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상대 선수들을 연파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부담은 없었는데 올라갈수록 간절함이 생겼어요. 결승에서는 모든 걸 쏟아부었습니다"
한국 테니스의 간판 권순우(26, 당진시청, 세계 랭킹 84위)가 한국 테니스 역사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권순우는 14일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2차 대회 단식 결승전에서 '백전노장' 로베르토 바티스타 아굿(34, 스페인, 세계 랭킹 26위)을 2시간 42분간 진행된 접전 끝에 2-1(6-4 3-6 7-6<7-4>)로 이겼다.
그는 지난 2021년 9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오픈에서 ATP 투어 첫 우승을 차지했다. 1년 4개월 만에 결승에 오른 권순우는 코트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바티스타 아굿을 만났다.
아굿은 2019년 윔블던에서 4강까지 올랐다. 그해 호주오픈에서는 8강에 진출했고 2016년 마스터스 1000시리즈 상하이 마스터스에서는 준우승했다. 2019년 11월에는 세계 랭킹 9위까지 이름을 올렸다.
2019년 11월, 세계 랭킹 9위까지 올랐던 아굿은 '무결점' 노바크 조코비치(35, 세르비아, 세계 랭킹 5위)를 3번이나 이긴 경력도 있다.
반면 권순우는 이번 대회를 예선부터 시작했다. 2회전에서는 토마시 마하치(체코, 세계 랭킹 115위)에게 1-2(5-7 6-3 3-6)로 져 본선 진출이 불투명했다. 그러나 몇몇 선수가 본선 출전을 포기하며 '러키 루저'로 본선에 합류하는 행운을 얻었다.
본선 진출권을 거머쥔 권순우는 이후 승승장구했다. 특히 16강전에서는 세계 랭킹 15위 파블로 카레뇨 부스타(31, 스페인)를 잡는 이변도 일으켰다.
결승에 오르며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위해 단 1승만 남겨 놓은 권순우는 지난해와 다른 경기력을 선보였다.
2021년 아스타나 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뒤 권순우는 '2회전 징크스'에 시달렸다. 이해 10월 파리바 오픈 1회전부터 지난해 9월 코리아오픈까지 단식 2회전 통과에 실패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아스타나 오픈 우승 포인트가 사라지면서 세계 랭킹이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라쿠텐 일본 오픈 4강에 오르며 자존심을 회복했지만 남은 대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시즌을 마친 권순우는 '껍질'을 벗기 위해 머리를 짧게 깎았다. 체력 보완에 집중했고 약점 가운데 하나인 서브 보완에 힘을 쏟았다.
올해 ATP 투어 개막전인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1차 대회에서 권순우는 예선 2연승을 거두며 본선에 올랐다. 그러나 1회전에서 잭 드레이퍼(21, 영국, 세계 랭킹 40위)에게 패했다.
연이어 나선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2차 대회에서 권순우는 한층 성장한 기량을 과시했다. 이 대회에서 껍질을 벗고 새롭게 날아오른 그는 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이번 대회 결승전에서 권순우는 최고 시속 210km의 서브로 바티스타 아굿을 위협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동안 권순우는 그라운드 스트로크 싸움에 이은 포핸드 역습으로 상대를 공략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강서브로 상대를 흔든 뒤 장기인 포핸드로 득점을 올리는 적극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결승전에서 권순우의 첫 서브 득점 성공률은 79%를 기록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두 번째 서브 득점 성공률이다. 지난해 권순우는 두 번째 서브는 안정적으로 때리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 업그레이드된 서브를 장착하면서 두 번째 서브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결승전에서 나타난 권순우의 두 번째 서브 득점 성공률은 51%였다. 44%에 그친 바티스타 아굿을 압도하는 기록이다. 또한 매 경기 위너 싸움에서 상대방을 위협하며 공격적인 경기를 펼쳤다.
권순우는 기본 베이스인 탄탄한 수비에 강해진 서브와 포핸드를 장착했다.
또한 지난해 아쉬움으로 남았던 '위기관리 능력'도 발전했다. 16강전에서 그는 카레뇨 부스타와 2시간 20분이 넘는 접전을 펼쳤다. 또한 결승전은 2시간 42분간 진행됐다. 장시간 진행되는 혈투에서 권순우는 아쉬운 범실로 무너질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2차 대회에서는 승부처에서 상대방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결승을 마친 뒤 인터뷰를 가진 권순우는 ATP 홈페이지에 "상대방을 연파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부담은 없었는데 올라갈수록 간절함이 생기더라. 그리고 결승에서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한층 강해진 서브에 대해서는 "스피드를 위해 힘을 빼고 코스를 보면서 성공률을 높이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힘이 실린 거 같았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 정상에 오른 권순우는 한국 테니스 선수로는 처음으로 ATP 투어에서 2회 우승에 성공했다. 이형택 오리온 테니스단 감독은 지난 2003년 1월 아디다스 인터내셔널에서 한 차례 우승했다. 이후 몇몇 선수가 ATP 투어에 도전했지만 세계 남자 테니스의 벽은 높았다.
또한 값진 기록은 ATP 투어 사상 10번째로 '러키 루저 우승자'가 됐다는 점이다. 이번 대회에서 권순우는 예선 2경기를 포함해 총 7경기를 뛰었다. 러키 루저가 대회 최종 승자가 되기는 매우 어렵다. 다른 선수보다 많은 시간 코트에서 뛴 것은 물론 행운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권순우는 역대 10명 밖에 없었던 '러키 루저 우승자'가 됐다. 올해 초 '기적의 사나이'가 된 그는 멜버른으로 이동해 16일 개막하는 호주오픈 본선에 나선다.
권순우는 호주오픈 1회전에서 크리스토퍼 유뱅크스(미국, 세계 랭킹 123위)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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