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레미 페냐 ⓒ 인스타그램 캡처
▲ 제레미 페냐 ⓒ 인스타그램 캡처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지각변동이 심한 현대 야구에서 왕조를 구축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 지난해 팀 역대 두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포함해 최근 6년간 우승 2회, 월드시리즈 진출 4회, 챔피언십시리즈 진출 6회를 달성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화려한 성적표다.

휴스턴은 성공에 도취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팀과 별개로 마이너리그에서는 육성과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팀을 지탱하던 선수들이 떠나도 팀이 흔들리지 않는다. 뿌리 깊은 나무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휴스턴은 카를로스 코레아가 팀을 떠났다. 그러자 휴스턴 위기론이 대두됐다. 실질적인 팀의 리더가 사라진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휴스턴은 보란듯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정규시즌 106승은 2019년 107승에 이어 단일 시즌 팀 최다승 2위 기록이었다. 이제 휴스턴은 '누가 떠나서 걱정되는 팀'이 아니라 '누가 떠나면 누가 등장할지 기대되는 팀'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코레아의 공백을 메운 선수는 신인 제레미 페냐였다. 페냐는 코레아를 대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어떤 선수인지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코레아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고 자신만의 야구를 선보인 페냐는, 자신이 어떤 선수인지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도미니카 출신인 페냐는 9살 때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로 이사했다. 큰 세상으로 왔지만, 어린 페냐는 작아졌다. 신기함보다 어색함이 더 강했다. 먹는 것부터 입는 것까지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가족과 야구였다. 페냐는 가족들이 든든하게 지켜준 덕분에 천천히 울타리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처음 왔을 때 영어도 한 마디 못했지만, 야구가 그의 언어였다. 야구를 통해 사람들을 만났고, 야구를 하면서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렇게 페냐는 달라진 세상에 스며들었다.

미국에 와서 가장 좋았던 건 메이저리그와 가까워진 것이었다. 페냐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근처 맥코이스타디움을 찾아갔다. 맥코이스타디움은 보스턴 트리플A 팀의 홈구장이었다. 당시 페냐는 더스틴 페드로이아와 존 레스터 같은 선수들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페냐의 롤모델은 같은 도미니카 출신의 호세 레이에스였다. 레이에스의 역동적인 플레이에 흠뻑 빠졌다. 하지만 페냐가 누구보다 존경한 선수는 아버지 제로니모 페냐였다. 1990-1996년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아버지는 페냐의 영웅이었다. 훗날 페냐는 "팀 훈련이 끝나고 아버지에게 따로 개인 교습을 받으면서 남들보다 앞설 수 있었다"고 밝혔다.

페냐는 원래 2루수였다. 그러나 체격이 성장하면서 유격수로 전환했다. 페냐는 고교 때부터 발군의 수비 실력을 자랑했다. 페냐를 눈여겨봤던 지도자는 "고교 시절에 이미 더블A 유격수처럼 보였다"고 회상했다. 고교 졸업 후 애틀랜타의 39라운드 지명을 거절하고 메인대학교에 진학, 페냐는 그곳에서 타격 성적을 끌어 올려 전국구 유망주로 부상했다. 그사이 스카우트들이 걱정했던 깡마른 체구도 근육이 붙으면서 건장한 체격으로 성장했다(183cm 91kg).

페냐는 2018년 드래프트에서 휴스턴의 3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이듬해 상위싱글A을 접수하고 순조롭게 나아가는 듯 했으나 아무도 예기치 못한 역병이 발생했다.

