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여자 축구 대표팀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춘천, 김도곤 기자] 벤치가 넘어가는 장면, 축구장에서 처음 봤다.

한국 여자 축구 대표팀은 9일 춘천송암스포츠타운에서 아이슬란드와 두 번째 평가전을 가졌다. 결과는 1-1 무승부, 지난 6일 용인에서 벌인 첫 번째 평가전(2-3 패)보다 결과와 내용 모두 좋았다. 승리가 없었던 건 아쉬웠지만 짧은 시간에 경기력이 좋아진 것이 눈에 보였다.

비가 올 듯 말듯 한 날씨, 경기장 도착 시간은 오후였지만 꽤 쌀쌀했다. 킥오프 전 갑자기 바람까지 불었다. 강풍에 설치해 놓은 아이슬란드 벤치가 뒤로 넘어갔다. 관계자들이 황급히 달려가 다시 세웠다. '그래도 비는 오지마라'라는 심정으로 일했는데 비까지 오기 시작했고, 후반 들어서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어찌보면 세계 강호와 대결은 앞둔 한국도 춘천에 분 비바람 못지 않은 강풍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오는 6월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에 참가한다. 상대가 만만치 않다. 개최국 프랑스, 유럽의 강호 노르웨이, 아프라키 강호 나이지리아다. 모두 한 실력하는 상대들이다.

이번 아이슬란드와 평가전은 프랑스, 노르웨이, 그중에서도 노르웨이에 대비한 이뤄진 평가전이다. 한국 축구의 장점이 충분히 나타났다. 빠른 스피드로 아이슬란드 수비를 흔들었다. 상대의 장신을 감안해 낮게 올리는 크로스도 위력적이었고, 이 크로스 활용을 위해 측면으로 전개하는 공격도 효과를 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시에 약점도 함께 드러났다.

▲ 강풍에 뒤로 넘어간 벤치 ⓒ 김도곤 기자
▲ 수비 불안 우려가 현실이 됐다. ⓒ 연합뉴스
◆ 우려가 현실이 된 수비 불안

이번 대표팀의 불안요소 중 하나로 수비가 꼽혔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번에 아이슬란드에게 준 4골이 전부 수비 불안으로 나왔다. 역습 한 번에 골을 하나씩 줬다. 1차전은 실수로 빌미를 줘 허용한 실점이다.

수비 불안 지적이 많으니 선수들의 마음도 편하지 않다. 소속팀 인천현대제철에서는 공격수로 뛰지만 대표팀에서는 왼쪽 수비수로 뛰는 장슬기는 "수비가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니 솔직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금보다 더 똘똥 뭉쳐 월드컵에서는 무실점 경기를 하겠다"고 했다.

윤덕여 감독은 묘수를 썼다. 1차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인 조소현(웨스트햄)을 중앙 수비로 내렸다. 하지만 전반에만 두 골을 허용했고, 전반 막판에 수비수 정영아를 투입하고 조소현을 원래 위치로 올렸다. 다행히 이후 경기력이 올라왔고 2-2 동점까지 만들었다.

A매치 출장 100경기가 넘는 조소현의 경험과 무게감을 활용해 수비 안정을 꾀하였으나 실패했다. 결국 윤덕여 감독은 조소현을 원래 위치에 올렸고, 2차전에서는 처음부터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게 했다.

선수의 포지션 변동, 윤덕여 감독도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니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1차전 후 "감독으로서 아쉽다. 조소현 선수의 경험으로 수비 안정을 하기 위해 중앙 수비수로 기용했는데 이는 개인적으로도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수비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얼굴 발탁 가능성이 있다. 윤덕여 감독은 "곧 WK리그가 개막한다. 경기를 찾아 볼 것이며 새로운 선수 몇 명은 머릿속에 있다"고 밝혔다.

▲ 고심에 빠진 윤덕여 감독(가운데) ⓒ 연합뉴스
◆ 가장 고심이 된 골키퍼

수비 못지않게 골키퍼도 윤덕여 감독의 머리를 괴롭히다. "가장 고심한 부분이 골키퍼다"라고 말할 정도다.

