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티비뉴스=대구, 김민경 기자] "그만, 공 내려놔."
두산 베어스가 지난달 말 울산에서 2차 스프링캠프를 진행할 때 있었던 일이다. 불펜 피칭을 하던 우완 이승진(27)이 예정한 투구 수를 거의 다 채웠을 때쯤이었다. 정재훈 투수 코치는 투구 수를 확인했고, 이승진은 "하나만 더"를 외쳤다. 그렇게 투구 수가 하나둘 늘어나자 정 코치는 "그만, 공 내려놔"라고 외치며 불펜 투구를 중단하게 했다.
정 코치는 철저하게 선수들을 관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승진이 당장 공 하나를 더 던져보며 감각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 코치는 선수가 한 시즌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 수 있도록 제동을 걸어주는 게 중요했다. 이승진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공을 내려놓은 뒤 불펜 피칭장을 빠져나갔다.
이승진은 19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취재진과 만나 당시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줬다. 그는 "불펜 피칭을 할 때 30구를 던진다고 하면 30개째 공이 안 좋더라. '한 개 더, 한 개 더' 하고 있었다. 좋을 때 끝내고 싶으니까 그랬다. 그러다 투구 수가 늘어나니까 그만하라고 하신 것이다. 좋게 끝내고 싶으니까 그랬던 것"이라고 설명하며 멋쩍게 웃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이승진은 지난달 초 이천에서 1차 스프링캠프를 진행할 때 거의 공을 던지지 못했다. 훈련 초반에 팔꿈치가 좋지 않아 휴식을 취했다. 평소 캠프부터 전력으로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스타일인데, 팔꿈치 때문에 보름 가까이 페이스가 늦춰졌으니 조급해질 만도 했다. 정 코치로선 이승진이 조급해지지 않게 페이스를 조절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이승진은 "역대 캠프 중에서 페이스가 가장 느린 것 같다. 이천에서는 팔꿈치가 안 좋아서 피칭도 아예 안 했다. 몸을 늦게 끌어올렸다. 그러다 보니까 올해가 가장 늦다. 좋을지 안 좋을지는 모르겠다"면서도 "이제 아픈 곳은 아예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올해뿐만 아니라 이승진은 평소에도 야구에만 빠져 있기로 유명하다. 몰래 훈련을 더 하다가 걸리기도 했다고.
이승진은 "지난해와 비교하면 올해는 잘 쉬면서 하고 있긴 하다. 그래도 직업인지라 몰래 훈련을 하긴 한다. 직업이니 어쩔 수 없다. 나는 티가 많이 나서 그렇지 다들 안 걸리고 그렇게들 한다. 학생이 공부를 못하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처럼"이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이승진이 올해는 필승조로 한 시즌 동안 보탬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승진은 지난해 5월까지 21경기에서 1승, 13홀드, 평균자책점 1.42로 맹활약하다 6월 이후 등판한 26경기에서 3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6.65로 부진해 애를 먹었다. 올해는 기복 없는 시즌을 보내는 게 최우선 목표다.
시범경기까지 투구 내용은 긍정적이다. 2경기에 등판해 1⅔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남은 시범경기는 직구 평균 구속을 시속 140㎞ 중반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려 한다.
이승진은 "올해는 극과 극의 피칭을 보여주고 싶지 않고 꾸준히 하고 싶다. 필승조를 하고 싶긴 하지만, 잘해야 할 수 있는 거니까. 굳이 필승조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많이 던지고 싶고, 어떤 상황에서든 나가고 싶다. 1군에서 풀타임 시즌을 보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