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메이저리그(MLB) 취재를 갔을 때 가장 부러웠던 건 취재진이 선수단의 누구와도 클럽하우스에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많은 인원들을 한꺼번에 담고도 남을 만한 클럽하우스의 시설과 규모였다.
선수들은 클럽하우스에 마련된 시설에서 별도의 훈련과 치료를 받는 것은 물론, 자신의 자리나 공용 공간에서 음악을 듣고, TV를 보고, 독서를 하고, 휴대전화를 보고, 샤워를 하고, 때로는 삼삼오오 포커를 치며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치 자기 집에서 생활하는 듯 위화감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 근래 지은 구장의 클럽하우스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다.
그런데 KBO리그에도 메이저리그 시설과 견줘 손색이 없을 정도의 클럽하우스 시설이 등장했다. 바로 인천SSG랜더스필드다. 지난해 중반부터 대대적인 리뉴얼을 준비했던 SSG는 지난 시즌이 끝나자마자 대공사에 돌입해 최근 마무리 단계에 왔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메이저리그급’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직접 눈으로 확인한 시설은 추신수나 김광현이라는 전직 메이저리거의 증언대로 미국 못지않았다. 한국적인 디테일과 아기자기함은 미국보다 더 나은 측면도 있었다.
10억 예산이 40억대 중반으로… 다 뚫고, 싹 다 바꿨다
KBO리그에서 클럽하우스 시설은 전적으로 선수들의 영역이다. 취재진도 접근할 일이 거의 없다. 특히 시즌 중에는 그렇다. 그래도 비시즌 때 간혹 선수들의 영역에서 취재가 이뤄지는 경우가 있어 인천의 선수단 시설은 익숙한 편이었다. 그래서 작년 말 대규모 리뉴얼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의문이 있었다. 공간은 분명 한정되어 있었다. “집기는 좋은 신상품으로 교체한다고 치고, 제한된 환경에서 얼마나 확장이 가능할까”는 질문을 던지자 당시 류선규 SSG 단장은 “보고 놀라지 말라”고 했다. 23일 확인해보니 이유가 있었다.
공사 범위는 기자의 상상을 초월했다. 말 그대로 이전 구조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서다. 부끄럽지만 예전 기억대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길을 헤맬 정도였다. 클럽하우스, 체력단련실, 선수단 미팅룸, 식당, 사우나, 수면실, 감독실 및 코치실, 전력분석실 등의 위치가 죄다 바뀌어 있었다. 매일 경기장에 오는 선수들도 처음에는 어디가 어딘지 헷갈려했다는 말이 농담이 아님을 실감했다.
아예 선수단 영역을 다 뚫어버리고, 제로부터 시작해 구획을 새로 나눠 공사를 했음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변경은 불가능했다. 권철근 SSG 시설안전대관팀장은 “타격 연습장이 리뉴얼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핵심이었다. 그런데 기존 공간에서 벽을 뚫지 않고는 확장이 어려웠다. 벽을 뚫고 세 명이 동시에 타격 연습(종전 한 명)을 할 수 있도록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연쇄 재배치가 일어났다. 당초 10억 원 정도로 예상했던 공사비가 왜 40억 원대 중반까지 치솟았는지 알 수 있었다.
클럽하우스는 라커룸의 넓이나 편의시설, 조명 등이 모두 메이저리그 팀에 뒤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만큼 라커 간격이 넓었다. 라커마다 전원 콘센트, USB 포트, 도어락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등 디테일에 신경을 쓴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선수들은 더 이상 스파이크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낼 때 에어건을 쓰지 않아도 된다. 신발장처럼 생긴 기계에 넣으면 알아서 털어주고 말려준다. 선수들의 의견을 꼼꼼하게 수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면실에는 최신식 리클라이너 의자가 배치됐고(양해를 구하고 앉아봤다, 편하다!), 조도도 선수들이 눈을 붙이기에 아주 적당했다. 경기를 앞둔 선발투수나 불펜투수들이 이용하기에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을 들인 사우나 시설은 선수들이 피로를 풀고 담소를 나누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신세계 스타필드 아쿠아 시설을 설계한 전문가들이 그 노하우로 만든 시설에 VIP급 감성까지 덧댔다.