최근 대표팀 주전 골키퍼로 활약한 선수는 윤영글(한수원)이다. 하지만 부상으로 월드컵에 뛸 수 없게 됐고, 윤덕여 감독은 베테랑 김정미(현대제철)를 다시 불렀다. 김정미는 1984년생, 체력 소모가 다른 포지션에 비해 비교적 덜한 골키퍼라는 점을 감안해도 적지 않은 나이다.

2차전에서 약간 실수가 있긴 했지만 강가애가 좋은 경기를 했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강가애가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고, 윤덕여 감독도 이 생각으로 2차전에 선발 출전시켰다. 윤덕여 감독은 "김정미는 오랜 시간 대표팀에 헌신한 선수다. 강가애, 정보람이 성장해야 하고, 저로서는 그들에게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싶다. 이번 경기에서 자신감을 쌓았길 바라고 프랑스에서 김정미와 종은 경기를 보여줄 것이란 기대가 있다"며 희망을 가졌다. 윤영글은 부상에서 당장 회복할 수 없고, 수비와 달리 포지션 변경이니 뭐니 쓸 수 있는 방법도 없기 때문에 현재 선수층에서 골키퍼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 2차전에서 동점골을 넣은 지소연 ⓒ 연합뉴스
◆ 지소연 의존도

아이슬란드와 평가전을 보면 한국의 중심은 누가 뭐라해도 지소연(첼시)이었다. 공격의 시작은 물론, 과정, 마무리에도 지소연이 관여했다. 2차전의 경우 더욱 두드러졌는데 지소연이 하프라인 밑까지 깊숙히 내려와 공을 받아 공격을 시작했다. 확실히 지소연은 에이스의 면모를 과시했다.

에이스가 있다는 건 좋은 것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상대의 집중 견제를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이는 당연히 윤덕여 감독도 생각하고 있다. "상대도 우리를 다 분석했을 것이다"라는 말로 지소연에 의존에 대한 대책 마련에 고심했다.

윤덕여 감독은 "지소연이 상대에게 집중 마크 당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대책을 구상할지 중요하다. 또 마크를 당하더라도 그 상황에서 지소연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전략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당연하겠지만 주위 선수들이 잘 도와줘야 한다는 말도 했다.

지소연은 "제가 영국에서 뛴다고 해서 '저에게 의존이 심하다'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잘 성장해 대표팀에 올라온 어린 선수들이 있다. 좋은 선수가 많으니 그런 부분(의존도)은 좀 아닌 거 같다"고 했다.

지소연의 말도 맞겠지만 윤덕여 감독의 말도 맞다고 볼 수 있다. 지소연 의존도를 완전히 없다고 부정할 순 없다. 이는 상대도 당연히 알고 있다. 대회까지 이제 두 달. 빠르게 방법을 찾아야 한다.

▲ 훈련 중인 이민아(왼쪽), 지소연 ⓒ 연합뉴스
◆ 지소연, 이민아 공존

1차전은 지소연과 이민아(고베아이낙)가 같이 선발로 나왔으나, 2차전은 지소연이 선발, 이민아는 교체로 뛰었다. 지소연과 이민아의 공존 문제는 과거에도 있었다. 두 선수의 스타일은 비슷한다. 윤덕여 감독의 설명대로 '기술적인' 축구를 하는 선수다. 포지션도 비슷하다. 포지션은 한정적인데 스타일이 비슷한 두 선수를 동시기용하는 건 위험요소가 있다. 두 선수의 나이는 1991년생으로 같은데 지소연에 비해 이민아의 A매치 데뷔가 꽤 늦은 것은 이 문제가 아예 없진 않다.

하지만 지소연과 이민아는 확실한 능력을 갖고 있는 선수다. 겹친다는 이유로 안 쓸 순 없다. 수비 불안이나 골키퍼 문제, 지소연에 의존도처럼 결국엔 해결해야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 윤덕여 감독 역시 측면과 중앙 모두 가능한 강채림(현대제철)을 A매치 데뷔시키면서 방안을 찾았다.

물론 아예 해결 못 할 문제는 아니다. 지금까지 두 선수는 늘 같이 뛰었기 때문이다. 지소연은 "스타일이 비슷한 건 맞지만 이민아와 오래 뛰었기 때문에 괜찮다. 같이 뛰면 내가 밑으로 내려가도 된다"며 공존 문제는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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