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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철의 behind] '연습생 출발' 김현수, 맨발에서 벤츠까지

작성일: 2015.12.17 13:33 박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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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박현철 기자] “2006년에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해서 페넌트레이스가 끝나고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를 보고 마무리 훈련을 치렀어. 그런데 젊은 외야수가 딱딱한 담장을 향해 날아올라 쿵 부딪힌 뒤 땅에 떨어지더라고. '저 녀석 괜찮나' 싶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나서 수비 위치로 가길래 놀랐지. 그 녀석이 (김)현수였어.” (김경문 전 두산 감독, 현 NC 감독)

고교생 가운데 최고 타율을 기록한 타자에게 주는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 받았으나 드래프트에서 호명되지 않았다. 명문대의 러브콜 대신 신고 선수로 더 빠른 프로 데뷔를 택했고 2년째부터 1군 출장 기회를 잡은 뒤 3번째 시즌. 0.357의 타율로 타격왕이 됐다. 높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장세로 속앓이도 컸으나 그는 해마다 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KBO 리그 사상 세 번째 메이저리그 직행 야수 타이틀을 눈앞에 뒀다. '연습생' 출신으로는 사상 처음이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입단을 눈앞에 둔 '타격 기계' 김현수(27)가 주인공이다.

볼티모어 지역지 '볼티모어 선'의 댄 코널리 기자는 17일(한국 시간) “한국의 FA(프리에이전트) 타자 김현수가 볼티모어와 2년 700만 달러(약 82억 6,600만 원)의 계약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FA 시장 개막 전부터 피츠버그, 오클랜드, 애틀랜타, 샌디에이고 등 여러 메이저리그 구단의 관심을 끌었던 김현수의 최종 선택은 볼티모어다. 계약 금액은 2009년부터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집중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마침맞다.

신일고를 졸업하고 2006년 두산에 신고 선수로 입단한 김현수는 덕수정보고(현 덕수고) 김문호(롯데)와 함께 고교 최고 좌타자로 꼽혔다. 그러나 정작 드래프트에서는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동기생 남윤희(개명 후 남윤성)의 텍사스 계약과 관련해 미운 털이 박혀 김현수가 지명 받지 못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고교 동기인 모상기(전 삼성-kt), 투수 김상수(삼성-넥센) 등은 드래프트에서 다른 구단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현수의 재능은 스카우트들이 다들 인정하고 있었다. '발이 느리다', '수비가 좋지 않다'는 평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심드렁한 표정 때문에 선입견으로 김현수를 바라본 스카우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절실해 보이지 않는데 과연 프로에서 어떤 내용을 보여 줄지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고 정확한 타격에 비해 장타 툴에서 약간 부족하지 않나 싶었다. 그래도 아무도 지명을 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한 야구 관계자는 10년 전 김현수의 드래프트 미지명을 이렇게 회고했다.

고려대에서 김현수에게 관심을 가졌으나 김현수의 선택은 두산이었다. 원래 롯데가 김문호를 못 잡았을 경우 김현수를 드래프트에서 선택할 가능성이 있었고 LG도 드래프트가 끝난 뒤 김현수에게 신고 선수 입단을 제의했다. 조건은 LG 쪽이 더 괜찮았고 아버지도 두산이 아닌, LG 팬이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김현수는 스스로 두산을 선택했다.

“LG에 가면 제가 1년 만에 팀을 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제 바로 1년 선배들인 박병호(넥센-미네소타) 선배, 정의윤(SK) 선배도 1군에서 자리를 잡았다기 보다 잠깐 잠깐 기회를 얻는 수준이었거든요. 그런데 병호 형이나 의윤이 형이나 다들 계약금을 2억~3억 원 그 이상을 받고 들어온 선수들이란 말이에요. 팀에서 기대를 갖는다면 그 형들에게 갖겠지 제게 눈길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신 두산은 세대교체를 준비하는 팀이었거든요. 오히려 제게 더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해서 두산을 선택했어요.”

심드렁한 표정으로 생긴 선입견과 달리 김현수는 성실했다. 퓨처스리그 경기가 끝나도 매일 밤 하루 1,000개의 스윙을 하고 6~7개 박스 분량의 공을 쳐서 그물망을 흔들었다. 원래 포지션이던 1루가 아닌 좌익수로 이동했고 미야자키 교육리그에서 부족하지만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로 마침 경기를 보던 김경문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경문 감독은 “저 정도 절실한 마음이라면 1군에서도 언젠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라며 김현수의 신인 시절을 떠올렸다.

