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두산 베어스 외국인 타자가 김태형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올해 새로 영입한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가 주인공. 페르난데스는 일반적으로 KBO 리그에서 선호하는 4번 타자감은 아니다. 대신 나쁜 공을 고르는 눈이 좋아 상대 투수와 싸움에서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김 감독은 26일 잠실 키움 히어로즈전을 앞두고 페르난데스의 타순을 조정했다. 개막 2연전에서 6번 타자로 기용했던 페르난데스를 2번까지 앞당겼다. 박건우-김재환-오재일로 이어지는 중심 타선의 타격감이 괜찮아 앞에 주자를 한 명이라도 더 내보내자는 계산이었다.
계산한 대로 경기가 풀렸다. 1-1로 맞선 7회 1사 만루에 페르난데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페르난데스는 볼카운트 1-2로 몰리고도 침착하게 밀어내기 볼넷을 얻었다. 4, 5구째 볼을 참고, 6구째는 걷어낸 뒤 7구째 볼을 지켜봤다. 2-1 역전.
페르난데스는 밀어내기 볼넷 상황과 관련해 "결정적인 순간 주자가 있어 최대한 좋은 공을 치려고 했다"고 밝혔다.
페르난데스가 걸어 나가면서 1사 만루 기회가 중심 타선까지 연결됐다. 박건우가 우익수 앞 2타점 적시타를 날렸고, 김재환이 우중월 3점포로 쐐기를 박았다. 개막 후 가장 시원한 공격 전개였다.
정경배 두산 타격 코치는 "페르난데스의 선구안이 워낙 좋다. 한 경기에 한번씩은 안타를 못 쳐도 볼넷 한두 개 정도는 얻어서 살아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감독님께서 페르난데스를 (중심 타선) 앞에 넣자고 하셨는데, 계산이 맞았다"고 설명했다.
페르난데스는 아직 다 보여주지 못했다고 강조한다. 한국 투수들에게 빨리 익숙해져 자기 기량을 더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일단 선구안으로 눈도장은 확실히 찍었다. 페르난데스는 밥상 차리는 외국인 타자로 두산에서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