핵심이었던 타격 연습장은 확대됐다. 세 명의 선수가 동시에 들어가 타격 훈련을 할 수 있다. 예전에도 타격 연습장이 있긴 했지만 시설이 좁아 개방감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훨씬 넓어졌고 훨씬 밝아졌다. 타격 연습장에서 더그아웃으로 오는 길에는 TV와 함께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대타로 나설 선수들이 이곳에서 대기하라는 배려다. 이 역시 경기 당사자들의 의견이 없고서야 생각하기 어려운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원정팀 클럽하우스 또한 대규모 공사를 통해 냉난방 설비를 시스템화로 바꾸고, 라커 또한 새 집기를 들여놨다. 소파도 배치해 원정팀 선수들이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코칭스태프실은 홈팀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집기들이 들어왔다. 샤워실도 확장했고, 리그 역사상 최초로 원정 클럽하우스 매니저도 둔다. SSG 관계자는 “선수들이 육체적·정신적으로 컨디션 조절을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 조성이 필수라고 생각했다”면서 “이러한 환경은 홈팀은 물론 원정팀 선수들에게도 제공되어야 한다는 게 구단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SSG의 집들이가 의미하는 것, 상상력이 트렌드를 만든다
예산이 치솟았지만 정용진 구단주(신세계이마트그룹 부회장)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인천과 강화의 선수단 시설을 직접 방문해 시설을 둘러봄은 물론 실무자들의 건의사항도 꼼꼼하게 들었던 정 구단주는 “이왕 하는 것, 최고 수준으로 하라”고 오히려 관계자들에게 당부했다. 구단주의 강한 의지 속에 실무자들도 예산 압박 없이 상상력을 펼칠 수 있었다. 인천과 강화 시설 개선에 이번 겨울에만 50억 원의 현금을 일시불로 긁었다. KBO리그 역사상 경기장 신축이 아닌 이상 이만한 시설 투자는 없었다.
야구단 내부에서는 “(전 모기업인) SK의 경우 획이 굵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SSG는 확실히 아기자기하고 디테일한 부분에 강점이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사업 추진에서도 그런 특성이 잘 드러났다. 피 터지는 유통업계 경쟁에서 고객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을지 하루에서 수백 번 고민하는 모기업이다. 선수들을 고객으로 가정하고, 고객들에게 최대의 만족감을 주기 위한 그룹의 노하우가 총동원됐다. 선수들이 감동하는 건 당연했다.
SSG 관계자는 “이번 클럽하우스는 단순히 시설 개선 차원이 아니라 신세계그룹이 지향하는 신세계 유니버스를 야구장에 구현한 데에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다”면서 “현대캐피탈 배구단도 견학했고, 스타필드 사우나 시설 담당자가 참여하는 등 신세계그룹 자체의 역량도 투입됐다. 기존의 야구단의 관점이 아닌, 그룹의 관점이 투영됐다. 그 결과 기존 KBO리그에 없던 클럽하우스가 탄생됐다”고 진단했다.

그 효과는 즉시 나타나고 있다. 선수들의 출근 시간이 빨라졌다. 집만큼 편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휴식 공간이 부족해 되도록 집에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더 편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오히려 일찍 나와 준비를 마치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경기를 준비하는 루틴이 만들어지고 있다. 베테랑 선수들이 시설에 만족해 젊은 선수들보다 더 일찍 경기장에 나온다는 후문이다. 선수단의 만족도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SSG의 이번 투자는 단순한 ‘시설 개선’의 의미를 넘어선다는 게 야구계 안팎의 호평이다. “어메이징 랜더스”, “세상에 없던 프로야구단”이 슬로건에서 그치지 않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한편으로는 화려한 시설을 구축하면서 KBO리그의 격을 높였다고도 보기 충분하다. 향후 타 구단의 행보에 미칠 영향력도 크다. 이제 KBO리그 클럽하우스의 ‘기준’은 SSG가 됐다. 다른 구단도 자존심상 이보다 더 좋은 클럽하우스를 만들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경기장 밖에서의 경쟁은 프로야구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지난해 창단해 10개 구단 중 막내격인 SSG가 프로야구의 트렌드를 선도하기 시작한 상징적인 사건으로도 기억될 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프로야구가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막내가 앞장 서 흥행 요소를 만들고 이슈를 끌고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창단 당시 정 구단주와 신세계이마트그룹이 밝힌 당당한 포부와도 일치한다. SSG 또한 “프로야구의 격을 높일 수 있는 기폭제의 역할을 기대하고 희망한다”면서 “김광현의 영입도 마찬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수단의 프라이드도 한껏 치솟았다. SSG 인수 후 선수들은 “우리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타 구단 선수들도 SSG 모기업의 지원을 부러워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지난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스타벅스 커피’가 물꼬를 텄다면 이번 클럽하우스 개편은 그런 자부심의 절정을 만들었다. “야구를 더 잘해야 한다”는 동기부여도 같이 생겼다. SSG는 “프로야구의 수준을 높이고, KBO리그 르네상스를 선도하는 데 일조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프라이드와 트렌드는 그렇게 누군가의 상상력과 의지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명문구단들은 대개 그 상상력과 의지, 실행력을 가지고 있다. /SSG 담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