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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인 리베로' 창시한 선구자…베켄바워 영면

작성일: 2024.01.09 12:40 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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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축구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78.
▲ '독일 축구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78.
▲ '독일 축구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78.
▲ '독일 축구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78.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독일 축구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78.

독일 키커 등 외신은 9일(한국 시간) 베켄바워의 별세 소식을 보도했다.

베켄바워는 선수와 감독, 행정가로 두루 성공한 흔치 않은 축구인이다.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자국의 20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 월드컵 우승에 공헌했다. 서독 주장으로 '공격적인 리베로' 개념을 세계에 알렸고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팀을 하나로 묶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선 독일 대표팀 감독을 맡아 다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고 마리우 자갈루(브라질)에 이어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을 제패한 역대 2번째 축구인에 이름을 올렸다. 공교롭게도 자갈루는 베켄바워보다 사흘 일찍 숨을 거뒀다.

▲ 베켄바워는 선수와 감독, 행정가로 두루 성공한 흔치 않은 축구인이다. 
▲ 베켄바워는 선수와 감독, 행정가로 두루 성공한 흔치 않은 축구인이다. 
▲ 뉴욕 코스모스 시절 베켄바워(맨 왼쪽).
▲ 뉴욕 코스모스 시절 베켄바워(맨 왼쪽).

클럽 커리어 역시 눈부셨다. 소속 팀 뮌헨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성공했다. 

뮌헨에서 582경기 출장했다. 뮌헨은 베켄바워가 뛸 때 분데스리가와 독일축구협회컵(DFB 포칼) 4차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전신인 유러피언컵 3차례,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1차례 등 숱한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베켄바워는 세계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 역시 두 번이나 거머쥐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수비 패러다임을 제시한 영향이 컸다. 

커리어 초반 중앙 미드필더로도 뛴 베켄바워는 웬만한 미드필더, 공격수보다 볼 컨트롤 능력이 출중했다. 그래서 그간 공을 걷어내고 대인방어에만 치중하던 기존 리베로와는 '결이 다른' 플레이를 선보였다.

직접 중원으로 공을 운반한 뒤 전진 패스를 찔러주거나 후방에서 정교한 롱패스로 공격 시발점 노릇을 맡았다. 수비수로서 인터셉트, 클리어링, 태클 능력 역시 훌륭했다. 

공격 지향적인 리베로, 공수겸장 스위퍼 개념을 창시한 선구자다.

▲ 베켄바워는 1993-1994시즌 뮌헨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 베켄바워는 1993-1994시즌 뮌헨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감독으로도 분데스리가를 석권했다. 1993-94시즌 뮌헨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 해 행정가로 변신했다. 뮌헨에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회장직을 맡았다. 2002년부터는 명예회장을 지냈다.

베켄바워는 독일 국민으로부터 황제(Der Kaiser)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기존의 중앙 수비수 개념, '스타플레이어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편견, 1974년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남긴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란 명언 등 수많은 축구계 통념을 차례차례 깨뜨린 위대한 축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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