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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의 MLB스코프] 필라델피아 에이스 애런 놀라, 무엇이 달라졌나

작성일: 2023.03.01 11:25 이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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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런 놀라 ⓒ 필라델피아 필리스 SNS
▲ 애런 놀라 ⓒ 필라델피아 필리스 SNS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메이저리그는 선발 투수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다. 불펜 야구가 안착되면서 선발 야구를 무리하게 고수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발 투수의 가치가 낮아진 건 아니다. 불혹의 저스틴 벌랜더와 30대 후반 맥스 슈어저는 평균 연봉 1위에 올라 있으며(4333만3333달러) 부상에 쓰러졌던 제이콥 디그롬도 연 평균 3700만 달러를 보장 받았다.

뛰어난 투수들은 여전히 시장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귀한 대접을 기다리는 또 한 명의 선발 투수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있다. '건강하면서도, 젊은' 애런 놀라다.

2014년 드래프트 전체 7순위로 뽑힌 놀라는 이듬해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필라델피아는 놀라가 마이너리그에서 더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초고속으로 승격된 놀라는 필라델피아의 바람대로 메이저리그에서 경험을 쌓으며 팀의 에이스로 성장했다. 2017년 처음으로 규정이닝을 넘긴 데 이어 2018년 사이영상 투표 3위(17승6패 ERA 2.37)에 이름을 올려 전성기를 맞이했다.

2018년 이후 최다이닝 투수

871.2 - 애런 놀라
867.2 - 게릿 콜
819.2 - 호세 베리오스

2018년은 놀라가 처음으로 200이닝을 돌파한 시즌이었다(212.1이닝). 그리고 이후 놀라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투수가 됐다. 모든 경기에서 최대한 오래 던지는 것, 그리고 선발진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놀라의 지론이었다. "이닝 관리가 필요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럼 제가 왜 선발 투수로 나오는거죠?" 라고 반문한 선수였다.

놀라는 지난 시즌도 200이닝을 충족했다(205이닝). 피칭 내용에 비해 승운은 따르지 않았지만(11승13패 ERA 3.25) 놀라가 한 단계 더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시즌이었다.

놀라가 많은 이닝을 던질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는 제구력이다. 놀라는 불필요한 공을 던지지 않는다. 이에 9이닝 당 볼넷 수가 1.27개로 내셔널리그 선발 투수 중 가장 적었다. 마운드에서 타자를 공격하는 투수였던 놀라는 초구 스트라이크로 자신에게 유리한 볼 카운트를 가져갔다. 덕분에 볼넷은 적고, 탈삼진은 많았다. 지난해 9이닝 당 두 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한 10명 중 한 명으로(10.32개) 탈삼진 볼넷 비율에서 놀라를 넘어선 선수는 없었다.

2022 탈삼진/볼넷 비율

8.10 - 애런 놀라
7.32 - 케빈 가우스먼
6.62 - 코리 클루버
6.38 - 저스틴 벌랜더

2022 초구 스트라이크 비중 (%)

70.1 - 애런 놀라
68.4 - 코리 클루버
68.0 - 케빈 가우스먼

탈삼진 볼넷 비율은 투수 피칭이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놀라는 투수가 직접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에서 탁월한 모습을 보였다. 9이닝 당 피홈런 수도 0.83개로 적은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수비를 배제한 평균자책점 FIP가 2.58로 평균자책점 3.25보다 더 낮았다. FIP를 기반으로 계산되는 '팬그래프닷컴' 투수 승리기여도는 전체 1위였다.

6.3 - 애런 놀라
6.2 - 카를로스 로돈
6.1 - 저스틴 벌랜더
5.7 - 샌디 알칸타라
5.7 - 케빈 가우스먼

지난해 놀라는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을까. 데뷔 때부터 주무기였던 커브는 변함없이 빼어났다. 그러나 한층 더 강력해진 피칭에는 새로운 무기가 있었다. 데뷔 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싱커였다. 싱커의 재발견이 가장 큰 변화였다.

