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숨 막히는 심리적 압박감이 스크린을 넘어오는 듯한 공포가 인상적이다. 메시지와 배우들의 에너지가 강렬하게 느껴지는 만큼 뒷심이 부족해 아쉬운 마음이 드는 '앵커'다.
영화 '앵커'(감독 정지연)는 방송국 간판 앵커 정세라(천우희)에게 누군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며 직접 취재해 달라는 제보 전화가 걸려온 후, 그에게 벌어지는 기묘한 일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감독이 '성공한 여성의 불안과 공포'에 착안해 만든 작품인 만큼 '앵커'는 주인공 정세라의 심리 변화에 집중했다.
대외적으로 남부럽지 않게 성공한 방송국 간판 앵커 세라는 알고 보면 수면 아래 백조의 발처럼 현상 유지를 위해 치열하게 헤엄치고 있는 인물이다. 예민하고, 강박적이고, 숨막히지만 그럼에도 없어선 안될 애증의 엄마(이혜영), 장서갈등 탓에 사이가 소원해져 이혼 위기에 놓인 펀드매니저 남편과 관계 뿐 아니라 직장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 서승아(박지현)를 견제하느라 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있다.
어느 날 걸려온 제보 전화는 세라가 겪는 스트레스를 뒤집어놓을 기회이자 비극의 서막이었다. 장난전화인 줄 알고 무시했던 제보자는 숨진 채 발견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갔다 사건을 최초로 보도하게 된 정세라는 일약 스타가 된다. 그러나 사건 이후 알 수 없는 초조한 불안감에 휩싸이고 생방송에서 거듭된 실수 끝에 앵커 자리를 뺏기고 만다.
이후 세라가 뒤늦게 앵커 자리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모녀 사건에 숨겨진 비밀, 그리고 세라의 원인 모를 불안과 공포의 근원과 미스테리도 낱낱이 드러난다.
천우희는 극단의 감정을 오가는 정세라 역을 섬세한 분석으로 준수하게 소화했다. 신마다 감정이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인물을 연속성있게 표현하기 위해 꼼꼼하게 계산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 연기를 탄탄하게 뒷받침 하는 것은 역시 베테랑 신하균과 이혜영이다. 특히 이혜영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후반부 서사 중심에 서는 숨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혜영 특유의 깔끔하고 날이 선 듯한 대사 톤과 사연 많은 듯한 아우라가 영화 속 '엄마' 캐릭터에 완벽히 어우러졌다.
영화의 장점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숨막히듯 내리 누르는 심리적 압박감을 세심하게 묘사한 점이다. 공들인 미장센과 사운드, 배우들의 에너지를 잘 섞어서 세라가 느끼는 부담감을 고스란히 스크린 밖 객석에 전달한다. 쫄깃한 스릴러 장르물로서도 전반부는 성공적이다.
그러나 잘 쌓은 서사로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후반부 플레이가 아쉽다. 모녀 사건에 사용된 장치가 세라의 비밀을 푸는데 반복되는 순간, 최면에서 깨어나듯 흥미롭게 고조되던 분위기가 싹 가라앉는다. 모녀 관계, 여성과 사회라는 메시지와 절정을 맞은 인물들의 감정 해소도 후반부에 전부 쏟아내니 다소 부담스럽다. 해결 방식도 세련되지 못하다. 영화가 끌고온 위태로운 에너지에 비해 맥 빠지는 마지막 신에도 호불호가 갈릴 듯 하다.
다만 흔한 소재의 의미 없는 살육 스릴러가 아닌 무겁고 공감이 쉽지 않은 주제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미스테리 스릴러를 엮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모녀 관객이 함께 관람한다면 의미있는 대화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는 2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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