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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1,957G' 홍성흔, 그래서 더 어려웠을 '마지막'

작성일: 2016.11.23 06:00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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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흔 ⓒ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홍성흔(39)이 고심 끝에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벗었다. 18시즌 만이다.

두산은 22일 '프랜차이즈 스타 홍성흔이 은퇴를 결정했다'고 알렸다. 홍성흔은 "끝까지 야구 잘하는 선수로 남고 싶은 욕심에 서운한 마음이 든 시즌이었지만, 베어스파크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젊은 후배들을 보며 자리를 내주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말을 남겼다.

'은퇴'는 누구에게나 무거운 단어다. 화려한 시절을 보낸 베테랑에게 마지막 순간은 더 힘겹게 다가온다. 은퇴 갈림길에 선 선수와 구단의 뜻이 맞지 않는 경우가 꽤 많은 이유다. 

홍성흔도 다르지 않았다. 17경기 출전에 그친 올 시즌을 선수 생활의 마지막으로 남기기엔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두산 야수진은 나이 서른인 이원석도 기회를 찾아 삼성 라이온즈에 새 둥지를 틀 정도로 빈틈이 없다. 지명타자는 국해성, 최주환 등 젊은 선수들이 버티고 있다. 홍성흔은 어렵게 현실을 받아들이며 '명예로운 은퇴'를 선택했다.

▲ 홍성흔 ⓒ 두산 베어스
프로 무대에서 보낸 18시즌은 화려했다. 1999년 1차 지명으로 두산(당시 OB)에 입단한 홍성흔은 곧바로 포수 마스크를 쓰고 데뷔해 111경기 타율 0.258 16홈런 63타점으로 활약하며 신인상을 받았다. 1990년 LG 트윈스 김동수에 이어 역대 2번째 포수 신인왕이었다.   

스타 탄생을 알리며 두산 안방을 차지한 홍성흔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공격형 포수로 활약하며 2001년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국가 대표로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위기는 있었다. 홍성흔은 2007년 허벅지 부상 여파로 포수 마스크를 쓰기 어려워졌다.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지명타자로 전향한 홍성흔은 타격에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독식했다. 

▲ 김태형 감독(오른쪽)과 포옹하는 홍성흔 ⓒ 한희재 기자
2008년 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한 홍성흔은 2013년 친정팀을 다시 찾았다. 베테랑이 된 그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후배들을 독려하며 팀을 이끌었다. 올해 7월에는 1군 엔트리에 들지 못하는 와중에도 선수들과 동행하며 분위기를 잡아 달라는 김태형 두산 감독의 뜻을 기꺼이 따랐다.

그라운드에 땀을 쏟은 시간 만큼 많은 기록을 남겼다. 오른손 타자 최초로 2,000안타를 이루며 KBO 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통산 성적은 1,957경기 6,789타수 2,046안타(타율 0.301) 208홈런 1,120타점이다. 두산 역대 타자 가운데 안타와 2루타(323개), 타점 부문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은퇴한 뒤에도 야구와 함께할 예정이다. 홍성흔은 "야구는 제 인생의 전부였다. 작은 힘이라도 한국 야구 발전에 보탬이 되고, 의미 있는 일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라운드에서 누구보다 열정이었던 홍성흔. 그 열정이 은퇴 이후 어디서 빛을 낼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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