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알리, 벌처럼 쏘고 나비처럼 날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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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믿음이 부족하므로 도전하길 두려워하는바, 나는 스스로를 믿는다."
바닥까지 추락한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던 자. 수많은 이들이 아니라고 말해도 자신의 신념을 믿으며 끝까지 싸운 자.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미국)는 단지 뛰어난 복서가 아니라 세계 스포츠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인물이다. 거친 사각의 링에서 그는 뛰어난 파이터이자 화려한 언변가였다. 링 밖으로 내려오면 미국 인종차별 문제에 독설을 날리고 프로모터들의 놀음에 저항하는 반항아였다.
1942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였다. 자신의 자전거를 훔쳐간 도둑을 혼내 주기 위해 체육관 문을 두들겼다. 12살 소년은 1960년 로마 올림픽 복싱 라이트헤비급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191cm의 거구였던 그는 큰 몸집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눈부신 스텝으로 링을 돈 뒤 왼손 잽에 이어 나오는 송곳 같은 라이트 스트레이트는 그의 전매특허였다. 뛰어난 테크닉과 영리한 경기 운영으로 승승장구한 그는 마침내 세계 챔피언에 오를 기회를 잡는다.
1960년대 초반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로 불리던 이는 소니 리스턴(미국)이었다. 엄청난 펀치력을 가진 그는 쟁쟁한 도전자들을 모두 경기 초반 쓰러뜨렸다. 누구나 두려워했던 챔피언인 리스턴을 상대한 알리는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거침없는 독설로 리스턴을 공격했다.

알리의 심리전은 성공했다. 1964년 2월 25일 열린 WBA(세계복싱협회) WBC(세계복싱평의회) 세계 헤비급 통합 타이틀전에서 알리는 리스턴에게 도전했다. 그리고 7회 TKO승을 거뒀다. 경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알리의 무수한 잔매를 맞은 리스턴은 7회 시작 종이 울렸지만 마우스피스를 내뱉었다.
당시 캐시어스 클레이였던 알리는 흑인 인권 운동가 말콤 엑스(미국)를 추종했다. 이슬람 국가운동 지도자인 엘리야 무하마드를 만난 클레이는 무하마드 알리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알리는 베트남전 참전을 거부했다. 당시 미국 사회는 알리를 향해 수많은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알리는 끝까지 베트남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챔피언 타이틀을 잃었다. 또한 이슬람계에서는 종단에서 제명됐다.
최고의 자리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알리는 라이벌 조 프레이저(미국)와 펼친 2번의 경기로 재기했다. 그리고 1974년 10월 아프리카 자이르의 킨샤샤에서 열린 WBA WBC 세계 헤비급 통합타이틀전에서 챔피언 조지 포먼과 맞붙는다.
포먼은 알리가 힘겹게 상대한 프레이저를 가볍게 KO로 이긴 상대였다. 리스턴 이상의 가공할 만한 펀치력을 가졌던 포먼에게 알리는 적수가 아닌 듯 보였다.
그러나 알리는 포먼과 정면 승부를 피했고 7회까지 철저하게 수비에 집중했다. 단단한 가드로 얼굴을 감싼 알리를 향해 포먼은 펀치를 계속 날렸다. 그러나 충격을 줄 수 있는 유효타는 좀처럼 성공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포먼의 힘은 떨어졌고 알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8회전에서 알리는 기습적인 좌우 스트레이트 연타로 193cm의 거구인 포먼을 링바닥에 쓰러뜨린다. '켄샤샤의 기적'을 현실로 바꾼 알리는 헤비급 챔피언벨트를 탈환한다.
1970년대 후반까지 '제 2의 전성기'를 이어 간 알리는 1981년 트레버 버빅과 경기를 끝으로 링을 떠난다. 그리고 3년 뒤인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는다. 화려했던 선수 생활과는 대조적으로 은퇴한 알리의 삶은 고단했다.

파킨슨병에 걸린 그는 현란한 입담을 잃었고 정상적인 생활도 어려워진다. 그러나 자신이 복서의 길을 걸었던 삶을 후회하지 않았다. 복싱으로 병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때 알리는 인터뷰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는 자신과 같이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돕는 데 애썼다. 특별한 재능과 뛰어난 기량을 가진 후배들이 나오면 링을 찾아 이들을 격려했다.
알리는 4일 애리조나주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다 숨을 거뒀다. 그가 남겼던 많은 명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말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쏴라'다. 링과 부당한 사회에 따가운 벌침을 쏜 그는 74살에 나비처럼 하늘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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