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악질경찰'의 이정범 감독.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영화 '악질경찰'은 장르 상업영화에 세월호를 끌어들인 문제작이다. 주인공은 나쁜 형사 조필호(이선균)다. 범죄자나 다름없는 이 나쁜 형사는 세월호 참사로 친굴을 잃은 소녀 미나(전소니)를 만나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부끄러움을 고백할 새도 없이 헤어진 소녀 대신 그는 일그러진 세상을 향해 폭발한다. 세월호라는 아물지 않는 상처와 정제되지 않은 분노를 범죄물 안에 담아낸 이는 바로 '열혈남아' '아저씨' '우는 남자'의 감독 이정범. 5년 만에 돌아와 '악질경찰'이라는 문제작을 내놓은 이정범 감독은 이 어둡고 비틀린 사내의 이야기에 순전한 마음을 담아낸 듯했다. 그가 말하는 '악질경찰'의 진심. 

※아래 내용에는 영화 '악질경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는 남자' 이후 5년 만이다.

"별명이 월드컵 감독이다. 취재하고 캐스팅하고 만들어 개봉하기까지 빨리 해도 4년 주기인 것 같다. 후반작업에다 사연이 있어 개봉까지 시간이 더 걸렸다."

-사연이라 함은?

"캐스팅이 힘들었다. 영화가 함의하고 있는 것이 너무 세다보니 오래 걸렸다. 잘보고 바로 출연하겠다고 하신 분이 있던 반면에 세월호만 뺄 수 없느냐 하는 분도 있었다. 두려움과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도 편집하는 데 배는 더 걸렸다. 이 신을 넣느냐 빼느냐, 톤앤매너를 조절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영화를 잘못 이해하신 분들의 비난과 쓴소리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래도 해야할 건 해야 하니까.

워너브러더스는 한국계 기업이 아니니까 결정이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이쪽에서 투자를 받았다. 캐스팅이 좀 힘들었는데, 제일 먼저 캐스팅된 건 이선균이다. 거기까지가 한 1년, 워낙 오래 걸렸다. 전소니는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이선균 이후에 케미스트리를 생각해야 했다."

-이선균이라 달라진 점이 있나.

"이선균이라 달라진 건 없다. 더 풍부해졌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아닌 척 하지만 서세한 사람이다. 17년 전 졸업작품 '굿바이 데이'를 함께했는데 그때는 더 예민했다. 그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인물이 '싫어'라고 하는데 얼굴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 않나. 그런 걸 표현하려면 배우가 예민하고 감독이 왜 이 시나리오를 썼는지 알아야 한다. 그걸 아는 배우다. '현장에 다른 얼굴로 왔으면 좋겠다, 끝까지 파헤치면 좋겠다'고 했다. 괴롭혔던 것 같다."

-이선균과는 워낙 인연이 깊다.

"이선균은 학창시절부터 봤는데, 예민하고 섬세하다. 졸업작품에서는 사채업자 똘마니인데, 정신지체를 가진 친구를 케어하는 캐릭터였다. 역시 감정의 진폭이 컸다. 그 당시 선균도 저도 뭘 히야하는지 모르겠고 불안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아픈 시절과 어려움을 공유하다보니까, 그 이후 만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감수성을 봤던 것 같다."

▲ 영화 '악질경찰'의 이정범 감독.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진격의 거인'이라든지 표현을 보면 되려 빨리 개봉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2015년 11월 초고가 나왔다.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게 문제가 되는 시절이기도 했고 다들 힘들어 했다.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다 보니까 제작기획과 실제 프로덕션은 괴리가 있다. '진격의 거인'은 실제 에피소드에서 온 대사다. 세월호 참사로 친구를 잃은 아이 하나가 자기가 진격의 거인이 돼 건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세월호 인양이 되지 않았을 때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취재 때도 그 읽을 겪은 분들을 만나뵙는 건 최대한 지양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나 사건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다큐 시각이면 모를까 장르물 극영화를 찍는 입장에선 두렵기도 했고 그러면 안된다고 느꼈다. 하지만 단원고, 기념 유원지도 가 보고 책도 많이 봤다. 어떻게 우시고 서로를 보고 위로하고 위안하시는지도."

-남아있는 친구를 다뤘다는 점이 독특하다.

"시작한 계기다. 제가 단원고를 갔을 때 언론에서 다루는 세월호와 제가 가서 본 것이 전혀 달랐다. 의자와 책상이 있는 교실에 아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걸 목도하면서 뭔가 크게 잘못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서 시작됐다. 바다에서 친구들을 잃고 돌아온 아이가 있지 않나, 저는 그 아이들이 걱정됐다. 어느 아이는 물이 두려워 샤워도 못한다더라. 그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자면? 미안하다. '너네 잘못이 아니야. 용서해줘. 살아줬으면 좋겠어' 이런 이야기가 아닐까. 우리 엔딩을 보면서 그 친구들이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어른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 했다."

-미나는 죽은 친구의 '추리닝'을 입는다. 결국 두 사람의 피를 그 옷에 입히고 만다. 그래야만 했나.

"시나리오 쓰고 연출하는 단계부터 느낀 질문이었다. 그렇게 느낀 관객이 있을 수 있다.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다면, 안산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알아보는 게 되게 쉽다 - 나이 든 아버지가 10대 옷을 입고 있으면 다 유가족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시위나 집회 때 그분들이 다 아이 옷을 입고 오신다. 저항의 의미일 수 있다. 딸 아이 냄새가 너무 그리워서 신발과 옷을 입고 하염없이 걷는다는 분도 계셨다. 그것이 그분들 상처의 치유 방법인 것이다. 미나가 '추리닝'을 입는 건 거기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친한 친구를 떠나보낸 아이가 아픔을 간직하는 방법이라고 설정했다. 그리고 관객들이 살아있는 미나가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아이처럼 느끼길 바랐다.

