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TV NEWS=조현일 해설위원] ‘저니맨(Journeyman)’은 한 팀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이 팀 저 팀 옮겨 다니는 선수를 일컫는다. 팀의 필요에 따라 타의로 팀을 떠나는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자의로 이적하는 경우도 있다. 부지런히도 팀을 옮겨 다녔던 NBA의 저니맨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적횟수는 성적순이 아니야.”

▲ NBA의 대표적인 유니폼 수집가들

NBA에서 15시즌을 뛰었던 토니 매센버그는 무려 14팀을 떠돌아다녔다. 매센버그가 NBA에서 동료로 만난 선수만 해도 200명이 훌쩍 넘는다.

저니맨의 본능(?)을 제대로 발휘했던 때는 1991-92시즌. 샌안토니오 스퍼스, 샬럿 호네츠, 보스턴 셀틱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까지 한 시즌 동안 무려 네 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런데 고작 18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다.

통산 683경기(정규시즌)에 나선 메센버그는 평균 6.2점 4.3리바운드의 기록을 남긴 채 2004-05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선수 생활 마지막 해였던 2004-05시즌, 샌안토니오 소속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챔피언 반지를 손에 넣었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피곤한 생활이었지만 챔피언 반지까지 획득한 매센버그는 행복한 방랑자였다.

짐 잭슨도 여행사 하나는 차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도시를 돌아다녔다. 14시즌을 뛰면서 12벌의 유니폼을 모았다. 특히 1996-97시즌부터 선수생활 마지막 해였던 2005-06시즌까지 단 한 시즌(2004-05시즌)을 제외하고는 매년 팀을 이적했다.

사실 잭슨이 처음부터 저니맨은 아니었다. 1992년 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로 댈러스 매버릭스의 지명을 받은 그는 3년차이던 1994-95시즌 평균 25.7점 5.1리바운드를 기록, NBA 최고의 슈팅가드 대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여가수 토니 브랙스턴을 놓고 팀 동료 제이슨 키드(댈러스 매버릭스)와 갈등을 빚은 것이 화근이었다. 여자 문제로 팀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든 잭슨은 1996-97시즌 중반, 뉴저지 네츠로 트레이드되며 방랑자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데뷔 후 첫 4년 간 댈러스에서 뛰었던 잭슨은 이후 9시즌 반 동안 11팀을 전전했다. 통산 성적은 14.3점 4.7리바운드 3.2어시스트. 저니맨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훌륭한 기록이다. 『블리처리포트』 마이크 아이킨스 기자는 잭슨을 일컬어 “저니맨 가운데 가장 많은 기술을 갖고 있었던 선수다. 동시에 단장으로부터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은 저니맨”이라 표현했다.

‘헤드밴드 가이’로 유명했던 크리스 게틀링도 만만치 않다. 11시즌 동안 NBA 코트를 누비면서 8차례 이적 도장을 찍었다. 게틀링과 잭슨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잭슨과 함께 1992년 드래프트에 지명되었으며 댈러스에서 활약했던 잭슨과 마찬가지로 첫 네 시즌 동안 데뷔 팀에서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하지만 1995-96시즌 중반 마이애미로 트레이드 된 이후 고달픈 이적 인생이 시작됐다. 1997년부터 2년 동안 뉴저지 네츠에서 활약한 때를 제외하면 매 시즌 팀을 옮겼다. 하도 많은 팀을 떠돌아다닌 덕분에 잭슨과는 무려 네 번이나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기도 했다.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잭슨과 마찬가지로 실력 하나는 일품이었다. 준수한 득점력에 기술도 다양했다.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1997 NBA 올스타전 초대장을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통산 700경기에 출전, 10.3점 5.3리바운드를 기록한 게틀링은 2001-02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 행복한 저니맨

LA 클리퍼스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동 중인 샘 카셀 역시 많은 팀을 돌아다녔다. 1993-94시즌부터 활약한 카셀은 8번이나 이적 동의서에 합의했다. 1996-97시즌에는 피닉스 선즈, 댈러스 매버릭스, 뉴저지 네츠까지 1년에 세 번이나 이삿짐을 싸는 불편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카셀은 남부러울 것 없는 경력을 보냈다. NBA 유니폼을 입자마자 휴스턴 로케츠 소속으로 2개의 챔피언 반지를 손에 넣었고 2003-04시즌에는 데뷔 11년 만에 처음으로 올스타에 뽑혔다.

2000-01시즌에는 90년대 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던 밀워키 벅스를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로 이끌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7년 연속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이라는 악몽에 시달렸던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는 카셀이 합류한 2003-04시즌,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랐다.

LA 클리퍼스 역시 카셀이 뛴 2005-06시즌, 무려 30년 만에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 진출했다. 2007-08시즌에는 보스턴 셀틱스 소속으로 개인 통산 세 번째 우승반지를 거머쥐었다. 부지런히 유니폼을 갈아입었지만 카셀에겐 저니맨보다 승자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

카셀처럼 유독 가드 포지션에 방랑자가 많았다. “내가 우주 최고의 3점 슈터”라는 헛소리를 작렬했던 데이먼 존스는 13년 간 10팀을 거쳤다. MJ라는 멋진 이니셜의 소유자였던 마이크 제임스는 NBA에서 총 11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한 번도 한 팀에서 93경기 이상을 뛴 적이 없다.

그런가 하면 저니맨과 인연이 깊은 팀도 있다. 댈러스 매버릭스가 주인공. 앞서 언급한 카셀, 잭슨, 게틀링 그리고 현역으로 뛰고 있는 제랄드 그린(8팀)과 캐런 버틀러(7팀)까지 다수의 저니맨들이 댈러스를 거쳤다. 이 가운데 버틀러만이 댈러스 소속으로 우승 반지를 거머쥐었다.

저니맨의 운명은 알 수 없다. 이적 통보 시점은 물론, 한 팀을 대표하는 슈퍼스타에서 언제 저니맨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전설적인 센터로 꼽히는 모지스 말론도 ABA 포함, 9팀을 거쳤다.

저니맨을 자청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그 누가 불안정한 삶을 원하겠는가. 게틀링은 계속되는 트레이드 통보에 지친 나머지 “집을 구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이젠 호텔 생활이 익숙해졌다”라 말한 적이 있다. 언제 이적해야 할지 몰라 호텔에서 살아야 하는 선수들의 고충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저니맨은 늘 외롭다. 트레이드 마감일만 되면 뒤가 서늘하다. 울리는 전화벨도 반갑지 않다. 하지만 뛰어난 활약을 보인 이들 저니맨은 ‘내 가치를 증명해보이겠다’는 집념 하나로 역경을 이겨냈다. 저니맨의 커리어를 평가할 때 이적횟수가 아닌, 땀과 노력이라는 가산점을 매겨야 하는 이유다.

[사진] NBA 저니맨 리스트, 그래픽 김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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