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키워드 키워드 기준 i금일 기준 많이 본
뉴스 기사의 키워드 수집

[주간테마]'아시아 속 유럽'…세계화 20년, 달라진 아시안컵 위상

작성일: 2015.01.07 19:33 김덕중 기자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 그래픽 김종래

[SPOTV NEWS=김덕중 기자] 아시아에서 축구 세계화에 남다른 관심을 내비쳤던 두 나라가 있다. 한국과 일본이다. 일본이 앞서가면 한국이 따라가는 형태가 많았다. 일본은 지난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뒤 세계화를 외쳤다. 협회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아시아 대회 참가를 피했고 전도 유망한 선수를 유럽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이는 성공적으로 맺음되지 못했다. 되려 한국 선수의 유럽 진출에 간접적 영향을 미치게 됐는데 대표적인 선수가 차범근에 앞서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던 오쿠데라다. 차범근은 "오쿠데라의 존재가 해외진출의 동기부여가 됐다"고 밝힌 바 있으며 독일에서 오쿠데라 보다 훨씬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보냈다.

2002년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아시아 개최가 확정되면서, 유치를 원했던 한국과 일본은 대표팀 경쟁력 강화의 일환으로 축구 세계화를 추진했다. 첫 삽을 뜬 게 1990년대 초반. 1970년대 보다는 훨씬 체계적이었고 적극적이었다. 동시에 유소년 축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뒷받침됐다. 일본은 브라질 축구 유학을 다녀온 미우라 가즈요시가 1994-95시즌 세리에A 제노아에 입단했다. 1998-99시즌에는 나카타 히데토시가 세리에A 페루자에 입단했다. 미우라는 한 시즌 만에 되돌아왔지만 나카타는 AS로마, 파르마, 피오렌티나 등에서 활약하며 성공시대를 활짝 열었다. 미우라와 나카타는 일본 출신으로 세리에A에 진출한 1,2호 선수로 의미가 크다. 

한국은 일본과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1970년대 차범근, 허정무 등이 유럽에 진출할 때만 해도 '국보유출'이라는 여론이 형성됐었다. 협회 차원에서 추진한 첫번째 프로젝트의 결실은 1990년대 후반에서야 나왔다. 설기현이 벨기에 주필러리그의 로얄 앤트워프에 입단했고 비슷한 시기 안정환이 페루자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 당시 한국과 일본의 엔트리에는 유럽파가 한 명씩 밖에 없다. 한국은 앤트워프 소속 설기현이었고 일본은 베네치아 소속 나나미 히로시였다. 두 나라에서 적극적인 세계화를 추진하고 어느덧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2015년 호주 대회를 앞두고 한국은 6명의 유럽파를, 일본은 무려 10명의 유럽파를 소집했다.

비단 한국과 일본 만의 얘기는 아니다. 지난 2000년 레바논 대회 당시 유럽파는 22명에 그쳤다. 이번 호주 대회에서는 무려 46명으로 늘었다. 물론 호주가 AFC에 편입되고 3차례 아시안컵을 치르게 됐지만, 호주의 유럽파를 제외하더라도 유럽 클럽 소속으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선수는 꾸준히 증가세에 있다. 알리 다에이, 카림 바게리, 메디 마다비키아 부터 시작해 알리 카리미, 자바드 네쿠남으로 이어온 이란의 수퍼스타들을 빼놓을 수 없다. 디나모 키예프에서 한때 '포스트 세브첸코'로 꼽현던 막심 샤츠키흐도 아시안컵을 뛰었던 대표적인 아시아 스타. 이밖에 축구 쇄국정책을 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미 알-자베르는 이례적으로 울버햄턴 경력이 있다. 

그동안 아시안컵을 대표팀 세대교체의 장, 혹은 중간 단계의 테스트 무대 정도로 여기는 시각이 존재했고 이 또한 충분한 타당성을 지니고는 있지만, 과거 아시안컵의 흥행을 주도했던 결정적 카드가 유럽 클럽에서 뛰었던 베테랑 스타플레이어였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는 이번 호주 대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최국 호주의 대체불가한 공격수 팀 케이힐을 비롯해 일본의 혼다, 가가와, 오카자키 등이 이번 대회 주요 타이틀을 노릴 것으로 관측된다. 이란은 네쿠남 뿐 아니라 테이무리안, 쇼자에이가 마지막 투지를 불사른다. '포스트 다에이' 구차네자드도 향후 유럽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 한국에는 손흥민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포진해 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