2021년 놀라는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냈다. 6월 중순 이후 평균자책점이 5.44(97.2이닝)였다. 잊을만하면 대량 실점을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교훈을 얻었다. 단축 시즌 때 비중이 가장 높을 정도로 중용했던 체인지업을 줄이고 싱커를 더 많이 던지기로 결심한 것이다. 시즌 막판 싱커에 대한 감각이 포심 패스트볼만큼 높아졌다고 밝힌 바 있다.

▲ 놀라의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었다 ⓒ 필라델피아 SNS
▲ 놀라의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었다 ⓒ 필라델피아 SNS

좌타자 몸쪽, 우타자 바깥쪽을 향하는 싱커는 우타자를 마주할 때 더 든든한 무기가 됐다. 지난해 놀라는 2021년 우타자 상대 시 비중이 13%였던 싱커를 20.7%로 높였다. 이 선택은 적중했다. 싱커는 우타자에게 고전했던 놀라를 보호해줬다. 또한 좌타자를 상대로도 간간히 위력을 뽐냈다(비중 16.9%). 우타자와 좌타자를 모두 안전하게 돌려세운 구종이었다.

놀라 구종별 피안타율

포심 [우타자] .260 [좌타자] .138
커브 [우타자] .238 [좌타자] .198
체인 [우타자] .320 [좌타자] .317
싱커 [우타자] .182 [좌타자] .173

일반적으로 싱커는 빗맞은 타구를 유도하는 목적으로 쓰인다. 하지만 놀라는 싱커의 역할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적극적으로 던짐으로써 삼진도 잡아냈다. 싱커 탈삼진 54개는 전체 8위였지만, 싱커 탈삼진율 29.8%는 소니 그레이(32.2%)에 이어 선발 두 번째로 높았다. 이는 그동안 놀라의 풋어웨이 구종으로 커브만 생각하고 있었던 타자들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변신이었다.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던질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놀라는 철저한 관리를 통해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필라델피아에서 선수들 몸상태를 살폈던 담당자에 따르면 "아무도 없는 웨이트 룸에서 혼자 몸을 풀고 있는 선수"였다.

놀라는 항상 루틴에 의해 움직였다. 정규시즌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루틴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똑같은 일을 끊임 없이 해내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선수들이 루틴을 신경 쓴다. 동시에 루틴 때문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놀라는 루틴에 구속되지 않는다. 2018년 필라델피아로 온 제이크 아리에타는 놀라에게 "준비를 너무 기계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몸이 피곤한 상태라면 쉬는 게 더 좋다는 의미였다. 아리에타의 말을 들은 놀라는 부담감을 내려 놓고 루틴을 즐기기 시작했다.

올해는 놀라에게 더욱 중요한 시즌이다. 팀은 지난해 아쉽게 놓쳤던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고, 놀라는 2019년에 맺은 연장 계약의 끝자락에 서 있다. 당시 필라델피아와 4년 4500만 달러 계약에 합의했는데, 올해 팀 옵션 1600만 달러가 행사됐다. 필라델피아는 당연히 놀라를 잡길 바라지만, 그러면 그에 상응하는 계약 규모를 마련해야 한다. 이미 팀 연봉이 사치세 기준에 위태로운 상황에서 존 미들턴 구단주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 미지수다. 

지난해 놀라는 처음 나선 포스트시즌에서 5경기 2승2패 평균자책점 4.91을 기록했다. 첫 두 경기는 12.2이닝 비자책 1실점, 이후 세 경기는 13이닝 14실점이었다. 챔피언십시리즈와 월드시리즈에서 아쉬움을 남겼지만, 놀라의 활약이 없었다면 필라델피아의 챔피언십시리즈와 월드시리즈 진출도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놀라를 탓하지도 않았다.

과연 놀라는 지난 시즌 못다 이룬 목표를 올해 달성할 수 있을까. 놀라가 꿈꾸는 결말은 곧 필라델피아가 꿈꾸는 결말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또 다른 가을이 찾아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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