그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신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소니양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까지도 그 대사가 옿은지 그른지, 전날까지도 치열하게 이야기했다. 저는 이 영화에서 유일한 어른이 미나라고 생각한다. 자기보다 동생인 소희라는 아이의 고통을 언니처럼 챙겨주려 한 것도 미나고, 남의 돈이긴 하지만 그 돈을 잠수사에게 베푼 것도 미나다. 그 죽음이 미나 스스로의 어른스러운 판단으로 느껴지길 바랐다. 그리고 우리가 아파하길 바랐다. 미나가 상처받은 어른임을 표현하고 싶어서 복선과 암시를 넣었다. 소니양도 힘들었지만 저도 힘들었던 것 같다. 계속 이렇게 말씀드려도 불편해하는 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답변을 드린다. 공론화되는 것이 이 영화를 찍은 목적이었다고."

-전작에서도 그렇고 여성이, 특히 소녀가 나쁜 남자들의 각성을 위한 촉매재로 쓰인다는 지적이 공통되게 나온다.

"제 전작들이 그랬기 때문에 부정할 수는 없다. 제 사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할머니, 엄마 등 제가 성장하고 성숙할 때마다 영향을 미친 사적인 일들이 있다. '열혈남아'의 나문희, '우는 남자'의 모경 등이 모두 제게 깊숙이 들어와 있다. 여성의 쓰임의 양날의 검이라는 걸 잘 안다. 이 영화에서만큼은 다른 것 같다. '쓰임이라는 말 자체가 다르다. 같게 보인다면 제가 잘못 연구하고 표현했다는 말이나 같다. 미나만이 유일한 어른이었다. 그것만이 이 영화에서 제가 미나를 다룬 유일한 카테고리였다."

▲ 영화 '악질경찰'의 이정범 감독.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이선균이라서 정말 나쁜 놈이 나쁜 놈이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악질인데 악질이 아닌 것도 같다. '나는 경찰 무서워서 경찰 된 사람이야' 그러지 않나. 사실 겁보다. 지질하기도 하고. 전문털이범이 본인 오더로 창고에 갔다가 죽었을 때 그가 처음 흔들린다. 'XX놈아 사람이 죽었는데' 하고. 사실 진짜 못된 놈이다. 이기적인데 자기 몸은 극악으로 챙긴다. 잘 먹고 살겠다고 종류별로 영양제를 챙겨먹는다. 그런 자식이 나중에 총알을 챙겨먹는 게 중요하다.항문은 통해 나오는 총알이 누구가의 머리에 박힌다는 게 중요했다. 그가 무대에 올랐을 때 복장은 팬티에 런닝이다. 멋있게 슈트를 입고 총을 겨누는 영화가 아니다. 처절함과 징글징글함이 필요했고 그래서 암시가 필요했다."

-그 부분이 '아저씨'나 '우는 남자'와 가장 다르게 보이는 점인데.

"'열혈남아' 때는 순수하게 결핍된 남자의 징글징글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해서 그 다음에는 상업적인 배려가 중요했다. ('아저씨'는) 장르적 쾌감을 취했다고 '우는 남자'는 느와르의 므낌을 뽑아내고 싶었다. '악질경찰'은 애시당초 장르물에서 발생한 영화가 아니다. 아픔에서 시작했기에 궤가 다르다. 제게 분기점같은 영화다. 스타일리시한 남자 영화를 기본적으로 추구해 왔다면, 지금은 그것이 아니어도 되겠다 싶다.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할까. 조금씩 저도 변해가고 있다."

-만천하에 드러난 넓은 공간에서 조필호가 상대를 처단하는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구상했나.

"다들 안 쏠 거라고 생각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제 욕망 아래에서 응징하는 걸 보고 싶어 쓴 거다. 많은 분들이 깜찍 놀라기도 했지만 통쾌하다고도 했다. 다들 '법적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한다. 저는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렇지 않고 정말 쏴버리고 싶었다."

-미나 역 신예 전소니도 돋보인다.

"배우들에게 다 고맙지만 미나에게 제일 감사한다. 처음엔 소니씨가 거절을 했다. 학생단편에서 처음 뫘다. 방금 엄마와 싸우고 집 나온 아이 같은 얼굴이었는데, 반항적인 얼굴에 누구보다 여린 속내를 감춘 표정이었다. '미나다' 했다. 너무 아픈 배역이라 신인배우로 자기가 해낼 수 없 역할이라고 하더라. 폐를 끼칠 것 같다며 거절을 하는데 저는 사실 그 거절이 너무 좋았다. 이 배우가 연기하겠다는 이기적 욕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구나, 본인의 마음으로 내 책을 읽어줬구나 싶어서. 안 밉고 더 호감이 갔다. 그러고는 오디션을 진행했는데, 그러고 약 2달이 지나 혹시 정해졌냐고 전화가 왔다. 다시 복기하고 시나리오를 봤는데 조금 이해가 될 것 같다고, 기회를 주신다면 해보고 싶다고. 그 때가 이선균이 결정되고 난 다음이다. 약속을 잡았는데 연출부 한 명이 전소니를 처음 본 거다. 누군지도 모르고 들어와서 그랬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밖에 '미나'가 와 있다'고. 재밌는 일이다. 결국 결대로 가는 것 같다. 미나의 마지막 신이 제일 힘들었다. 또 제일 감사하다."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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