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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은퇴 이신바예바, IOC 위원으로서 러시아 스포츠 불공정 처사 막겠다?

작성일: 2016.08.20 11:25 신명철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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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바예바는 은퇴 기자회견에서 국제육상경기연맹을 비난하는 등 IOC 위원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
[스포티비뉴스 올림픽특별취재팀=신명철 편집국장]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오랜 기간 세계 최고 선수로 활약한 옐레나 이신바예바(34, 러시아)가 20일(한국 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메인 프레스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 선수 생활을 끝내려고 한다. 여기까지가 내 선수 생명"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제 장대를 손에서 놓으려고 한다. 그동안 열심히 훈련하고 내 한계를 극복한 점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신바예바는 은퇴 발표에 앞서 한국의 유승민(탁구), 독일의 브리타 하이데만(펜싱), 헝가리의 다니엘 지우르타(수영)와 함께 임기 8년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 위원으로 뽑혔다. 이신바예바는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선수 위원으로 있는 동안 러시아가 국제 스포츠계에서 불공정한 처사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도핑 파문으로 러시아 육상 선수들이 대거 올림픽 출전이 금지된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이 분명했다. 이신바예바는 러시아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가로막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에 대해 "나는 그들을 용서할 것이지만 신이 그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IAFF를 대 놓고 비난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신바예바는 IOC 위원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 온 IOC라는 조직과 IOC 위원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데서 비롯된 어설픈 주장이다.

IOC와 IOC 위원의 특별한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1894년 6월 23일 파리에서 열린 국제 스포츠 회의는 근대 올림픽의 창시와 이를 관장하는 조직인 IOC의 결성 그리고 제 1회 대회를 고대 올림픽의 나라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1896년에 열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IOC는 올림픽에 정치가 끼어들지 않도록 무척 신경을 썼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은 정치가나 정치 조직을 매우 싫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부터 올림픽을 각국 정부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만들어 모든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지킬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자신이 프랑스의 군인 가계 귀족(남작)이기도 했거니와 IOC를 조직할 때 작위를 지닌 귀족들을 위원으로 속속 받아들였다.

위원들의 지위가 두드러지면 두드러질수록, 또 존경을 받으면 받을수록 정치가들이 간섭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귀족 IOC 위원이 그리 많지 않다. 영국의 앤 공주, 모나코의 앨버트 2세 왕자 등 손에 꼽을 정도가 됐다. 이들 귀족 IOC 위원 가운데 몇몇은 올림피언이기도 하다. 앤 공주는 승마, 앨버트 왕자는 봅슬레이 종목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IOC는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대한체육회·KOC나 미국올림픽위원회·USOC 같은 조직)가 있는 나라나 지역에 사는 주민들 가운데 프랑스어나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을 위원으로 선출하지만 IOC 위원은 IOC에 대해 그 나라나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나 지역에 대한 IOC의 대표다. 말하자면 IOC가 파견한 대사(大使)인 것이다. 다시 한번 확인하면 IOC 위원은 NOC의 대표자가 아니며 IOC의 대표자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올림픽 무대에 등장한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출신의 IOC 위원들은 IOC가 NOC 대표로 구성돼 있지 않은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1973년 불가리아 바르나에서 열린 올림픽 콩그레스에서 IOC 부위원장인 소련의 콘스탄틴 안드레아노프는 “IOC는 모든 국가의 NOC 대표로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해 IOC 위원 경력이 20년인데도 IOC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체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을 이어받은 나라가 러시아다.

IOC 위원의 임무는 자신이 소속한 나라 또는 지역에 올림픽 이념을 올바르게 보급하고 고양하며 스포츠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IOC 대사’로서 하는 일들이다.

하나의 사례를 보자.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결정된 제 103차 IOC 총회(1994년 9월 4일 프랑스 파리)를 앞뒤로 치열한 방해 작업이 벌어졌다. ‘유사 종목은 올림픽 종목이 될 수 없다’는 규정을 들고 나온 가라테, 북한 주도의 국제태권도연맹 등은 물론 일찌감치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유도나 중국 우슈가 이들과 행동을 같이했다.

그때 북한의 IOC 위원인 장웅이 북한의 NOC인 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파리에 와 있었지만 방해 공작에 노골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은 것으로 한국 측 관계자들은 파악하고 있었다. 장웅은 북한을 대표하는 IOC 위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IOC 위원 모두 태권도의 손을 들어 줬고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올림픽 종목으로 치러졌다.

IOC 위원의 활동 내용과 관련해 비교적 가까운 사례도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 김현우의 16강전에서 나온 득점 판정 정도를 빼면 한국 선수단이 심판 판정과 관련해 크게 피해를 본 사례가 없다. 그러나 직전 대회인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은 판정 문제와 관련한 피해를 204개 출전국 가운데 유독 많이 봤다.

대회 초반부터 박태환(수영), 조준호(유도), 신아람(펜싱) 등이 줄줄이 판정 문제로 손해를 보거나 경기력에 일정 수준 영향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분들(IOC 위원 지칭)은 그곳(런던)에서 도대체 뭘 하고 계셨냐”는 말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국회에서도 이런 비난이 이어졌다. 억울하기도 하고 마음이 급하기도 했겠지만 ‘그분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엉뚱한 과녁에 쏜 것이다. 한국인 IOC 위원은 국적이 한국이지 한국을 대표해 IOC 위원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다.

이신바예바도 국적만 러시아지 러시아를 대표해 IOC 위원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다. 그가 러시아 스포츠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혹시 그의 임기 동안 러시아의 어느 도시가 1980년 모스크바 대회 이후 오랜만에 여름철 올림픽 유치에 나설 경우 지지하는 표를 던지는 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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