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투손(미 애리조나주), 김태우 기자] 경기 전 국민 의례가 시작된다. 애국가가 울려 퍼진다. 모자를 가슴에 대고 고개를 숙인 임병욱(24·키움)은 애국가가 끝나자마자 스스로 주문을 건다. “오늘도 다치지 말자, 오늘도 아프지 말자”
임병욱은 리그를 대표하는 이른바 ‘툴가이’다. 빠른 발, 넓은 수비 범위, 강한 어깨, 언제든지 담장을 넘길 힘을 갖췄다. 누가 봐도 매력적인 선수다. 하지만 그 툴가이는 지금껏 자신의 재능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 기술적으로 모자란 부분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부상이 문제였다. 만신창이의 몸으로 리그의 문턱을 넘기는 역부족이었다. 호락호락한 무대가 아니었다.
그런 강박관념이 ‘애국가 루틴’도 만들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스스로 다짐을 했다. “오늘은 꼭 좋은 경기를 해야지”가 아닌, “오늘도 다치지 말자”만 생각했다. 그만큼 부상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다. 임병욱은 “동기인 (김)하성도 잘하고 있고, 후배인 (이)정후도 잘하고 있었다. 정말 경기에 뛰고 싶었다. 하지만 아프면 내가 잘하든 그렇지 않든 아예 경기에 나갈 수 없는 것”이라고 어려웠던 시기를 담담하게 떠올렸다.
그 기도를 하늘이 들어준 것일까. 다행히 지난해는 크게 아픈 곳이 없었다. 그러자 출전 시간이 늘어났고, 늘어난 출전 시간은 임병욱이 가지고 있는 그릇을 충분히 보여줬다. 공·수·주에서 매력이 넘치는 선수임을 증명했다. 임병욱은 지난해 134경기에서 타율 2할9푼3리, 13홈런, 60타점, 16도루를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리그 정상급 평가를 받았다. 관계자들은 “3할에 20-20을 할 수 있는 재능”이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는다.

냉정하게 1년 성적을 냈을 뿐이다. 상승세를 이어가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겨울에는 큰 결단도 내렸다. 덕 레타 타격코치 수업을 받기 위해 미국에 먼저 들어왔다. 고액 연봉자들도 부담스러워할 만한 비싼 수업료지만, 임병욱은 과감했다. 임병욱은 “뭐가 부족해서 갔다기보다는 나한테 뭔가 투자를 하고 싶었다. 멀리 봤을 때 결코 큰돈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미국에 먼저 들어왔다”면서 “심리적 안정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수비와 주루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임병욱의 다음 시선은 타격으로 향한다. 미국에 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임병욱은 “편하게 치는 것, 힘을 빼고 치는 것이 핵심이지 않나 싶다.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다. 이것만 확실하게 얻고 갔으면 좋겠다”면서 “타율·홈런·삼진·볼넷 등 전체적으로 줄여야 할 것은 줄고, 늘어야 할 것은 늘었으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5툴 플레이어의 진가 과시는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