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티비뉴스=베이징, 이성필 기자]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역시 대한민국은 쇼트트랙이다'라는 말을 듣도록 잘 준비하겠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은 최민정(성남시청)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의 자존심 회복을 목표로 세웠다.
여자 대표팀은 베이징으로 오는 길이 험난했다. '절친'이라 불렸던 심석희가 스승과 성폭력 문제로 재판을 거치는 과정에서 최민정, 김아랑 등을 험담한 메시지가 밖으로 노출됐기 때문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1000m에서 심석희가 최민정을 고의로 충돌했다는 의혹이 터지는 등 여러모로 분위기가 나빴다. 자연스럽게 베이징에 나서는 대표팀을 향한 분위기는 '나쁨'이었다. 최민정도 자신을 향한 '동정론'을 적잖게 부담스러워했다. 좋든 싫든 '구설'에 오르는 것은 올림픽 준비 집중력을 흩트려 놓을 수 있어 그렇다.
베이징 입성 후 지난 7일 치렀던 500m 준준결선에서 코너를 돌다 미끄러지며 결선행을 이루지 못했던 것도 아픔으로 남았다. 4년 동안 흘린 땀이 나쁜 빙질로 날아가 그렇다. 혼연의 힘을 다해 탔던 혼성 계주도 운이 없었다.
남자 1000m 편파 판정으로 황대헌, 이준서가 실격으로 메달을 노릴 기회가 날아가면서 심적인 부담도 커졌다. 그렇지만, 최민정은 지난 1월 초 미디어데이에서 발언했던 그대로 "역시 대한민국은 쇼트트랙이다"라는 말을 지키려 애썼다.
기량으로 최민정을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최민정은 고교 1학년 시절인 2014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여자 1000m와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개인종합 3위로 화려한 태극마크 입성을 알렸고 2015, 201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으로 독보적인 실력을 자랑했다.
첫 올림픽이었던 평창에서 500m 실격으로 울었지만, 1500m 금메달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계주까지 2관왕으로 이름값을 충분히 했음을 알려줬다. 순발력을 앞세운 탁월한 방향 전환 기술로 금메달을 만들었다.
다시 4년, 최민정은 여전히 냉철했다. 계주에서 러시아 올림픽위원회(ROC)에 밀려 3위까지 떨어지자 마지막 주자로 나서 아웃 코스로 크게 돌며 극적인 2위 결선 진출을 이끌었다. 베이징 초반 나쁜 분위기가 황대헌의 1500m 금메달로 깨진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경기 전날 국민적 응원에 감사하며 "좋은 모습, 책임감 있는 모습 보여드리겠다"라는 마음을 표현한 최민정이다. 남자 대표팀의 기운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책임 의식이었다.
충만한 의지는 결국 은빛 레이스로 완성됐다. 3위에서 막판 아웃 코스 맹추격은 하이라이트였다. 수잔 슐팅(네덜란드)이 너무 레이스를 잘했기에 은메달로도 충분했다. 황대헌의 금메달과 함께 "역시 대한민국은 쇼트트랙"이라는 말을 제대로 증명한, '얼음 공주' 아닌 '아름다운 울보' 최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