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장혁이 9일 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경기를 앞두고 스케이트 날을 만지고 있다. 11바늘을 꿰맨 왼손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다. ⓒ연합뉴스
▲ 박장혁이 9일 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경기를 앞두고 스케이트 날을 만지고 있다. 11바늘을 꿰맨 왼손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베이징, 고봉준 기자] 승패는 그다음의 문제였다. 흔히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하는 ‘올림픽 정신’을 몸소 실천한 박장혁(24·스포츠토토) 이야기다.

박장혁은 9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인도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선에서 2분10초176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7위를 기록했다. 레이스 초반부터 선두권에서 밀려났고, 결국 메달권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분명 아쉬운 결과였다. 생애 첫 올림픽을 누구보다 뜨겁게 준비했고, 또 나름의 목표도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 사이에서 메달의 꿈을 키웠지만, 부상이라는 악재가 변수로 작용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두 번의 밤이 참 악몽과도 같았다. 먼저 5일 열린 혼성 계주 예선. 박장혁은 황대헌 그리고 최민정, 이유빈과 함께 한국을 대표해 릴레이 멤버로 나섰다. 신설 종목 초대 챔피언을 위한 도전이었지만, 레이스 도중 넘어지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첫 메달 획득의 기회를 놓친 박장혁은 이틀 뒤인 7일 열린 남자 1000m 준준결선에서 다시 힘차게 질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기치 않은 부상이 나왔다. 이탈리아 피에트로 시겔과 충돌한 뒤 중심을 잃고 쓰러졌고, 중국 우다징의 스케이트 날에 찍혀 왼손 손가락이 찢어졌다.

어렵게 레이스를 완주한 박장혁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빙판 한가운데서 쓰러져 도움을 청했다. 의무진이 곧바로 투입됐고, 코칭스태프도 박장혁의 상태를 살폈다. 결과는 왼손가락 찢어짐. 결국 11바늘을 꿰매는 치료가 불가피했다. 빙판을 짚어야 하는 왼손 부위 부상이라 1500m 준준결선 역시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박장혁은 이튿날인 8일 훈련을 마친 뒤 “다행스럽게도 근육이나 신경 쪽을 빗겨 갔다. 그냥 봉합만 한 상태라 경기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면서 “경기를 하다 보면 조금 정신없는 상태에서 나서게 되니까 아픈 것은 신경 쓰지 않고 탈 수 있을 것 같다”며 투혼 의지를 불태웠다.

▲ 박장혁의 손가락 치료 장면. ⓒ대한체육회
▲ 박장혁의 손가락 치료 장면. ⓒ대한체육회

경기를 바로 앞둔 시점까지 계속해 치료를 받은 박장혁은 몸과 마음을 추스른 뒤 어렵게 스케이트화를 다시 묶었다. 이 모든 것이 박장혁의 의지. 비록 최종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박장혁의 표정 역시 어둡지 않았다. 아쉬움과 후련함이 함께 엿보였다.

박장혁은 “10명이 1500m를 뛴 적은 처음이었다. 변수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끝나고 힘이 남을 정도로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 국민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 크다”면서도 “아프다는 생각 없이 뛰었다. 사실 예선에선 손을 짚을 때 불편함이 있었지만, 준결선과 결선에선 부상 걱정 없이 정신없이 (빙판을) 탔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한국은 국가대표 3명이 우승을 놓고 다퉜다. 박장혁을 비롯해 황대헌과 이준서가 함께 결선을 뛰었다. 박장혁은 “준결선이 끝나고 시간이 촉박해서 세세하게 작전은 짜지 못했다. 서로 부딪히지만 말고 조심히 타자고 했다”고 뒷이야기를 밝혔다.

비록 1500m에선 메달 없이 물러났지만, 박장혁의 질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자 5000m 계주가 남아있다.

박장혁은 “쇼트트랙을 향한 기대는 부담보다는 자극제였다. 이번 대회 메달 목표 개수가 선수들의 생각보다 적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보여주자’는 마음이 생겼다. 우리끼리는 ‘쇼트트랙에 걸려있는 메달을 전부 가져오자’는 이야기를 했다”면서 남은 경기 의지를 불태웠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