 상태이지만 그들의 배구는 올 시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난 도로공사전에서 투혼을 불살랐던 선수들의 플레이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과연 페퍼저축은행이 길고 길었던 시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어느 팀보다 다사다난했던 페퍼저축은행의 2023-2024시즌이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 조 트린지 감독 ⓒKOVO
▲ 조 트린지 감독 ⓒKOVO
▲ 조 트린지 감독 ⓒKOVO
▲ 조 트린지 감독 ⓒKOVO
▲ 조 트린지 감독 ⓒKOVO
▲ 조 트린지 감독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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