열심히 하는 선수에게는 행운도 따랐다. 김현수가 1군에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인데 원래 두산의 주전 좌익수이자 붙박이 3번 타자는 유재웅(은퇴)이 유력했다. 그러나 2007년 3월 SK와 시범경기를 치르다 유재웅이 발목을 다쳐 전열에서 이탈했다. 그 빈자리를 채운 선수가 다름아닌 김현수였다. 시즌 초반 3번 타자로 나섰으나 찬스에서 범타-삼진으로 물러나며 '감독 양아들'이라는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2군에 다녀온 뒤 한결 성장한 타격으로 99경기 타율 0.273 5홈런 32타점을 기록했다. 뛰어나지는 않아도 가능성을 보여 준 성적표다.

그리고 2008년부터 김현수는 야구 팬들이 잘 아는, 한 시즌 3할 타율을 보장하는 KBO 리그 최고급 타자로 발전했다. 2008년 약관의 나이에 타율 0.357로 타격왕이 된 데 이어 2009년에는 쇄골 부상을 참고 전 경기(133경기) 출장하며 타율 0.357 23홈런 104타점을 기록했다. 팬들은 김현수에게 '타율 0.350-30홈런-100타점' 이상을 매년 기록해 주길 바랐으나 그 이후의 김현수는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그래도 김현수는 꾸준히 두산의 중심 타자로 발돋움했다. 두산 구단의 마스코트가 2010년부터 '철웅이'로 바뀐 것은 '타격 기계' 김현수가 두산 타선 중심이 됐다는 의미였다.

성장하던 김현수는 2012년 122경기 타율 0.291 7홈런 65타점으로 주춤하기도 했다. 부상도 있었고 속사정도 모르고 비난만 일삼던 야구 팬들에게 마음고생도 심하게 받았던 한 해였다. 그러나 2013년부터 다시 '검증된 3할 타자'로 활약했고 올해는 141경기 타율 0.326 28홈런 121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한 것은 물론 11월에는 한국 대표팀을 프리미어12 초대 챔피언으로 이끌고 스스로 MVP가 됐다.

그리고 그에게 더 큰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무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2008년부터 어떤 공이라도 적극적으로 스윙하며 안타를 만드는 김현수의 정체를 궁금하게 생각했고 2009년부터 김현수가 어떤 타자인지, 어떤 스타일인지 차근차근 정보를 쌓았다.

2010년 시즌 중반 시카고 컵스 스카우트는 “김현수는 자신의 스트라이크존을 잘 잡고 그 안에 들어오면 십중팔구 안타로 연결하는 능력을 갖췄다. 다만 왼손 투수 공략, 몸쪽 떨어지는 코스를 어려워한다”며 김현수의 그해 장단점을 잘 파악했다.

2009년 두산에서 함께 뛰었던 크리스 니코스키는 “김현수는 팀 플레이어로서도 최고”라며 호평했고 2012년 두산의 마무리였던 스캇 프록터는 “김현수의 타격과 열정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고 칭찬했다. 외국인 선수들, 그리고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김현수를 유심히 지켜봤고 호평 일색이었다. 2008년부터 올해까지 김현수는 두산이 치른 페넌트레이스 1,058경기 가운데 1,031경기에 출전해 출장률 97.4%를 기록했다. 내구력도 뛰어났으나 2012~2013년 자신을 괴롭힌 발목 부상을 견디고 뛴 참을성과 주전 선수로서 책임감도 돋보였다.

아직 김현수의 볼티모어 입단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메디컬 테스트를 앞두고 김현수의 몸에는 페넌트레이스와 포스트시즌, 프리미어12를 치르며 쌓였던 여독 외 큰 무리가 없다고 알려졌다. 일종의 입단 계약 과정을 치르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것이다. KBO 리그 사상 첫 '연습생 출신 메이저리거'의 탄생이 눈앞이다.

[영상] 김현수 KBO 활약상 ⓒ SPOTV

[사진] 스포티비뉴스 한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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