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가 끝난 뒤. 두산 베어스 안방마님 박세혁은 더그아웃 한 쪽에 있는 벤치에 앉는다. 지난해까지는 양의지(NC 다이노스)가 경기 뒤 앉아 장비를 풀렀던 자리다. 박세혁은 장비를 푼 뒤 검은색 노트를 펼치고 펜을 잡는다. 곰곰이 생각하며 한 줄 한 줄 적는 작업이 끝나면 장비를 챙겨 라커룸으로 향한다.
박세혁의 필기 노트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박세혁은 "볼 배합을 어떻게 했는지, 상대 타자를 어떻게 상대했는지 다시 되돌아볼 때 쓴다. 내가 경기에서 순간 느낀 걸 잊지 않기 위해서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걸 빨리 적어야 복기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업 포수로 생활할 때부터 필기 노트는 계속 썼다. 노트에 적는 내용은 올해부터 조금 달라졌다. 박세혁은 "지난해는 백업이니까 경기 도중에 (양)의지 형이 하는 걸 보고 기억하고 싶은 걸 썼다. 올해는 경기 때 내가 직접 한 내용을 쓰면서 '어제는 이렇게 했으니까 오늘은 이런 식으로 가봐야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적어둔 내용을 한번씩 훑어봐야 머리에 남는다"고 이야기했다.
노트를 채워 나갈 때마다 투수와 신뢰가 쌓인다고 믿는다. 박세혁은 "투수들에게 믿음을 주려면 내가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력 덕분인지 두산 투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꼭 박세혁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다. 유희관과 이영하는 각각 2일과 3일 kt 위즈전에서 시즌 첫 승을 챙긴 뒤 "박세혁의 리드가 큰 힘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훌륭히 주전 포수의 임무를 해내고 있지만, 여전히 보완할 게 많다고 했다. 박세혁은 "시즌을 치르면서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포수는 앞에서 티를 내지 않고 엄마 노릇을 해야 한다. 지금 부족한 건 혼자 생각하고, 내가 해내야 한다. 이제 주전으로는 첫해니까 뭐든지 해보려 한다. 지금은 팀 승리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몸은 힘들어도 하루하루 경기에 나가는 순간이 행복하다고 했다. 박세혁은 "힘들어도 경기를 뛸 때 설렘과 벅찬 마음이 더 크다. 처음으로 찾아온 기회고, 내가 주전들과 같이 경기에 뛰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야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박세혁은 3일 kt전에서 방망이까지 불을 붙였다. 0-0으로 맞선 2회 우익선상으로 빠지는 2타점 적시 2루타로 결승타를 장식했다. 두산은 5-1 승리로 5연승을 질주했다. 박세혁은 경기 뒤 "지난해는 결승타를 친 기억이 없다. 결정적일 때 친 적이 없는데, 결승타를 쳐서 기분이 좋았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