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원빈. 2020년 11월 미국에서 열린 파워 쇼케이스 우승 후 관계자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조원빈. 2020년 11월 미국에서 열린 파워 쇼케이스 우승 후 관계자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뉴욕 양키스 스카우트 카를로스 헤론은 핀스트라이프가 어울리는 선수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스카우트가 그렇듯, 감춰진 보석을 발견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한 쪽 눈으로는 현재를 봐야하고, 또 다른 눈으로는 미래를 봐야한다.

헤론은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스카우트로서의 감각과 본능도 겸비했다. 그래서 야구와 전혀 연관이 없었던 가난한 어촌에서 진주를 찾아냈다. 발목과 무릎 부상 때문에 축구를 관뒀던 이 소년은 느린 공을 던졌지만, 헤론의 강력한 추천에 양키스 유니폼을 입었다. 계약금은 2500달러(현재 환율 약 298만 원) 수준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결정은 소년의 인생을 바꿨다. 그리고 양키스의 운명도 바꿨다. 헤론이 데려온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였다. 통산 652세이브를 거둔 리베라가 향후 어떤 선수로 성장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리베라는 전인미답이었던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도 만장일치를 얻어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했다.

아마추어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매년 6월에 열리는 아마추어 드래프트에 참여하는 것이다(룰4 드래프트). 하지만 이 드래프트는 미국과 캐나다,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소재의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를 나와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주니어칼리지 1년, 4년제 대학교 3년 수료 혹은 21세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드래프트에 참여 자격이 주어진다.

이 대상자가 아닌 선수들은 리베라처럼 국제 계약을 통해 메이저리그 구단에 입단한다. 현재 메이저리그를 이끌고 있는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22),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24),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23), 그리고 후안 소토(23)도 모두 국제 계약으로 건너온 선수들이다. 서울컨벤션고 외야수 조원빈(19)도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된다.

당초 국제 계약은 아마추어 드래프트처럼 시즌 중에 이루어졌다. 7월2일(미국 시간)에서 이듬해 6월15일까지 진행됐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일정이 조정됐다. 올해는 1월15일부터 금년 12월15일까지다. 주요 선수들은 이미 사전에 교감이 있었기 때문에 계약이 일찍 마무리된다. 조원빈도 곧바로 공식 발표가 있었다.

메이저리그 국제 계약은 16세가 되어야 한다. 16세 이전 선수는 계약할 수 없다. 이번 시점에서는 2005년 9월1일 이후 출생자다(조원빈 2003년생).

과거 LA 다저스는 아직 16세가 되지 않은 선수를 먼저 선점하기 위해 서류를 조작한 적이 있었다. 다저스가 위반 행위까지 저지르면서 영입한 선수는 애드리안 벨트레였다. 다저스는 벨트레가 15세 때 계약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조사를 받았다. 결국, 벌금 5만 달러와 1년간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유망주들과의 계약이 금지됐다. 벨트레 계약을 주도했던 책임자 랄프 아빌라도 1년간 자격 정지를 당했다(랄프 아빌라는 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단장 알 아빌라의 아버지다).

나이 때문에 손해를 본 선수는 한 명 더 있다. 사무국과 선수노조는 2016년 12월에 갱신한 노사협약(CBA)에서 해외 프로 선수로 인정하는 나이를 25세로 높였다. 그렇지 않으면 해외 리그에서 최소 6년을 뛰어야 메이저리그 계약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규정 때문에 오타니 쇼헤이(27)는 프로 선수가 아닌, 국제 아마추어 선수로 분류됐다. 그러다 보니 각 팀에 배당되는 국제 계약 보너스풀(슬롯머니)에 한해 계약을 해야만 했다. 다나카 마사히로, 다르빗슈 유와 달리 대박 계약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당시 오타니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많은 계약금은 시애틀 매리너스가 확보한 355만7000달러에 불과했다(다나카는 7년 1억 5500만 달러, 다르빗슈도 포스팅 금액이 더한 총액이 1억1170만 달러였다).

오타니는 프로 선수 조건이 충족되는 2년 뒤에 나왔다면 돈방석에 앉았을 것이다. 예상 계약 규모가 2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 이에 LA 에인절스가 제시한 계약금 231만5000달러를 받고 메이저리그로 넘어왔다. 연봉도 다른 아마추어 선수와 마찬가지로 리그 최저연봉이 주어졌다.

오타니는 본인이 뛰고 싶은 팀을 선택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마추어 선수들은 돈을 많이 주는 팀을 선호한다. 돈을 많이 주려면 보너스풀이 넉넉해야 한다. 이 보너스풀은 기본적으로 마켓 규모에 의해 정해지는데, 페널티에 따라 삭감될 수 있다. 일례로, 퀄리파잉 오퍼를 거절한 선수와 FA 계약을 한 팀은 보너스풀 50만 달러가 줄어든다(사치세를 내는 팀은 100만 달러). 이러한 기준이 적용된 올해 보너스풀은 4등급으로 나뉘었다.

626만2600달러(8팀) : 세인트루이스, 샌디에이고, 피츠버그, 애리조나, 클리블랜드, 볼티모어, 콜로라도, 캔자스시티

572만1200달러(6팀) : 탬파베이, 밀워키, 마이애미, 신시내티, 디트로이트, 미네소타

517만9700달러(14팀) : 양키스, 보스턴, 텍사스, 휴스턴, 에인절스, 메츠, 필라델피아, 오클랜드, 애틀랜타, 컵스,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화이트삭스

464만4000달러(2팀) : 다저스, 토론토

조원빈을 영입한 세인트루이스는 올해 보너스풀이 가장 많은 팀 중 하나다. 덕분에 도미니카공화국 유격수 조나단 메히아(16)와 베네수엘라 포수 루이스 로드리게스(17)도 데려왔다. <베이스볼아메리카>가 선정한 국제 유망주 순위에서 12위였던 메히아는 계약금 200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로드리게스는 28위였던 반면, 조원빈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국제 계약은 매년 우승을 경쟁하는 팀들에게 더 중요하다.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 드래프트 순번이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드래프트에서 채우지 못하는 팜의 깊이를 국제 계약을 통해 채운다. 그런데 다저스는 올해 보너스풀이 가장 적다. 지난 겨울 퀄리파잉 오퍼를 거절한 트레버 바우어(31)와 계약한 여파였다(토론토는 조지 스프링어). 한편, 올해는 악용될 것을 우려해 보너스풀이 포함된 트레이드를 전면 금지시켰다.

사실 세인트루이스는 지금까지 국제 계약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국제 계약보다는 다른 경로로 선수들을 수집했다. 오죽하면 지난해 <MLB닷컴>이 뽑은 세인트루이스 최고의 국제 계약 선수가 1966년 호세 크루스였다. 심지어 크루스는 세인트루이스보다 휴스턴에서 전성기를 보낸 선수다.

그동안 인연이 없었던 세인트루이스는 점차 국제 계약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영역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으며, 실제로 구단 최초로 아시아 선수에게 아마추어 계약을 안겨줬다.

즉, 조원빈의 이번 계약은 세인트루이스가 변화한 것만으로도 지켜볼 가치가 있다. 조원빈의 도전은, 세인트루이스의 도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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