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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가 닮지 말아야 할 '코글란 원조 피해자' 이와무라

작성일: 2015.09.19 06:00 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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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시간을 돌릴 수는 없다. 부상 암초를 만난 악몽과 같은 날이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후유증을 털어 내고 그라운드로 복귀해야 한다. 앞서 많은 선수들이 부상-수술-재활-복귀-재기 또는 기량 저하의 과정을 밟았다. 6년 전 강정호와 똑같은 선수에게, 똑같은 상황으로 무릎을 다친 선수가 있다. 이후 그 선수는 예전의 기량을 되찾지 못하고 쓸쓸히 은퇴해야 했다. 그는 바로 이와무라 아키노리(36, 후쿠시마 호프스 감독). 강정호는 이와무라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일본 최고의 '호타준족 내야수'로 평가 받았던 이와무라는 2007년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와 계약을 맺으며 제 2의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미국 진출 첫해부터 12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5 140안타 7홈런 34타점을 올리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치렀다. 이듬해에도 152경기에 나서 타율 0.274 172안타 6홈런 48타점을 기록했다. 빅리그 연착륙에 성공하며 훌륭한 MLB 커리어를 쌓아 가고 있었다.

악몽은 데뷔 3년째에 찾아 왔다. 이와무라는 2009년 5월 25일(이하 한국 시간)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와 경기에 2루수로 출전했다. 이날 그는 상대의 투수 앞 땅볼을 병살타로 처리하려다가 '강정호의 무릎을 앗아간' 크리스 코글란과 충돌해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이와무라도 강정호와 마찬가지로 송구를 위해 왼쪽 다리로 축을 잡고 공을 던지려던 순간 코글란의 태클과 부딪혔다. 당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을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이후 예상보다 순조롭게 재활을 마쳤고 그해 8월 말 그라운드로 돌아오는 투혼을 발휘했다.

그러나 후유증은 컸다. '코글란의 태클'은 이와무라의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쳤다. 눈에 띄는 기량 저하를 불러 온 것이다. 2009년 8월 30일 디트로이트전에 복귀한 뒤 타격 성적이 뚝 떨어졌다. 부상 전 0.312까지 기록했던 시즌 타율은 이후 0.290까지 떨어졌다. 재활을 마치고 돌아와 출장한 25경기에서 타율 0.250 1홈런 6타점 OPS 0.665에 그쳤다. 코글란의 태클이 있기 전과 비교해 타율은 6푼 가까이 감소했고 OPS는 1할2푼이나 떨어졌다.

부상 이후 방랑자 신세가 됐다. 2009년 시즌을 끝으로 탬파베이를 떠난 이와무라는 이후 피츠버그-오클랜드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 갔다. 그러나 그는 예전의 인상적인 경기력을 전혀 보여 주지 못했다. 피츠버그에서 타율 0.182, 오클랜드에서 타율 0.129로 부진했다. 더는 '호타준족 내야수'로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피츠버그 시절 40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는 등 좀처럼 부활하지 못했다. 결국 2010년을 끝으로 일본으로 돌아간 이와무라는 친정팀 야쿠르트가 아닌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새 둥지를 틀었다.

라쿠텐은 이와무라가 팀의 주축으로 활약해 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이와무라는 1할대 빈공에 시달리며 여전히 제 기량을 찾지 못했다. 실책도 6개나 저질러 수비에서도 믿음직한 경기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2011년 5월 끝내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6주 뒤 1군에 복귀했지만 우치무라 겐스케, 다카스 요스케 등에게 밀려 벤치를 지키는 일이 잦아졌다. 그해 9월에는 세이부 라이온스와 경기에서 홈으로 쇄도하다 상대 포수와 충돌해 부상하는 악재까지 겹쳤다. 이듬해에도 1군과 2군을 오가며 자리를 잡지 못했고 결국 10월 7일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영상] 2009년 이와무라 부상-2015년 강정호 부상

[사진] 이와무라 아키노리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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