2020년 마이너리그는 코로나19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시즌이 취소됐다. 시간을 허비한 페냐는 설상가상 2021년에도 손목 수술을 받으면서 루키리그 7경기와 트리플A 30경기 출장에 그쳤다. 하지만 휴스턴은 페냐를 포스트시즌 동안 택시 스쿼드에 넣어 메이저리그 팀과 동행하게 했다. 휴스턴이 페냐를 얼마나 기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휴스턴은 코레아와 예견된 이별을 했다. 그리고 페냐와 약속된 만남을 가졌다. 개막전이자 데뷔전에서 4타수 무안타로 물러난 페냐는, 다음날 부모님이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메이저리그 통산 첫 번째 홈런을 터뜨렸다. 이 기세를 몰아 첫 41경기에서 타율 .290 8홈런 23타점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훌리오 로드리게스와 애들리 러치맨, 바비 위트 주니어보다 페냐를 더 주목했다. 

메이저리그는 적응과 변화의 연속이다. 보통 신인들은 변화에 직면하게 되면 좌절한다.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것이 부지기수고, 극복을 하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페냐도 시험대에 올랐다. 분석을 마친 상대 투수들은 페냐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페냐는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시즌 중반 휴스턴으로 온 트레이 맨시니는 페냐를 보고 "10년차 베테랑인 줄 알았다"는 말을 했다. 페냐는 여느 신인들과 달리 상대의 도전에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딪치면서 해답을 찾아냈다. '휴스턴 크로니클'에 의하면 페냐는 9월11일 LA 에인절스전에서 애를 먹었던 슬라이더를 받아쳐 돌파구를 마련했다. 레그킥 동작을 줄임으로써 공을 더 오래 볼 수 있게 된 것이 주효했다. 한편, 페냐의 자신감을 되찾아 준 투수는 그 전까지 페냐를 완벽하게 막았던 오타니 쇼헤이였다.

레그킥을 조정한 페냐는 부활했다. 이후 정규시즌 마지막 21경기를 타율 .272 5홈런 16타점으로 마무리했다. 기술적으로, 정신적으로 재무장을 한 페냐는 가을로 향했다. 가을은 페냐의 계절이었다. 정규시즌이 예고편으로 느껴질 정도로 페냐의 포스트시즌은 대단히 강렬했다.

페냐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맞붙은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 연장 18회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홈런을 터뜨렸다. 뉴욕 양키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에서 MVP로 선정,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격돌한 월드시리즈에서도 MVP를 독차지했다. 단일 포스트시즌에서 챔피언십시리즈와 월드시리즈 MVP를 모두 휩쓴 신인은 페냐가 두 번째였다(첫 번째 신인 1997년 리반 에르난데스는 투수). 직전 포스트시즌 구경꾼이 일 년 만에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정규시즌 초반 활약을 이어가지 못한 페냐는 신인왕 투표 최종 후보도 탈락했다(5위). 136경기 22홈런 11도루는 인상적인 기록이지만, 타율 .253와 출루율 .289는 아쉬운 성적이었다. 대신 페냐는 팀의 우승과 포스트시즌 MVP를 연거푸 거머쥐면서 신인왕 못지 않은 기쁨을 누렸다. 또한 신인 유격수 최초로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페냐의 수비는 리그 최정상급임을 증명했다. 반면 공격은 불안한 부분을 노출했다. 지난해 페냐는 스윙을 아끼지 않았다. 타석에서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신인의 패기를 감안해도 지나침이 있었다. 이에 볼넷률이 규정타석을 충족한 타자들 중 4번째로 낮은 3.9%에 불과했다. 

많은 스윙과 적은 볼넷은 필연적으로 나쁜 헛스윙을 유발한다. 실제로 페냐는 아웃존 헛스윙률도 54.7%로 전체 6번째로 높았다. 선구안이 떨어지는 타자는 타격감에 따라 성적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페냐가 더 안정적인 타자가 되려면 최소한 치면 안 되는 공은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난 시즌 최대 오점이었던 2할대 출루율을 개선할 수 있다.

지난해 페냐는 많은 것을 이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루진 않았다. 올해는 이루지 못한 목표를 위해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페냐가 그 목표를 이뤘을 때, 휴스턴 왕조의 아성은 더 굳건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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